노동절에 분신한 건설 노동자, 끝내 숨져
영장심사 앞두고 법원 앞에서 분신
건설노조·민주노총 “투쟁 나설 것”
정부의 건설노조 압박에 항의하며 노동절에 분신을 시도했던 건설 노동자가 하루 만에 숨졌다. 노동계는 이번 죽음이 정부의 무리한 수사 때문이라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노·정 간 갈등이 더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일 “지난 1일 노조 탄압을 규탄하며 분신한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간부 A씨가 오늘 오후 1시9분쯤 끝내 운명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일 오전 9시35분쯤 강릉시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건설사에 조합원 채용, 건설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된 A씨는 강릉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분신 시도 뒤 전신화상을 입은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은 뒤 헬기로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아왔다.
A씨는 분신 전 동료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며 “내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이번 사망이 정부가 정당한 노조활동에 ‘공갈’ ‘협박’ 등 죄목을 붙여 탄압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교섭 과정에서 조합원 채용,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등을 요구한 것을 범죄로 몰았다는 것이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현재 약 950명의 건설노조 조합원이 소환조사를 받았고, 15명이 구속됐다.
건설노조는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경찰은 노사관계를 불법으로 규정한 채 오로지 노조 활동을 일방적으로 불법으로 내모는 강압수사를 벌여왔다”며 “무리한 강압수사가 결국 건설노동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사태까지 불러오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의 불법을 없애기 위해서는 노조를 탄압할 게 아니라 불법하도급과 임금체불 등 건설업계의 불법행위를 근절해야 한다고 밝혀왔다”며 “그럼에도 노조를 적으로 규정하고 때려잡는 정부의 태도에 투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분신 시도 직전까지 A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김현웅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은 “A씨가 다른 건 모두 괜찮아도 공갈과 협박이라는 단어만 없으면 좋겠다고 수차례 말했다”며 “노조로서 정당하게 교섭을 통해 채용을 요구하고 안전을 위해 불법을 막자고 이야기하는 것을 공동공갈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나”라고 했다.
민주노총도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의 건설노조 탄압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고, 잔인한 노동탄압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노동자를 죽이는 정권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겠다”고 했다.
건설노조를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라며 강하게 비판해온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분신 사망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지금은 애도에 전념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에 그 외 부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3일로 예정했던 ‘건설현장 채용강요 불법 노사관행 집중점검’ 발표를 취소하고 점검 일정도 연기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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