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는 무죄" 라임펀드 판결 그 후
라임 사태 끝나지 않은 싸움
2019년 터진 환매 중단 사태
불완전판매 비판 들끓었지만
솜방망이 처벌 받은 증권회사
불완전판매는 대부분 무죄
소송 시 피해자 불리해질 수도
2019년 국내 투자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숱한 피해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요 증권사가 위험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 펀드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특히 불완전판매를 '무죄'로 인정한 법원 판결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2020년 2월, 투자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목적지는 국내 한 증권사. 손에는 "사기판매 ○○증권 피해자들 죽어간다"는 원색적인 비판이 쓰인 피켓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2019년 국내 투자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라임 사태'의 피해자들이었다.
2019년 10월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에서 환매 중단 사태가 터졌다. 10월 10일 1차로 6030억원 규모의 펀드가 환매 중단됐다. 나흘 뒤 2346억원 규모의 2차 환매 중단 사태가 터졌다. '수익률 돌려막기'로 펀드를 연명하고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4개의 모母펀드와 173개의 자子펀드로 구성된 라임펀드의 환매 중단 규모는 1조6679억원에 달했다. 개인투자자 4035명(계좌 수 기준), 법인 518곳(계좌 수 기준)이 각각 9943억원, 6736억원을 라임펀드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피하지 못한 셈이었다.
그러자 금융당국이 수사에 착수했고, 그 과정에서 라임펀드가 부실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펀드의 자금을 이용해 부실자산을 인수하는 등 불법행위를 한 것이 드러났다. 라임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와 은행의 불완전판매 행위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들은 초고위험상품을 안전한 펀드라고 설명하거나 투자자의 투자성향을 확인하지 않고 판매했다.
불완전한 방법으로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증권사는 3248억원을 판매한 신한투자증권이었다. 뒤를 이어 대신증권 1076억원, 메리츠증권 949억원, KB증권 681억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라임 사태로 투자 시장은 한동안 홍역을 앓았다. 라임자산운용은 2020년 12월 퇴출당했고, 지난해 2월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사고를 친 증권사들은 투자자 앞에 고개를 숙였다. 김병철 전 신한투자증권 사장은 2020년 3월 "신한금융투자(당시)에서 판매한 투자상품으로 고객님들에게 끼친 손실에 대해 제가 회사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신한금융투자가 고객의 신뢰를 되찾고 빠른 정상화를 위해서는 본인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맞다"며 사퇴했다.
피해자들의 배상은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이뤄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라임 사태와 관련한 분쟁조정위원회는 2020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8차례 열렸다. 2020년 6월 신한투자증권, 12월 KB증권, 2021년 7월 대신증권 등이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한 손해배상에 나섰다.
신한투자증권이 판매한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100% 배상 판정이 나왔다. KB증권이 판매한 라임 국내펀드는 피해액의 40~80 %, 대신증권의 라임 CI펀드는 40~80% 비율의 배상이 결정됐다. 증권사들은 "고객 신뢰회복과 금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분쟁조정결정을 수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사모펀드의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 작업도 진행됐다. 금융감독당국은 공모펀드가 사모펀드로 판매되는 것을 차단했다. 펀드 판매사엔 사모펀드 판매 시 녹취의무를 부여했다.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일반투자자의 요건은 투자금액 1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높였다. 더불어 불완전판매 행위를 엄정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증권사의 불완전판매 건수는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윤영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145건을 기록했던 증권사의 불완전판매 민원 건수는 2021년 539건, 지난해 6월 78건으로 감소했다.
그렇다면 엄정 제재 방침은 현실화했을까. 그렇지 않다. 지난 3월 라임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신한투자증권은 1심에서 벌금 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불건전 영업행위는 무죄로 판단했고, 사기적 부정거래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보다 앞선 올 1월 12일 KB증권은 벌금 5억원, 대신증권은 2월 14일 벌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이는 검찰이 대신증권과 KB증권에 구형한 벌금 각각 7억원, 3억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법원은 KB증권이 고객에게 펀드 판매수수료가 없다고 속인 것만 유죄로 인정했고, 대신증권은 펀드 판매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지만 피해자들과 합의했다는 걸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라임 사태가 터진 지 3년 만에 나온 판결이었지만 처벌 수준은 피해자의 기대를 밑돌았다.[※참고: 신한투자증권·KB증권·대신증권은 라임펀드 판매와 관련해 임직원들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양벌규정에 의해 함께 기소됐다.]
시장에선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라임 사태의 중심에 섰던 증권사의 처벌이 약해도 너무 약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대규모의 라임펀드를 판매한 자산관리(WM)센터장은 대신증권 소속이었고, KB증권은 펀드의 부실 가능성을 알고도 판매했다는 혐의를 받았다"며 "직원들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증권사도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증권사들이 솜방망이 처벌마저도 거부하고 있다는 거다. KB증권과 대신증권은 1심 판결이 난 지 일주일 만에 항소에 나섰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법리를 검토한 후 항소에 나섰다"며 "검찰이 항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KB증권 관계자는 "항소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내부통제와 리스크 부분이 무죄로 판결받은 만큼 수수료 수취 관련 혐의도 적극해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증권사가 항소를 통한 자기방어에 나서는 걸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피해자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증권사의 재판 결과가 향후 손해배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서다. 증권사의 불법성이 인정돼 유죄를 받으면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것이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할 게 뻔하다.
김하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민사소송을 재기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법원의 판결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불완전판매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증권사에 방어 논리가 생긴 셈"이라고 꼬집었다.
피해자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이의환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2019~2020년 사이 숱한 사모펀드 사태가 터졌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사건도 적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사모펀드 사태가 터진 지 4년이 흘렀지만 아직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투자자는 소송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가 된 금융회사의 재판이 미뤄지면서 민사소송도 늦어지고 있다. 게다가 불완전판매 부분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민사소송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민사소송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불완전판매라는 무기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증권사의 항소로 재판기간이 길어지고, 솜방망이 처벌로 제재 수위가 약해진다면 피해자 구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분쟁조정위원회조차 열리지 않은 민원 건이 적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임에 분명하다.
민병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금감원에 접수된 823건의 라임 사태 민원 중 처리되지 않은 민원은 228건(27.7%)에 달했다. 이중 97건은 아직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적지 않은 피해자에겐 라임 사태가 아직 현재진행형이지만, 불완전판매를 꾀했던 금융회사는 '무죄'란 명분을 쌓고 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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