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미국 기자에게 밥을 사줘야 한다는 말에 대하여
미디어오늘 1399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지난달 26일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정곡을 찌르는 미국 기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LA타임즈 기자의 질문을 두고 여론은 한국 기자들이 해야될 내용 아니냐며 아쉬움을 넘어선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해당 기자는 반도체 규제를 통한 자국내 이익 극대화가 동맹인 한국에 피해를 주는 상황임을 지적하면서 “동맹국이 피해를 받게하면서 국내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미중 무역 분쟁 속 중국에서 반도체 제조를 제한하는 정책이 한국 기업의 실질적인 피해로 돌아가는 현실을 미국 기자가 상기시킨건데 한미 정상회담 성과의 '그늘'을 상징적으로 꼬집은 질문으로 평가된다.
미국 기자가 대신 뺨을 때려준 격이라서 시원하다는 평이 쏟아졌지만 왜 한국 기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못했는지 씁쓸하다는 반응도 따라붙었다. 이를 두고 라디오에 출연한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장은 “미국 기자에게 밥을 사야 한다”라고 하기도 했다. 진행자는 '송곳같은 객관적인 질문'이라고 했는데 거꾸로 말하면 한국 기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는 혹평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우리 기자들이 기밀문건 유출 도청 사태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은 심각한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미국이 한국을 도청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바이든 대통령 측의 약속이나 언질이 있었느냐”라고 물은 것은 ABC 기자였다.
도청 관련 질문은 양국 정상에 껄끄러울 수 있지만 주권과 국민 정서를 고려했을 때 우리 입장에선 반드시 했어야될 질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윤 대통령은 미국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친구가 친구를 감시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국가 간 금지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이 된 터였다.
우리 기자들이 도청 문제를 언급하면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흠집내려는 게 아니냐는 정치 진영의 공세를 예상하고 지레 겁먹은 게 아니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해야될 질문을 하지 않았을 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국내에서 도청 의혹 질문이 나왔을 때 국익이 우선이라며 되레 언론을 탓하는 정부의 일관된 입장에서 보면 이번 공동기자회견에 보이지 않은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미국 기자 질문 내용이 우리 정부 관료가 말한 국익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올 뿐이다. 정권이 감추고 싶은 폐부(肺腑)를 찌르는 단 한 개의 질문이 수많은 질문보다 가치 있음을 이번 양국 공동기자회견이 보여주고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유독 김건희 여사에 대한 자기검열식 보도 수정이 잦은 것도 우려를 낳는다. 김 여사에 대한 보도 내용을 톤 다운 시켰다는 매체 내부 증언이 나온다. 부정적인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는 보도엔 여사 사진을 일부러 쓰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제목에서 김 여사 이름이 실종되는 사례도 나왔다. 한국일보 노동조합에 따르면 <도이치매수 3억대도 약식기소… 김건희 최소 40억대 연루에도 檢처분 지연 왜?>라고 발제한 기사는 출고일보다 한참 늦은 지난 3월22일자에 실렸고 제목에서 김건희 이름이 빠졌다.
기사 내용도 “김 여사에 유리한 부분 위주로 재구성되며 기사의 뉘앙스도 달라졌다”고 한다. 데스크는 분량 등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주가 조작 사건에 등장하는 영부인의 이름을 껄끄럽게 생각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자의든 타의든 김건희 이름 석자를 쓰기 어려운 현실이 현재 정권과 언론의 관계를 확인시켜준 셈이다.
이에 반해 지난달 27일 스포츠서울은 외국계증권사 주가폭락 사태에 등장하는 연예인이 실제 피해자인지 따져보고 시세조종 세력이 활용한 '통정매매' 수법을 소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 1심 선고가 난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도 통정매매가 이뤄졌지만 김건희 여사가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사실을 보도했다. 핵심은 통정매매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사전에 이를 인지한 여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는 것인데 기사 제목은 <명의 넘긴 임창정은 피해자일까? 영부인 아니면 '통정매매'는 불법>이었다.
권력자의 심기를 살피고 눈치를 보면 더 이상 언론이라 할 수 없다. '미국 기자에게 밥을 사줘야 한다'는 논평이 누군가에겐 촌철살인이겠지만 우리 기자들은 한없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언론의 사명(使命)에 맞는 최소한의 양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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