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이종욱-이태석 특별전시 ‘바로 우리展’

[인터뷰] 정유림 ‘바로 우리展’ 총감독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미술관처럼 딱 들어맞는 공간도 없다. 기획자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선정했는지, 어떤 순서로 배치했는지 등에 대해 알게 되면, 전시를 한층 깊고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5월 8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 '바로 우리展'은 특히 그렇다.

‘바로 우리展'은 故 이종욱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과 이태석 신부를 기리고자 화가 75명이 뜻을 모아 마련했다. 전시 기획을 맡은 정유림 총감독은 "평생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헌신한 두 분의 정신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하고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정유림 ‘바로 우리展’ 총감독이 콴리 작가의 렌티큘러 작품 ‘행복(이태석)’과 ‘In Action(이종욱)’ 옆에 서 있다. [지호영 기자]

미술관에서 만나는 이종욱-이태석 정신

전시 헌정 대상인 이종욱 사무총장은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안정적인 삶을 마다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며 빈민 구제와 감염병 퇴치에 앞장선 인물이다.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남수단 구호에 목숨을 바친 사제이자 의사로, 영화 '울지마 톤즈'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 두 '위대한 의사'의 삶을 기리는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한재용 작가의 유화 '기타리스트'가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든다. 모자를 쓴 남자가 즐겁게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이 전시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유는 뭘까. 정유림 총감독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의 힘'에 대해 실감하게 되기를 바랐다"며 입을 열었다.

"이태석 신부님은 내전으로 피폐해진 남수단에서 청소년 밴드를 만드셨어요.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다친 마음을 다독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그 활동이 정말 아이들의 삶을 바꿔놓았고요. '기타리스트'를 그린 한재용 작가님에게는 미술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한 작가님은 부산에서 심야 사우나 청소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우신 분이에요. 고된 삶의 과정에서 완성한 희로애락이 담긴 작품들로 이제는 개인전을 수차례 열 만큼 명망있는 작가가 됐습니다."

이렇게 이태석 신부와 한재용 작가의 삶이 만나고, 그 안에서 '바로 우리展'의 취지가 자연스레 드러난다. 정유림 총감독은 "이 전시에 참여한 75명의 작가가 미술로 이종욱 총장,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것도 '예술의 힘'을 믿기 때문"이라며 "‘바로 우리展'을 보신 분들이 미술을 통해 두 '위대한 의사'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분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우리'가 할 일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유림 총감독은 2017년 국회에서 열린 '남북한미술전-백두에서 한라까지' 큐레이터를 맡는 등 여러 대형 전시를 기획해왔다. 그가 '바로 우리展' 총감독을 맡은 건, 이종욱 사무총장과 이태석 신부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라고 한다. 정유림 총감독은 이 대목에서 자신이 중학생 시절 한센병 환자를 만났던 일화를 소개했다.

"제가 중학생 때 탈춤공연단 소속으로 성라자로마을에 간 적이 있어요. 한센병 환자의 치료와 자활을 위한 그 공간에서 탈춤 공연을 했죠. 아직 어리던 때라 처음엔 한센병이 뭔지도 잘 몰랐어요. 그러다 우연히 한 환자의 장갑 벗은 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나중에 신문‧방송 등을 통해 이종욱 사무총장님이 성라자로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이태석 신부님도 한센병 환자 치료에 헌신하셨다는 걸 알게 됐죠. 의사로서 얼마든지 편안한 길을 걸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소외된 분들 가까이 다가가셨다는 데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존경하던 두 분의 삶을 기리는 전시를 제가 기획하게 된 건 큰 영광이자 기쁨입니다."

그래서 정유림 총감독은 최고의 작가와 작품을 한데 모으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박정 작가의 ‘또 다른 시선’. 구필화가가 이종욱 사무총장, 이태석 신부에 대한 존경을 담아 완성한 작품이다. [홍중식 기자]

구필화가가 그림으로 전한 존경과 사랑

‘예술의 힘'을 이야기하는 전시 초입부를 지나면 '길'을 키워드로 하는 두 번째 섹션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는 박정의 유화 '또 다른 시선'을 주목할 만하다. 박정은 고등학생 시절 다이빙을 하다 목을 크게 다친 지체장애 1급 장애인으로,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린다. 좌절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미술대전(2000), 아시아미술대전(2003) 등에 입선하는 등 작품성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박정 화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완성한 '또 다른 시선'은 젊은 여성이 아스라한 공간 너머를 응시하는 뒷모습을 담고 있다. 이종욱 사무총장, 이태석 신부가 걸어온 깊고 아름다운 길의 의미를 사색하는 듯 보인다.

황란 작가의 ‘Beyond the Wind…’. 이종욱 사무총장, 이태석 신부의 뜻이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홍중식 기자]

이종욱 WHO 사무총장과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바로 우리展’의 슬로건 ‘누군가 이 일을 해야 하고,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입니다‘는 이종욱 사무총장이 2003년 WHO 대표단 회의에서 한 말이다. [지호영 기자]

‘바로 우리展'은 '길'을 지나 '스승과 제자' '부활' 등의 섹션으로 이어진다. 정유림 총감독은 "부활 섹션에는 두 분의 정신이 널리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황란 작가의 'Beyond the Wind…'를 걸었다"고 소개했다.

"황란 작가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텍사스 휴스턴 미술관 등에 작품이 영구 소장된 유명 화가예요. 뉴욕 페이스북 본사, 두바이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명소에도 황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죠. 그분의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며 이종욱 사무총장, 이태석 신부의 정신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기를 함께 기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유림 총감독의 당부다. 이번 전시 작품은 누구나 구입할 수 있고, 수익금은 WHO 백신기금과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보건소 및 학교 설립 등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