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尹 방미 토대로 가치외교 넓혀야 한다

2023. 5. 2. 11: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보편가치 對 권모술수 대충돌
총칼과 음모 국제질서는 재앙
정상회담 통해 가치동맹 강화
美 의회 연설로 공공외교 성과
체계적 설명 부족은 돌아보고
외교 활용하는 노하우 배워야

세상은 좋을 때도 있고 또 나쁠 때도 있는 법이어서, 눈앞의 이익만을 계산하는 사람과 미래 운명을 같이하면 언제 배신하고, 어떤 권모술수(權謀術數)를 쓸지 알 수 없다. 자유와 인권, 법치와 같은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세계에서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쌓아 시장에서 공동의 이익 추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보편가치를 무시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계에서는 결국, 총과 칼과 음모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총과 칼과 권모술수가 지배하는 억압적인 세상에서,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자유롭고 진보된 세상으로 발전해 왔다.

지금의 국제정치는 총과 칼과 공작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세력과 보편가치를 기반으로 진보하는 역사를 지키려는 세력 간에 새로운 관계 설정을 시도하는 대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익만을 계산해 적당히 전환기를 넘기자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총칼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보편가치가 존중되지 않으면, 힘센 국가가 스스로 대국이라 자처하고 소국을 억누르는 국제정치가 탄생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지난 4월 24일부터 5박 7일간 있었던 대통령의 방미와 정상회담은 한미 혈맹이 보편가치 세력으로서 강한 결속을 보여줬는지, 서로 간의 신뢰를 두텁게 하는 계기가 됐는지, 그리고 그 결속의 의지가 양국 국민과 세계에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를 놓고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양국 간의 손익계산으로만 평가하게 되면, 이는 계산적인 두 국가 정상의 통속적인 만남에 대한 평가가 되고 만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는 이 기준에서 볼 때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유와 혈맹의 역사를 강조하면서 23번의 기립박수를 끌어낸 대통령의 의회 영어 연설과, 같은 맥락의 하버드대 연설은 우리가 보편가치의 철학 위에서 미국과 함께 발전한 국가임을 확실히 보여줬고, 동맹국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다. 양국 대통령의 격의 없는 어울림과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연출은 정상 간의 인간적인 유대에도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우방의 여론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상대방 여론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외교를 ‘공공외교’라고 하는데, 그 면에서 우리 대통령의 공공외교 활동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아쉬운 점이 있고, 얻어야 할 교훈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는 이번 정상회담과 방미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고쳐야 할 게 무엇인지 복기해 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를 짧은 지면에 정리해 본다.

첫째, 미국 의회의 세련된 외교로부터 배워야 한다. 상하 양원 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품위 있고 초당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동맹국을 지지하는 모습은 선진국의 국가 운영 모습을 확실히 보여줬다. 우리 국회의원도 해외에 나가는 것만 강조하지 말고 이런 국가 운영의 기본을 배워야 한다.

둘째, 대통령 방미 전에 대통령실과 외교부의 이번 정상회담 의미와 목적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과 정지 작업이 부족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신냉전이라는 안보 및 경제적 도전기에 가치외교를 통해 동맹 간의 신뢰를 강화하고, 확장억제에 대한 더욱 진전된 미국의 조치를 문서화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을 사전에 명확히 했더라면, 핵 공유나 자체 핵무장, 그리고 반도체지원법 및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문제를 둘러싼 무리한 비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정상 간의 담판으로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재선을 목표로 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사안들이다. 실무진의 오랜 준비와 수차례의 협상으로도 될까 말까 한 일들이다. 이 모든 걸 짧은 준비 기간에 해결한다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셋째, 미국은 정상회담이라는 외교 수단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인지 그 진수를 보여줬다. 상대방 정상을 극진히 예우해 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를 공동성명에 넣어 대내외에 과시하는 매우 정교한 외교를 보여줬다. 우리도 국민 세금으로 외국 정상을 만날 때 우리의 외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밀한 기획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대통령의 개인기에 더해 더 정교하게 기획된 정상회담으로 우리 외교에 대한 대내외의 지지를 견인하길 기대한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