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아저씨’ 박순혁은 의인인가, 개미군단 교주인가
“여의도 증권가는 타락했다” 주장하며 증권가와 각 세우기도
(시사저널=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최근 국내 증시에서 최고의 화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배터리 아저씨'라 불리는 박순혁 금양 홍보이사다. 그는 과거 대한투자신탁(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K배터리 레볼루션》이라는 책을 쓰고 여러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면서 이차전지 관련 8종목을 추천해 왔다. 그 8종목은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LG화학·포스코퓨처엠·CNT·나노신소재·포스코홀딩스 등이다. 박 이사는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은 향후 삼성전자와 비견되는 글로벌 톱티어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고, 주가 역시 수백 배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떻게 개인투자자의 리더가 되었나
올해 들어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기업들 주가가 급등하면서 박 이사는 단숨에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선지자 취급을 받게 됐다. 특히 에코프로 주가가 급등하면서 단숨에 '에코프로=박순혁'이라는 이미지도 만들어졌다. 에코프로 주가는 지난해 6만2000원이었고 지난해 말에도 10만3000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 들어 급등하더니 4월11일에는 장중 82만원까지 상승했다. 올해 코스닥 시장이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을 제외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에코프로그룹이 코스닥 상승장을 이끈 것이 된다.
실제로 에코프로비엠은 4월10일 거래대금 2조6566억원을 기록했다. 에코프로 거래대금 역시 4월13일 2조5974억원을 찍었다. 이는 역대 한국거래소 거래대금 기준 1, 3위에 해당한다. 이후 박 이사는 유튜브 등을 통해 올 하반기에는 에코프로에 이어 포스코홀딩스가 증시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후 포스코홀딩스 및 포스코그룹주에는 개인투자자가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박 이사가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지지를 높이게 된 배경은 단순히 이차전지 기업들의 주가가 올라서만은 아니다. 에코프로 주가가 올해 들어 최대 8배까지 급등하자 여의도 증권가 리서치센터에서는 주가 급등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3월말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이 에코프로비엠 투자의견을 BUY(매수)에서 HOLD(중립)로 하향 조정했고 4월4일에는 삼성증권 장정훈 연구원도 BUY(매수)에서 HOLD(중립)로 투자의견을 낮췄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큰 반응이 없었다.
증시에서 큰 논란이 불거진 것은 4월12일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이 에코프로에 대해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내면서부터다. 통상 리서치센터에서 연구원이 매도 리포트를 낸 경우는 드물다. 일반적으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목표주가를 낮추는 방식을 선택하고, 중립 의견도 꽤 강력한 표현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해 김 연구원은 "에코프로의 현 시가총액은 5년 후 예상 기업 가치를 넘어섰다"며 "2030년 실적을 주가에 반영하려면 당분간 중기 실적을 확인해 가는, 상당한 기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의 매도 보고서가 공개되자 에코프로 주가는 4월12일 16.78% 급락했고, 다음 날에도 5.16% 하락했다.
뒤늦게 에코프로에 뛰어든 투자자들은 하나증권 매도 리포트에 주가가 급락하자 분통을 터뜨렸다. 이 과정에서 박 이사는 유튜브 등을 통해 여의도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롱숏펀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현수 연구원의 리포트에 대해서도 박 이사는 여러 유튜브에 출연해 "리튬 가격 분석 및 기업 가치 측정 방식과 비교가 잘못됐다"고 맹비난했다. 평소 공매도 등의 이슈로 여의도 증권가를 불신하던 개인투자자들은 단숨에 그를 여의도 증권가 기득권에 홀로 맞서는 '의인'으로 여기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박 이사가 나오는 유튜브는 조회 수도 급증했다. 댓글에는 여의도 증권가를 비난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박 이사에게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내용도 상당수다. 박 이사는 시사저널이코노미가 개최한 2023 웰스업 포럼에 강연자로 나섰는데 강연 동영상은 공개 이틀 만에 단숨에 조회 수가 10만 회를 넘었다.
여의도 리서치센터와 대립각 세우자 '열광'
박 이사는 최근 증권사에서 에코프로와 관련해 매도 리포트가 나오는 배경에는 롱숏펀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롱숏펀드란 주식 운용 시 주가 상승이나 하락과 관계없이 '롱숏전략(long short strategy)'을 통해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다. 롱숏은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사고(long), 주가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공매도로 파는(short) 전략을 말한다. 수익률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증시가 오르건 내리건 급격한 변동이 없는 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박 이사에 따르면 그가 1995년 대한투자신탁 애널리스트로 여의도에 입성해 은퇴하기 전까지 여의도 기관들은 무조건 주식을 사들여 장기 보유하는 롱펀드가 주류였다. 이 과정에서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 추천하는 작업이 애널리스트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의도는 롱숏펀드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고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기업 가치와 무관하게 기관들의 요청에 따라 기업 가치를 왜곡하는 작업을 맡게 됐다고 박 이사는 주장한다. 기관이 들고 있으면 요청에 따라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리포트를 통해 부풀리고 기관이 공매도한 종목은 요청에 따라 평가절하한다는 것이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타락했고 악마화됐다는 주장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러한 박 이사의 주장에 공감하며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대한 불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물론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한다. 박 이사가 그럴듯한 허위사실로 개인투자자들을 현혹해 교주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가짜가 유리한 세상'이라는 글을 올리며 "애널리스트는 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기에 2~3중 컴플라이언스를 거쳐야 하고 공표 자료가 아니면 어디 나가 말할 수도 없다. 모니터링도 당한다. 전문직의 윤리규정이라 주식투자도 불가하다"며 "하지만 일부 유튜버는 여의도 전부가 순진한 투자자들을 속이려고 안달이 난 악마집단이란다. 이젠 여의도 거짓정보에 속지 말란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누가 속이고 누가 속는지 모든 게 헷갈리는 세상"이라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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