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 10년의 필모그래피 “연기라는 숙제, 항상 해결하지 못한 기분”
‘응답하라 1988’의 분위기 메이커 동룡이가 흑화했다. 도박판을 주름잡는 한 인물의 일생을 담은 디즈니+ ‘카지노’에서 시작과 끝을 맡은 이동휘를 만났다.
그런데 시즌2가 막을 내린 뒤 가장 화제에 오른 배우는 양정팔 역을 맡은 이동휘다. 그는 차무식의 오른팔로 카지노 세계에서 돈만을 치열하게 갈망하는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도박판의 배신과 욕망, 이기심이 한데 모여 정팔이라는 인물을 구성한다. 이동휘 특유의 현실감 있는 연기와 유머러스함은 덤이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그지만 "양정팔은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고 털어놨다.
"정팔, 주변에 있다면 손절"
정팔은 자기만 아는 인물이에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이고요. 저는 주위에 그런 인물이 있다면 바로 손절입니다. 저도 애정을 못 가지는데 남들이 정팔이를 좋아해줄 거라는 기대는 없었어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해야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도 마음이 풀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고요. 지인들로부터 "정팔 때문에 화가 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또 이게 인생이 아닐까 싶어요. 정말 나쁜 사람인데 잘 사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그리고 정말 진정성이 없는 사람도 주변에 있잖아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는 사람이요. 정팔을 연기할 때 그런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강윤성 감독은 자유로운 연출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배우 연기 스타일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으니까요. 배우가 캐릭터에 대해 연구를 제대로 하고 현장에 오면 다양한 시도가 받아들여질 수 있죠. 연기 시너지가 날 수도 있고요. 대본대로 정확하게 하길 원하는 분들이라면 힘들 수도 있고요.
대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던데요.
욕은 제가 다 만들었습니다(웃음). 비속어를 많이 생각해왔는데 감독님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최민식 선배님의 거의 모든 신이 눈에 선한데요. 현장에서 모니터하면서 저게 바로 배우의 눈이구나 생각했어요. 마에스트로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다른 배우와 호흡할 때마다 각기 다른 설정과 분위기로 채워나가시는 걸 보며 감동받았습니다. 선배님이 없었다면 '카지노’라는 작품 자체가 없었겠다 싶을 정도로요.
최민식은 어떤 배우인가요.
현장에서 등대 같은 존재였죠. 존재만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배우입니다. 스태프에 대한 배려도 엄청납니다. 1시간씩 현장에 일찍 오셔서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셨죠. 저도 덩달아 무조건 일찍 오게 됐어요. 그런데도 후배들에게 일찍 오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죠. 조언도 구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말씀해주지 않으세요. 저도 그랬지만 많은 배우가 긴장하게 되는데 잘 기다려주세요.
정팔과 무식이 함께 나온 장면이 많았습니다.
현장은 전지훈련 같았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라 두 달 반 동안 필리핀에서 촬영하며 할 수 있는 게 대본 보는 일밖에 없었어요. 항상 모여서 찍은 걸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다음 촬영을 잘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어요. 집중도 면에서는 여태까지 했던 작품들과 비교할 때 최상의 상황이었던 거죠. 민식 선배님과는 붙어 있는 장면이 많으니 정말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어요. 선배님 호텔방에 갔더니 룸 투 룸으로 전화하기 편하게 제 방 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더라고요(웃음).
최민식이라는 등대
정말 그래요. 가끔 연기하다 보면 상대 배역의 연기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석구 형은 본인의 역할을 넘어 다양한 캐릭터들 간의 개연성과 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어요. 저도 생각지 못한 내용이 있어서 자극도 받았고, 정말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필리핀 현지 촬영 기간에 '나의 해방일지’가 빵 터졌습니다.
현지 분들이 처음엔 석구 형을 잘 모르셨죠(웃음). 그런데 '나의 해방일지’가 방영된 후에는 호텔 로비에서 석구 형을 기다리는 분도 있었어요. 제게 "석구, Here(석구 여기 있어)?"라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카지노’ 캐릭터 중 양정팔이 가장 스타일리시합니다. 사복 패션으로 유명한데, 양정팔 캐릭터 스타일링에 참여했나요.
제 옷을 입은 건 한 번 정도였어요. 다만 분장 회의를 할 때 상구(홍기준) 형과 차이를 두고 싶다는 의견을 냈죠. 상구 형은 머리가 짧고 어두운 톤이라면 저는 머리를 기르고 밝은 톤으로 가는 조화를 원했어요. 상반되는 데서 나오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나중에 보니 '아치와 씨팍’ 같더라고요(웃음). 또 정팔이 점점 흑화하면서 화려했던 의상 톤이 어두워지는 걸 의상 팀과 상의했어요.
다재다능한 배우 이동휘를 말할 때 그의 노래 실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21년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MSG워너비로 활약했다. 앞으로 가수로서의 활동 계획도 있냐고 묻자 "너무 주접떠는 것 같아 그만하려고 한다"며 웃었다.
노래를 곧잘 하시던데요.
주변에 친한 가수도 많은데 창피하더라고요. 이제는 관객으로 돌아왔습니다. 최근에 해리 스타일스 내한 공연과 거미 선배님 공연을 다녀왔는데 정말 창피하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제가 있을 곳은 관객석이지 무대는 아니구나 생각했어요(웃음).
MSG워너비 소속 유닛 M.O.M은 새 싱글앨범이 나왔습니다.
제가 팀을 잘못 고른 것 같아요(이동휘는 MSG워너비의 또 다른 유닛 정상동기 멤버다). 석진 형과 창모 형이 있는 팀에 갔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그 둘의 추진력을 아무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박)재정이가 군대 가면 그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수 있을까요(웃음). 그런데도 제 주제를 파악하고 주접떠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2013년 영화 '남쪽으로 튀어’로 데뷔한 이동휘는 올해로 연기 생활 10주년을 맞는다. '응답하라 1988’의 류동룡, '극한직업’의 김영호, '카지노’의 양정팔까지 대중에게 사랑받은 캐릭터 중 자신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꼽아달라고 하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연기한 모든 캐릭터가 소중하지만 숙제를 완벽하게 못 해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아요. 그건 동룡도, 영호도, 정팔도 마찬가지죠. 프로 배우답게 모든 작품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부끄럽죠. 다만 나중에 '항상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배우였다’로 기억되면 그것만 한 칭찬은 없을 것 같아요."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요.
제 연기를 보며 관객들이 웃을 때 보람을 느껴요.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면서 잠시라도 그걸 잊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게 값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측면에서 웃음을 주는 연기를 선호하긴 해요. 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하나에 계속 안주하면 발전이 없다는 생각을 늘 하거든요. 그러면 여러 도전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고요.
어떤 어려움인가요.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작품에서, 원하는 배역을 맡을 수 있는 배우는 지구상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밖에 없을 거예요(웃음). 배우는 선택을 받는 입장이지 선택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거든요. 개인적인 커리어로 봤을 때 어떤 작품은 안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을 봤을 때 그렇지 않기도 하고요.
"다양한 이야기가 주류가 되길"
"제가 몰딩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그 일을 맡으면 저는 몰딩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죠. 공예든, 그림이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하고요. 그게 제게는 독립영화를 찍는 일입니다."
이동휘는 '응답하라 1988’로 얼굴을 알린 뒤에도 '출국심사’(2019), '메소드 연기’(2020) 등 다수의 단편영화에 출연했다. 2021년 들꽃영화상을 받은 영화 '국도극장’에서는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낙향한 장수생 기태 역을 맡아 담담하고 먹먹한 연기를 펼쳤다.
독립영화를 꾸준히 하는 이유가 뭔가요.
들이는 시간 대비 수입만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죠. 하지만 제 시간을 쪼개서 독립영화에 참여해 차곡차곡 작품을 쌓아가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에 플레이어가 아닌 아티스트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다 보면 어떤 결실을 맺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배우로서 뚜렷한 목표가 있는 건가요.
아무래도 상업영화는 투자든 제작이든 정해진 공식이 있다 보니 이를 깨기가 어렵더라고요. 독립영화는 그 공식에서 비교적 자유롭죠. 저는 대단한 사명감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사랑받고 주류에 들어오길 원해요. 트렌드가 아닌 것에서 오는 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균형이 맞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할리우드 천장을 깨버린 A2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제작사)도 그런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모여서 주류를 뒤집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최근 본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연기가 있나요.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된 영화는 꼭 보려고 해요. 최근에는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과 '더 웨일’의 브렌던 프레이저의 연기를 인상적으로 봤어요. 그들을 보며 갈 길이 구만리라고 생각하면서 겸손해졌어요. 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대단한 연기였죠. 최근 양자경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만나기 전까지의 고된 시간과 인내를 말하는 걸 인상적으로 봤어요. 제가 처한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죠. 더 열심히 하다 보면 저도 그런 작품을 만나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제공 디즈니플러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Copyright © 여성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