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원보다 권성동이 尹과 친밀했더라면…” [+영상]

고재석 기자 2023. 5. 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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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윤석열과 ‘나’] ‘尹의 브레인’ 될 뻔했던 장성철의 진단

● 尹 측에 세 건의 보고서 건네
● 대구 가면 자기최면 빠질 수도
● 이재명에 대한 원한 커 보여
● 원희룡도 尹의 기에 눌리는 듯
● 참모·멘토 조언 안 듣는 대통령
● 검사 총선에 대규모 출마시킬 것

[+영상] 윤석열과 '나' |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
4월 5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 [지호영 기자]
그에게는 '신동아'를 몰래 읽다 혼난 기억이 있다. 금서(禁書)도 아닌 잡지를 몰래 읽은 이유는 그가 초등학생이었던 데 있다. 소년은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 대신 '신동아'에 실린 정치 비사(祕史)에 탐닉했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에게서 정치 유전자를 발견했던 사람이다.

"날 새가면서 읽었어요. '신동아' 나오는 날 사서 수업 중 책상 밑에서 읽다가 선생님한테 몇 번 걸려 혼나기도 하고….(웃음) 선생님이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 한 적도 있고요."

그 소년이 50대가 돼 '신동아'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 4월 5일의 일이다. 소년을 혼낸 선생님이 미처 내다보지 못한 미래다.

대학 졸업 후 다니던 보험사를 6개월 만에 관뒀다. "한국 정치나 한미 외교, 북한 문제 등 거대 담론을 놓고 고민했는데 월급받기 위해 돈 세고 있으니 못 해 먹겠다고 생각"했단다. 백수가 돼 매일같이 도서관을 드나들다가 우연히 접한 신한국당 당직자 공채에 지원해 합격했다. 1996년 11월, 그의 나이 27세 때다. 김영삼 정권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던, 그러니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비극이 오기 전이었다. 장경상 대통령실 정무2비서관이 공채 동기다.

2000년 국회로 자리를 옮겼다. 몇 군데 의원실을 거쳐 2012년 박근혜 대선후보 공보팀장을 지냈다. 에이스 보좌관의 징표라고 자부할 이력이나 청와대 입성에 실패했다. 그때 느꼈을 좌절감은 쉬이 가늠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는 그 일로 '국정농단' 사태에서 자유로운 영토에 설 기회를 얻었다. 그 덕분에 보수 혁신에 대해 눈치보지 않고 말할 자격이 생겼다.

그는 보수정당에 대한 소속감이 뚜렷한 사람이다. 2017년 바른정당 창당의 핵심 실무자였지만 정작 바른정당에 입당하지 않았다. "이 당(당시 새누리당)에서 시작했는데, 모시던 김무성 의원이 탈당했으니 함께 탈당했지만 다른 당에 입당하는 건 옳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여기까지가 당직자이자 보좌진으로서 22년을 보낸 그의 인생 1막이다.

‘보수의 민낯'

그에게 인생 2막이 열리는 데는 책 '보수의 민낯'의 역할이 컸다. 2018년 7월 출간된 '보수의 민낯'은 1만 부 가까이 팔렸다. 2016년 새누리당 당대표실 부실장을 하며 겪은 '공천 파동'의 비화를 담아 화제가 됐다. 그와 인연을 맺은 것도 그 무렵이다. 책을 읽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그에게 불쑥 전화를 걸었다. 20분간 청년 보수에 관해 대화를 나눈 기억이 선명하다.

그 뒤로는 주로 미디어를 통해 그를 접했다. 방송에서 그의 모습은 '물 만난 고기'였다.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언론은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몇 년 지나니 '김무성의 보좌관'이 아니라 '정치평론가 장성철'의 존재감이 또렷해졌다. '셀럽'까지는 아니어도 지나가다 흘깃 쳐다보는 수준의 인지도를 갖추게 됐다. 그런 그에게 대권을 노리던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이 흥미를 느낀 건 제법 자연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습니까.

"만날 뻔했죠. 2021년 4~5월쯤 (당시 윤석열 전 총장과 가까운) 세 부류의 분들이 저를 찾아왔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저를 만나면서 '윤 전 총장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 상의했죠. 그분들은 지금 다 잘나가고 있고요. 한 분이 윤 전 총장의 (정치 참여를 위한) 실무 그룹을 꾸리는데 저도 참여해 달라고 했어요. 일요일에 윤 전 총장과 도와주는 사람 몇몇이 만나기로 했으니 저보고도 왔으면 좋겠다면서요. 제가 선약이 있어서 못 가고, (대신) '나는 윤 전 총장을 통해 정권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안 만나도 된다.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방송이나 다른 차원을 통해 돕겠다'고 얘기했죠. 윤석열 캠프가 구성되기 전에 대략 세 건의 보고서를 건네줬어요. 초창기 (캠프가) 굉장히 단출했을 때인데…."

서너 명만 있을 때 말인가요.

"맞아요. 대선 경선 캠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어떤 콘셉트로 해야 하는지, 조직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페이퍼를 통해 만들어드렸는데, 거의 그대로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거기(페이퍼)에서 캠프 명칭은 '윤석열 국민캠프'로 명명하라고 했거든요. 그대로 했잖아요."

그로부터 한 달여 뒤, 그는 '윤석열 X파일 사건'으로 정국의 복판에 서게 된다. 그해 6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얼마 전 윤 전 총장과 처, 장모의 의혹이 정리된 일부의 문서화된 파일을 입수했다"며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에게 정치적 조언을 기대했던 윤 대통령 측으로서는 제법 당혹스러웠을 사건이다.

X파일 사건의 당사자 아닙니까.

"제가 방송에서 윤 전 총장을 옹호하고, 저런 분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쪽 패널들과 싸우니까 지인이 '윤 전 총장 잘 아느냐'는 거예요. '나는 잘 모른다' 했더니 '(윤 전 총장에 대해) 정리한 문건들이 있으니 방송 평론할 때 참고하라'면서 두 건의 문건을 전달해 줬어요."

지금은 폐기했나요.

"괜히 갖고 있으면 화만 될 것 같아서요."

그 이후 윤 대통령 측과 연결고리가 끊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윤 전 총장 측에서) 저한테 조언도 구하고, 저도 얘기하고 했죠. 정권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윤 전 총장이) 대선후보가 됐을 때는 흠은 좀 감추고 어떤 전략이 좋을지에 대해 체계적으로는 아니고 한 마디씩 코멘트해주는 정도의 도움을 줬습니다."

검사가 일하는 법, 정치인이 일하는 법

사실을 의도적으로 굴절시키는 정파적 평론을 들을 요량이었다면 그를 만나지 않았다. 보수의 현실과 권력의 생리에 공히 밝은 사람이다. 권력의 무상함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다. 권력에 밉보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아는 사람이다. 자연히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대통령실과 내각 곳곳에 포진한 옛 직장 동료들을 통해 접하는 정보도 있을 테고 말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불편한 자리는 피하고 자신에게 환호하는 대중만 찾는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자신을 강하게 지지하는 지역 사람들이나 세대는 야당 지도자일 때 만나야 해요. 정권으로부터 핍박받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응원해 주고 박수 쳐주는 사람들을 통해 힘을 얻는 거예요. 여당 지도자나 대통령은 그런 쪽에 가면 안 돼요. 그러면 착각할 수 있어요. '대구 가보니 나를 열광적으로 지지해. 사람들이 환호하고 박수 치고. 여론조사는 (실제) 여론이 아닐 거야.' 이런 자기최면에 의한 착각에 빠질 수 있거든요. 폭넓은 국민의 민심을 오독할 수 있어요."

대통령실에서는 전남 순천도 방문했다고 그 나름 항변하는데요.

"서문시장에서는 30분 정도 길을 다니면서 당원들도 만나고 주민들도 만나 악수하고 얘기하면서 지지자들과 밀착하는 행보를 했단 말이에요. 순천에서는 그러지 않았잖아요."

대통령실에서 일정 짜는 참모 중에 당 출신도 많은데, 그런 걸 몰랐을까요.

"여러 안을 올렸겠지만, 분위기가 안 좋은 이 시점에서는 대통령에게 힘이 되는 일정 위주로 잡아야겠다는 정무적 판단을 했을 겁니다."

기자는 신동아 2022년 4월호 '여덟 가지 키워드로 읽는 윤석열의 모든 것' 제하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경쟁자들을 포용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펼 것이라 내다봤다.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윤 대통령 주위에 있는 복수의 취재원을 접촉해 내놓은 결론이다. 1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살피면 통합보다는 질주라는 단어가 어울려 보인다.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 그러니까 경쟁 상대들을 내각에 기용한 링컨의 리더십에 관심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보면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요.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에 대한 원한이 큰 것 같아요. '저 사람은 확정적인 범죄자'라는 확신이 있어서 검사 출신 대통령으로서 범죄자와 국정 운영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야당의 협조 없이 법안 하나 통과될 수가 없는데, 옳지 않은 세력과는 대화·타협이 없다는 시그널과 이미지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윤 대통령이 15대 (국회) 때부터 정치권에 관심이 있었고, 정치인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는 얘기들이 있더라고요. 그때 인식이 좀 잘못 들어간 것 같아요. '정치인들은 뇌물 받고 부정부패하고 공천헌금 받는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대통령이 정치인들을 낮추본다는 취지네요.

"검사 출신들은 지시하면 결과물을 내오잖아요.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아요. '1+1=2'가 되는 게 정치가 아니잖아요. 다른 변수가 있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해야 하잖아요. 힘이 부족하면 주도권을 뺏기기도 하고. 원하는 걸 100% 얻을 수 없잖아요. 그런 점에 대한 답답함이 대통령에게 있는 것 같아요."

김한길·김병준 등 중량감 있는 정치 멘토들의 역할도 흐릿해졌는데요.

"대통령 자리에 가면 전문가는 물론 공직 사회에서 (매일) 보고가 올라오잖아요. 참모들이 대안을 얘기해도 '나는 네가 모르는 다른 정보를 갖고 있어"라면서 조언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그때부터는 오만과 독선이 나타나더라고요. 대략 6개월 지나면서부터 어느 정치인이나 그러한 모습을 보여요. (윤 대통령은) 참모들이 모시기 상당히 어려운 스타일이에요."

그와 대화하다 보면 윤 대통령에 빙의하는 식의 어법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보고 정치하지 말라고 했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여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느냐. 밀고 나가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거나 "‘나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서 서울중앙지검장도 됐고, 검찰총장도 됐고, (정치 입문) 1년도 안 돼 대통령이 된 사람이야. 너희들보다 정치를 훨씬 잘 알아.' 자기 확신이다"라는 식이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인터뷰에서, 그것도 임기 초의 대통령을 겨냥해 쉽사리 구사할 수 있는 어법은 아니다. 그가 구태여 권력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정무 기능 마비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윤석열 정권의 국정 운영에는 정치가 없다”고 했다. [지호영 기자]
전문가 중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을 성격 문제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 방어적 성격이 극단적 폐쇄성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비선 실세에 의존하는 행동 양태를 만들었다는 거다. 반면 윤 대통령은 활동적이고 사교적이며 관계를 중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를 상징하는 낱말 중 하나는 일방통행이다.

윤 대통령은 사교성이 또렷한 성격인데, 국정 운영 스타일은 폐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문화나 제도가 성격조차 상쇄시키는 힘이 있는 겁니까.

"호탕한 면이 있는 것과 어떠한 판단과 결정을 할 때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여요. 대선후보 시절 '석열이 형'이라는 캠페인에서 보듯 친근하고 소통 잘하는 모습을 강조했는데, 정책 결정에서는 상당히 고집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서실장이 사실상 역할이 없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정치를 모르는 분이죠. 대통령은 처음 정치를 하니 정치에 노련한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내세우고 정책 쪽은 국정기획수석 같은 자리를 통해 보완하면 돼요. 그런데 다 관료 출신을 쓴단 말이에요. 정무적 기능이 마비됐다고 볼 수 있죠. 비서실장이 부족하면 정무수석이 뒷받침해야 하는데, 이진복 수석(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좋은 분이지만 정무적으로 뛰어나고 전략적인 사고에 능한 분이냐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많죠."

그는 뒷날 윤 대통령이 설사 정무형 비서실장을 기용한다 해도 소용이 없다고 비관했다. 성공의 경험이 만든 자기 확신에 더불어, 정보까지 독점한 대통령이 참모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이유에서다. 유력 대권주자였으나 권력과 불화한 비운의 여당 대표(김무성)를 보좌한 그의 말이어서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내각에 원희룡(국토교통부), 권영세(통일부), 박진(외교부) 장관 등 중량감 있는 정치인도 있잖습니까. 이분들의 정무적 역할은 없나요.

"없다고 봐야죠. 대통령의 기에 눌리는 것 같아요. 직접 만나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윤 대통령이) 체격이 크고 호탕하잖아요. (그런) 윤 대통령이 갖고 있는 분위기에 주눅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론 보도를 보면 이런 단어가 많이 나와요.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격노하면 참모들이 말을 못 해요."

지금이야 당적이 없다지만, 그가 친정과 법적 다툼에 휘말린 건 얄궂은 일이다. 사태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지난해 12월 20일 국민의힘이 전당대회 룰(rule) 개정 등을 다룬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이 여당에 불공정하다며 "일부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보수 몫으로 정부·여당의 입장과 배치되는 의견을 가진 보수 패널을 출연시키는 경우가 많아 우려스럽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방송사에 보냈다. 이틀 뒤 정진석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을 비아냥거리고, 집권여당을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를 대변하는 패널이냐"고 했다.

이에 장 소장이 "블랙리스트 작성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1월 3일 "장 소장에 대해 민·형사상 조치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로부터 일주일 뒤인 4월 12일 경찰에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과 강지연 국민의힘 미디어국장을 고소했다.

"그들을 처벌하기 위한 건 아니고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겁니다. 저야말로 정진석 전 위원장이나 강지연 국장보다 훨씬 보수 우파 쪽에 오래 있던 사람이에요. 정권교체를 위해 더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자부하거든요. 잘못한 것도 옹호하고 억지로 항변하는 게 보수 우파의 덕목은 아니라고 보여요. 이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나서 여러 가지로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 소장이 유승민 전 의원나 이준석 전 대표, 천하람 위원장 등과 가까워서 속칭 찍힌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과 원래 우정이 두터운 게 아니에요. 의견이 같은 거예요. 제가 봤을 때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보수 우파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박근혜 정권이 친박들에 의해 무너져 갈 때 내부적으로 막지 못한 데 대한 한이 있어요. 2016년 박근혜 정권이 총선에서 실패하고 많은 회생의 계기가 있었는데, 친박들이 '대통령과 일치단결한 지도부를 만들어야 해'라면서 2016년 8월 이정현 당대표 체제가 출범했잖아요. 그 결론이 뭐예요? 탄핵당하고 대선 지고 총선 지고…. 순혈주의는 생태계에서 생존력이 없어요."

한길을 계속 가는 장제원

내년 총선을 생각하면 2016년 공천 파동이 떠오른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때보다 2008년 총선과 비슷해요. 강재섭 대표 때였는데 허수아비 당대표였고, 이방호 사무총장과 정종복 부총장이 당시 청와대와 직거래를 통해 공천을 다 해버렸죠. 친박들을 학살하고 원하는 사람 다 집어넣고."

2016년 청와대 측에서 총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80~90명 정도의 의원만 있으면 된다는 게 청와대의 생각"이라고 했다는 일화를 폭로한 기억이 납니다.

"(그것과) 비슷하죠. '나는 검찰권이 있잖아. 유능한 내 후배들이 정치권을 새롭게 바꿀 수 있을 거야. 그 사람들만 내보내면 수도권과 중도층, 20~30대가 우리를 지지할 거야. 왜? 민주당에 이재명이 있잖아. 범죄 혐의자인 이재명 당대표가 공천한 후보들을 국민들이 어떻게 선택하겠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검사 수십 명이 총선에 출마한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지금까지의 윤 대통령 인사 스타일을 보면, 같이 일했고 신뢰했던 사람들을 대규모로 정치권에 진입시키고 싶어 할 것 같아요. 명약관화해 보여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 정권 내내 금감원장 하진 않을 거잖아요. 정치권에 데뷔시키겠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검찰 출신들이 가장 똑똑하고 능력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과연 다양화된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어 운영해 나갈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적이거든요. 검찰 출신들이 공부는 잘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전문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니 믿는 사람들을 공천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일부분이어야 해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으로 꼽히는 장제원·권성동 의원은 바른정당 창당 동지인데요.

"동지라기보다는 저는 (보좌관으로서) 창당 실무 기획을 했던 사람이고, 그분들이 움직여서 바른정당이 창당됐죠. 그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한 건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세력을 만들어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권후보로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장제원 의원은 그 한길을 계속 가는 거죠. '내가 믿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난 거기서 '핵관'으로 자리 잡아서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행사할 거야‘라는, 권력욕이 가득한 모습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진 모양새인데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도권 다툼에서 권성동 의원이 좀 밀렸다고 볼 수밖에 없죠. (두 사람 중)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분은 권성동 의원 같아요. 권 의원이 장제원 의원보다 윤 대통령과 더 친밀도가 높고 신뢰받았다면 당이 이렇게까지 안 좋은 쪽으로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권력의 폭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보수가 진화했습니까, 아니면 정체 혹은 퇴보했습니까.

"퇴보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국정 운영에는 정치가 없어요. 일방적인 지시와 통보만 있죠.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을 두고 훗날 역사가들은 보수우파 진영과 국민의힘을 망친 사람으로 지목할 겁니다. 비대위원장 시절 당과 대통령실은 샴쌍둥이처럼 하나가 돼야 한다고 했어요. 당은 국민의 민심을 받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밝은 눈과 귀가 돼야 하는데 스피커 역할만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럼 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죠. 그 출발점을 정 전 위원장이 끊었다고 봐요. 전당대회 룰을 대통령이 원하는 쪽으로 바꿔줬잖아요."

이날 그는 주로 자신의 경험을 토대 삼아 권력의 폭주에 관해 이야기했다. 당직자이자 보좌관으로서 권력이 어떻게 명멸을 거듭했는지 코앞에서 지켜본 사람이니 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그는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보수의 민낯'을 목격한 사람이다. 그런 자신마저 입을 다물어버리면 보수가 다시 몰락하리라는 우려가 그의 말에 묻어 있다.

"다른 소리 할 수 있잖아요. 잘못된 건 비판할 수 있고요. 같은 편이 했다고 '방송 출연시키지 마'란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문재인 정권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적나라하게 비판했어도 그러지 않았거든요. 옳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데 자괴감이 듭니다."

신동아 5월호 표지.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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