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역대 대통령의 성공·실패로부터 배우고 ‘직언할 賢者’ 옆에 둬야[Deep Read]
한국 정치 최대 문제는 ‘비토크라시’…‘1987 체제’ 이후 역대 정권이 선거연합 해체하며 위기 자초
尹 대통령도 결별·대결 정치에 익숙… 국민통합 행보로 지지기반 넓혀야 성공적 국정 운영 가능
국가대표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1년을 맞는다. 민심은 호의적이지 않다. 윤 대통령에 대한 광범위한 ‘비토층’이 만들어지는 형국이다. 그 스스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인 ‘비토크라시(vetocracy)’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궁극적 과제는 국민통합이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가까이 두고 직언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토층을 줄이고 지지기반을 넓혀 궁극에는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기할 수 있다.
◇문제는 비토크라시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30%, 부정 평가가 63%였다. 중도층에서는 긍정 평가 20%, 부정 평가 73%다. 60%에 이르는 ‘콘크리트 비토층’이 굳어져 가는 모양새다. 정책 평가도 기대에 못 미쳤다. 경제는 ‘잘하고 있다’와 ‘잘못하고 있다’가 각각 25·61%였고, 복지는 33·50%, 교육 23·47%, 남북관계 35·51%, 외교 27·60%, 인사 19·63%, 부동산은 27·47%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치의 본령은 통합이다. 한국 정치는 이것이 작동 불능 상태다. 정치의 실패, 국정 운영의 실패 탓이다. ‘1987년 체제’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6명의 대통령 중 두 사람이 구속되고, 두 사람이 탄핵 심판에 오르고, 한 사람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면 정상이 아니다.
한국 정치 개혁의 방향을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라고 답한다. 과연 그런가. 군사독재 시절 박정희·전두환 두 대통령은 말 그대로 ‘제왕’이었다. 행정부와 집권당은 물론 국회·사법부·언론까지 장악했다. 김정은·시진핑(習近平)·푸틴 못지않은 권력을 누렸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집권당 총재로서 여당 대표를 임명하고 총선 공천도 사실상 주도했다. 행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장악했지만 국회·사법부·언론은 더 이상 통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정 분리를 선언한 노무현 대통령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은 여당 장악도 힘겨운 상황이다. 어느 모로 보나 대통령을 제왕이나 제왕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에 있다기보다는, 상대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비토크라시에 있다.
◇전임자들로부터 배울 것
극단적 진영 전쟁 속에서 거대 야당이 대통령과 대립하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대통령과 장관에 대한 탄핵 위협, 야당의 일방적 법안 통과와 대통령의 거부권, 무력화된 청문회 제도, 정부 법안과 예산안에 대한 거대 야당의 비토 늪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국 정치가 전쟁이 된 데에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라는 정통성이 오히려 독이 됐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작용한다. ‘1987년 체제’ 이후 모든 대통령은 ‘정통성에 취해’ 전(前) 정권 ‘청산’에 집착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 청산’,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 청산’, 노무현 대통령은 ‘기득권 청산’, 이명박 대통령은 ‘좌파 청산’, 박근혜 대통령은 ‘종북 청산’,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 청산’ 등 정권의 업적을 청산에서 쌓으려고 했다. 청산은 필요한 것이지만 정권을 거듭하면서 도가 지나쳤다. 보복의 악순환을 불렀고 국민을 분열시켰다.
애덤 셰보르스키가 통찰한 대로 민주주의는 집권 세력이 평화적으로 야당 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체제다.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들은 ‘권력을 잃어도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제도와 전통을 만들었다. 정권을 잃으면 보복받는다고 생각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유지하거나 불법을 은폐하는 데 권력을 총동원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전임자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선거연합을 해체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JP 축출 등으로 ‘3당 합당 체제 해체’, 김대중 대통령은 ‘DJP 연합 해체’, 노무현 대통령은 신당 창당 등으로 ‘호남과 결별’, 이명박 대통령은 강력한 차기 주자인 ‘박근혜와 갈등’,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당 지도부와 갈등’으로 지지기반을 좁히며 위기를 맞았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선거연합을 해체했다. 무리하게 집권당 전당대회에 개입해 김기현 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2030세대 동맹’과 ‘중도·보수 동맹’의 상징인 이준석·안철수와 결별했다. 윤 대통령의 선거연합 해체는 전임자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보였다.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방문 중 미국 의회 연설에서 1989년 같은 장소에서 연설한 노태우 대통령을 인용했지만, 노 대통령으로부터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은 정치적 리더십이다. 그는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에 야당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여기는 정치를 했다. 국정 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비밀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가까이 두고 현자들의 직언을 경청하며 국회와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다.
반면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스타일로 대화와 타협이 본령인 정치와 근본적으로 맞지 않았다. 특히 문 대통령은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 분열시켰다. 문 대통령의 치명적 결격 사유는 ‘국민통합 의지’와 ‘지지층으로부터 욕먹을 용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윤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친화력이 떠올랐다. 그는 외교 무대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그 점에서는 윤 대통령도 못지않다. 문제는 친화력이 가까운 사람에게만 작동하고 정치적 경쟁자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대부’의 대사처럼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는 것이 정치다. 윤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도 만나야 한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
윤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1987년 체제 이후 모든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성공한 길은 따라가고 실패한 길은 피해야 한다. 지난 1년 윤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아직 임기는 4년, 총선은 1년이 남았다. 충분한 시간이다. 결단만 남았다. 지지기반을 좁혀온 지난 1년의 국정 운영의 경험 속에서 성공의 길을 찾아야 한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용어설명
‘비토크라시’는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2013년 ‘비토크라시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
‘애덤 셰보르스키’는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이며 ‘민주주의 거장’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민주주의 연구자. 2010년 ‘정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요한 쉬테상을, 2018년 후안 린츠 상을 받음.
■ 세줄요약
문제는 비토크라시 :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1년을 맞지만 민심은 호의적이지 않음. 광범위한 ‘비토층’이 만들어지는 형국. 가장 큰 문제는 그 스스로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점인 ‘비토크라시’에 빠져 있다는 점.
전임자들로부터 배울 것 : 19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전(前) 정권 청산에만 과도하게 집착함. 또 대부분 집권 후엔 스스로 선거연합을 해체해 위기 자초.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 : 윤 대통령도 빠른 속도로 선거연합을 해체. 성공적 국정 운영을 하려면 역대 대통령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워야. 특히 ‘직언할 현자’를 두고 국민통합의 길을 닦아 지지기반을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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