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인의 직격 야구] '변방'에 처한 한국 야구, 원로가 안 보인다

권정식 2023. 5. 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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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한화 지휘봉을 잡았던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전 감독(왼쪽부터). 위기에 빠진 한국야구를 되살리기 위해 원로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 야구의 거목' 김응용(82) 전 감독은 지난 3월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 4대13 참패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김 전 감독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전 회장이자 전 국가대표 감독 자격으로 대회 현장을 찾았다가 쓰린 속을 삼키며 귀국해야 했다. 김 전 감독은 "한일전을 관중석에서 보는데 너무 속상하더라"라며 "경기를 다 보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귀국후 김 전 감독은 "한국야구는 변해야 한다"며 "변해야 살 수 있다. 그런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일전 참패 후 두달 가까이 지났는데도 김 전 감독이 '한국야구의 변화'에 일조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질타와 지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김 전 감독은 프로야구 해태-삼성-한화 사령탑을 지냈고 KBSA 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므로 여러 원로들과 함께 KBO 허구연 총재와 KBSA 이종훈 회장을 만나 야구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폭넓은 조언과 실행방안을 논의했어야 했다.

'야구의 젖줄'인 초중고 선수들을 위한 포괄적인 지원과 재능 기부에도 소매를 걷어 붙여야 했다. 그렇지 않고 원로로서 쓴소리만 한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야신' 김성근 감독(81)도 사실상 위기에 처한 한국 야구에 닻을 내리지 않고 있다. 모 방송 '최강 야구'의 감독을 맡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지만 '최강 야구'는 예능 프로그램일 뿐 '변방'으로 처진 한국 프로야구를 살리는 회생 방안은 될 수가 없다. 2006년 WBC 4강, 2009년 준우승을 이끈 김인식 전 감독(77)도 침묵을 지키긴 마찬가지다. 

이만수 전 SK감독(65)은 두 김감독의 제자뻘이긴 하지만 이젠 60대 중반의 원로급이다. 자신이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하며 받은 은혜를 한국 야구에 되돌려줘야 할 나이다.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의 야구협회 부회장을 맡아 라오스 야구를 일으키기 위해 애쓰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오는 9월 항조우 아시안게임에서 라오스가 첫승을 거두면 "비엔티안 대통령궁에서 속옷만 입고 뛰겠다"고 말한 것은 오버 액션을 넘어 라오스 대통령, 라오스 국민에 대한 엄청난 결례다.

이 전 감독은 SK 수석코치 시절인 2007년 5월 26일, 만원 관중 달성 공약이었던 '팬티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다. 이번에 약속을 지키면 두 번째가 된다. 처음도 아닌 두 번째 이벤트를, 그것도 라오스의 국가 상징인 대통령궁에서 한다면 불교를 깊게 숭상하는 라오스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과연 라오스 대통령실에서 허가는 내줄까. 대한민국의 망신살만 뻗치는 건 아닐까.

최근 몇년간 고교를 졸업한 신인 포수중에서 뛰어난 선수가 배출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고교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해서야 배터리 코치의 전문적인 조련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이만수 전 감독처럼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포수 출신이 전국을 돌며 재능 기부를 열정적으로 펼친다면 한국 야구가 한차례 업그레이될 것은 틀림없다.

라오스 사람들은 무더운 열대 지방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야구를 익히기에는 태생적으로 힘들다. 거기에다 체격이 왜소해 대형 선수를 육성하기가 어려워 야구를 스포츠 주종목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전 감독이 라오스의 '아시안게임 1승'에 몰두하는 열정의 10분의 1이라도 한국에 쏟아부었다면 WBC에서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 열거한 세 감독의 사례뿐 아니라 프로야구 전직 지도자와 선수들의 재능 기부 소식은 가뭄에 콩 나듯한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등 스타 플레이어 출신들은 은퇴후 중고 선수들의 육성에는 아랑곳없이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관심을 쏟고 있다.

WBC 참패후 한국 야구에 대한 반성의 소리가 높았고, '새로운 3년'의 준비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도 컸다. 하지만 두달이 돼가는 지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망각의 늪에 빠지고 있다.

3년후 WBC에서 진정으로 4강에 진출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본의 WBC 우승을 이끈 '제2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栗山英樹․62)'이 지금이라도 나와야 한다. 난치병으로 29세에 프로팀 유니폼을 벗은 구리야마 감독은 1999년,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홋카이도의 후미진 구리야마(栗山, 밤나무의 산) 마을의 황무지를 사비를 털어 정비했다. 3년 뒤 잔디가 깔린 야구장이 완성됐으며 여기에서 열린 야구교실과 야구 대회가 WBC 우승의 씨앗이 됐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원로뿐 아니라 전 야구인이 힘을 합쳐 '야구 중흥'을 외칠 때가 아닐까? 김응용 전 감독의 지적대로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으니까. 본지 객원기자

김수인 객원기자

 

스포츠한국 권정식 jskwo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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