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과 공감하다[이주영의 연뮤 덕질기](1)
악성(樂聖), 청각장애 작곡가, 괴팍한 성정.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이미지들이다. 교향곡 ‘운명’과 ‘합창’, 피아노 소나타 ‘비창’과 ‘월광’ 등 친숙한 멜로디들도 귓전을 맴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궁정 테너가수였던 친부는 알코올중독자로 루트비히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2023년 뮤지컬계를 떠들썩하게 한 창작 초연 <베토벤; 베토벤 시크릿 시즌2>(이하 <베토벤>)와 2018년 창작 초연 이후 네 번째 프로덕션인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이하 <루드윅>)의 중심 서사와 주요 넘버들은 베토벤의 이런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뮤지컬 <베토벤>은 베토벤 사후 발견된 편지가 모티프다. 베토벤 연구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작품이 선택한 ‘불멸의 연인(Unsterbliche Geliebte)’은 은행가 남편에 아이가 셋인 음악 애호가 안토니 브렌타노. 청각장애가 심해져 작곡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위기였던 40대 베토벤은 이를 이해하고 위로한 안토니와의 사랑을 통해 완고한 자신을 해체하고 불멸의 작곡가로 거듭난다.
뮤지컬 <루드윅>은 베토벤의 아동기와 청년기, 중장년기를 고루 다루지만, 베토벤 전기는 아니다. 베토벤과 우정을 나눈 가상 인물 마리를 통해 청력 상실 과정과 음악적 완고함, 부성애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실제 심했던 조카 카를을 향한 베토벤의 집착을 다뤘는데, 마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베토벤은 “아이는 키우는 것이 아닌 자라는 것”이라며 ‘내려놓음’을 통찰한다.
이 두 작품은 각기 대극장 뮤지컬과 중극장 뮤지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냈다. 뮤지컬 <베토벤>은 최고의 배우진과 6인조 혼령의 모던 댄스, 40명이 넘는 출연진의 군무와 합창, 40여명의 오케스트라 등이 악성 베토벤을 스케일로 체험하게 한다. 뮤지컬 <루드윅>은 두 대의 피아노와 테이블 하나, 기하학적 액자 프레임이 전부다. 아역부터 청년, 중년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베토벤 넘버 일부를 직접 연주하며 트라우마를 토해낸다.
뮤지컬 <베토벤>의 넘버들은 모두 베토벤의 클래식 작품을 리프라이즈(뮤지컬에서 같은 곡을 상황에 따라 편곡하거나 재해석하며 변화를 주는 경우)한 형태여서 음악적 완성도가 높지만, 한계도 있다. 수백년간 연주를 거듭해온 익숙한 멜로디라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다. 다행히 메인 넘버인 베토벤의 ‘나의 운명’, 시즌2에서 추가된 안토니의 ‘절망만이 나의’ 등이 배우들의 역량으로 강력한 몰입을 선사한다. 일반 창작곡으로 구성된 <루드윅>은 어린이와 중년 베토벤의 ‘다락방의 피아노’, 청년과 중년 베토벤의 ‘시련’, 전체 출연진의 ‘세상을 넘어 꿈을 향해’ 등이 대표 넘버다. 모두 ‘자아 성찰’과 ‘미래 지향성’을 담아낸 명곡들이다.
이번이 시즌2인 뮤지컬 <베토벤>은 초연을 끝낸 후 3주간 관객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개연성을 보완하고 넘버들을 추가했다. 같은 프로덕션이 시차를 두고 상연되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3주 만에 수정 보완된 시즌2가 상연되는 사례는 드물다.
뮤지컬 <베토벤>은 베토벤으로 박은태·박효신·카이가, 안토니로 조정은·옥주현·윤공주가 참여한다. 뮤지컬 <루드윅>은 베토벤에 백인태, 김준영, 박이든, 마리 이은율, 피아니스트 조재철이 함께한다.
뮤지컬 <베토벤; 베토벤 시크릿 시즌2> 2023.4.14~5.15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2023.6.16~6.17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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