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서 즉위 선포… 책봉 65년만에 생애 첫·마지막 왕관 착용[Global Window]

김현아 기자 2023. 5. 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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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Window - 미리보는 영국 찰스 3세 대관식
버킹엄궁서 마차로 2.1㎞ 이동
사원서 ‘영국법·교회 수호’ 약속
하객 2000명으로 대폭 간소화
여성·흑인 등 다양성 존중 눈길
스웨덴 국왕·각국 정상 등 참석
배우 톰크루즈 등 축하무대 올라
호주 등 탈 연방 움직임 다독이고
왕실내부 갈등 해결 등은 과제로
그래픽 = 권호영 기자

오는 6일 21세기 유럽 최초의 대관식이 거행된다. 미 할리우드 유명 배우 톰 크루즈가 참석하고, 고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 드레스를 탄생시킨 유명 디자이너 브루스 올드필드의 대관식 가운이 등장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물한 장미 수정 원석 조각도,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와 황금 마차도 준비돼 있다. 모두 대관식의 주인공, 영국 윈저 왕조 제5대 국왕으로 즉위하는 찰스 3세를 위한 것들이다.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1953년 대관식 이후 70년 만에 치러지는 대국민 행사인 만큼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들썩이는 모양새다. 영연방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해외 각국에서도 축하 행사가 치러진다. 1958년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65년 만에 왕관을 쓰게 된 찰스 3세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오랜 기간 영연방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던 엘리자베스 2세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고, 왕실 내부 갈등도 다독여야 하는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떻게 진행되나 = 찰스 3세의 대관식은 전통에 따라 수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다. 오전 11시,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 부부가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나서는 것이 시작이다. 일명 ‘왕의 행렬’이다. 전통적으로 왕의 행렬 시에는 ‘황금 마차’인 골드 스테이트 코치 마차가 이용돼 왔으나, 승차감이 불편해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위 60주년을 기념해 2012년 제작된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사용하게 됐다. 국왕 부부는 버킹엄궁에서 더 몰, 트래펄가 광장까지 약 1㎞ 정도 직진하고, 이후 마차를 우측으로 돌려 화이트홀(정부중앙청사) 앞 도로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총 2.1㎞ 구간을 행진하며 시민들을 만난다.

찰스 3세 부부가 사원 안으로 입장하면 본격적인 대관의식이 진행된다. 먼저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대관식장 내 참석자들에게 국왕을 소개하고, 그가 ‘의심할 여지 없는 국왕’임을 선포한다. 참석자들은 ‘신이여, 국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King)라 화답하게 된다. 두 번째 순서는 서약(The oath)이다. 찰스 3세는 참석자들 앞에서 법에 따라 재위 동안 영국 법과 교회를 수호하겠다 약속하게 된다. 이후 대관식 의자에 앉아 성유의식(The anointing)을 치른다. 대주교가 국왕의 머리와 가슴, 손에 십자가 모양으로 성유를 붓는 순서다. 다음으로 찰스 3세는 평생 대관식에서만 단 한 번 착용할 수 있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착용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즉위의식이 거행된다. 찰스 3세가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는 순간이다. 이때 윌리엄 왕세자가 왕실 일원 중 유일하게 새 국왕 앞에 무릎 꿇고 오른손에 키스하며 충성을 표할 전망이다.

◇달라진 점은 =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 찰스 3세는 이후 ‘황금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국민에게 인사할 예정이다. 이때 행렬에는 왕족들과 약 4000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참여한다. 70년 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때보다는 확연히 간소해졌다. 당시 행렬에는 군인 3만 명이 참가했고, 국내외에서 8000여 명이 초청됐다. 이번에는 경제 상황을 고려해 참석자를 2000명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코로나19 상황에서 헌신한 의료진들, 지역사회 봉사단체 대표와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 450명·청년대표 400명을 명단에 포함했다. 대관식 곳곳에서 ‘다양성’이 엿보인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성직자 행렬에 국교회 외 무슬림, 힌두 등 다양한 종교에서 동참토록 했고, 대관식 물품을 옮기는 이들을 과거 백인·귀족 중심에서 여성·흑인 등으로 외연을 넓혔다. 특히 ‘헌납의 검’은 처음으로 여성 군인이 들 예정이다.

식 자체는 간소해졌지만 경건함과 화려함은 유지된다. 이와 같은 기조는 참석자 면면에서도 엿보이는데, 왕실에 따르면 대관식 다음 날 윈저성에서 열리는 축하 콘서트 무대에는 유명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오를 예정이다. 그 외 테이크 댓, 케이티 페리, 라이어널 리치, 안드레아 보첼리 등이 공연에 함께한다. 왕실의 전통을 유지하는 스페인과 스웨덴, 일본, 태국 등 여러 국가에서도 국왕과 왕세제 등이 대관식에 참석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도 자리한다. 다만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대신 아내 질 바이든 여사가 참석하기로 했다.

◇영연방 탈퇴 움직임 등 과제 산적 = 지금은 대관식에 온 관심이 쏠려 있지만, 찰스 3세의 진짜 시작은 대관식 이후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찰스 3세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뒤를 이어 영연방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느냐가 숙제다. 지난해 9월 여왕이 서거한 이후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도 영연방 국가가 아닌 공화국으로의 전환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 바 있다. 자메이카 등 다른 카리브해 국가들에서도 탈출 움직임이 보이는 상황이다.

영국과 ‘특별한 관계’인 미국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불참하는 것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초 찰스 3세와 통화하고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는데, 이를 두고 영국 내부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영·미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1800년대 빅토리아 여왕 즉위 당시부터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 역시 이러한 기조를 이어갈 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왕실과 갈등을 빚어온 해리 왕자 부부는 결국 왕자만 대관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아내 메건 마클과 아들 아치, 딸 릴리벳은 미국 캘리포니아 자택에 머물 예정이다.

■ 세계의 왕실 국가

소탈 행보로 국민적 지지 태국공주… 3년간 군사훈련 받기로한 스페인공주

국민통합 구심점 역할도 하지만
견제세력 없어 각종 구설 휩싸여

전 세계에서 영국처럼 군주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29개국에 달한다. 영국 왕을 상징적 국가원수로 삼는 호주, 캐나다 등 영연방 소속 15개국은 제외한 수치다. ‘세습’ 방식의 권력이 유지되는 군주제는 자유와 평등 및 특권 배제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민주주의 가치와는 괴리가 있다. 하지만 왕실이 국민 통합의 구심점이자 혼란 시 국가 안정에 기여하면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현대 군주제는 크게 입헌군주제와 전제군주제로 구분된다. 입헌군주제는 군주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고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존재한다.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등 모든 유럽 국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일본과 태국도 입헌군주제다. 국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 전제군주제 국가는 10여 개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등 중동 산유국이 대표적이다.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이 2019년 5월 열린 대관식에서 수티다 왕비와 나란히 앉아있다. AP 연합뉴스

왕실은 국민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견제를 제대로 받지 않다 보니 구설에 오르는 일도 적지 않다.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의 부친인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은 재위 기간 70년(1946∼2016년) 동안 19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하는 격변기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와치랄롱꼰 국왕의 장녀 팟차라끼띠야파 나렌티라텝파야와디 공주도 소탈하고 친근한 행보로 국민적 지지가 높다. 지난해 12월 쓰러진 이후에도 그의 회복을 기원하는 국민들의 출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선왕이나 자식과 달리 와치랄롱꼰 국왕 자신이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심한 여성 편력과 애완견 생일 파티 영상 유출 등으로 물의를 일으켜 태국 내 왕실 및 사법개혁 요구에 불을 지피고 있다.

레오노르(왼쪽) 스페인 공주가 4월 8일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 마을에서 열린 ‘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공연장에 들어서고 있다. EPA 연합뉴스

1975년 즉위했던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는 40년간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정치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선물한 국왕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남부 유럽 재정위기 당시 아프리카에 호화 코끼리 사냥을 하러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진 퇴위했다. 결국 아들인 펠리페 6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최근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레오노르 공주가 오는 10월부터 3년간 군사훈련을 받기로 해 화제가 됐다.

여러 비판에 자구 노력에 나서는 왕실도 있다. 스웨덴 왕실은 왕실 규모를 간소화했다. 1남 2녀를 둔 칼 구스타브 스웨덴 국왕은 2019년 10월 왕실 일원을 본인 부부, 세 자녀와 배우자, 왕위 계승자 빅토리아 왕세녀의 1남 1녀로 제한했다. 현 나루히토(德仁) 국왕의 조카 마코(眞子) 전 공주의 결혼 문제로 구설에 올랐던 일본 왕실은 국민 소통 강화를 위해 SNS 계정 개설을 검토 중이다.

김현아·황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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