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누구에게나 없을 수도, 그저 서툰 나를 찾는 여정일 뿐
‘조용한 이주’ 전주영화제 상영
“부모님 안 계셔 말할 수 있죠”
‘리턴 투 서울’ 배우 박지민
“정체성 고민 입양자와 같아”
국외 입양아들이 겪는 고립과 정체성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두편의 장편 영화가 한국을 찾았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조용한 이주>를 연출한 덴마크 입양아 출신 말레나 최 감독과 4일 개봉을 앞 둔 <리턴 투 서울>의 프랑스 이민자 박지민 배우를 각각 전주와 서울에서 만났다.
“(저를 입양한)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이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진행 중인 지난 29일, 전주 영화의거리 카페에서 만난 한국계 덴마크 감독 말레나 최(49)는 생후 6개월 때 덴마크로 입양되어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완성한 장편영화 <조용한 이주>를 들고 영화제를 찾았다. ‘최’는 입양서류에 적혀있던 그의 한국 성을 덴마크 부모가 이름에 넣어준 것으로 본명은 말레나 최 젠슨이다.
<조용한 이주>의 열아홉살 청년 칼은 아이를 낳지 못한 농부 부부가 한국서 입양한 유일한 자식이다. 칼에게는 인적 드문 시골 농장에서 아버지와 일하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이 없다. 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칼이 입양아로서 느끼는 어려움을 돌봐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입양아 출신 중 대도시에 살면서 많은 교류를 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혼란이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안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아주 많거든요.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어요.”
그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을 아껴준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양기관의 잘못된 가이드라인으로 많은 입양 부모들이 아이에게 과거나 뿌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소심한 성격의 아이들은 부모가 불편해할까 봐 질문을 참으면서 성장하죠.”
유순한 칼은 종종 친척이나 이웃들에게 ‘악의 없는’ 농담처럼 인종차별을 당하지만 부모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문제 해결을 회피한다. 입양아 이슈가 사회적으로 또 책이나 영화 등에서 다뤄지면서 차별, 학대 문제에 대한 공론화는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평범하고 겉보기에 문제 없어 보이는 입양가정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과 무지로 인한 상처, 깊은 고립감에 대해 조용히 말을 건네는 영화는 드물다. <조용한 이주>는 이처럼 입양아라는 주제가 다양한 갈래로 진화해 가는 양상을 스크린에 담아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받았다. 주인공 칼을 연기한 코넬리우스 원 리델 클라우센 역시 입양아 출신 비전문배우로 코펜하겐 길거리에서 캐스팅했다고.
70년대생이지만 말레나 최 감독이 어린 시절 한국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한국전쟁 직후의 가난과 굶주림이 전부”였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과) 연결되고 싶지 않았는데 2007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입양아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 한국에 오고 (발전된 모습에) 무척 놀랐다”고 했다. 이때부터 입양아들과 교류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고립된 시골 농장에 살다가 16살 때 가출해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는 한 덴마크 입양아 남성의 실제 사례가 <조용한 이주>의 모티브가 됐다. 2017년 덴마크 입양아 출신 두 남성의 한국행을 담은 다큐멘터리 <회귀>에 이어 이번 작품을 내놓은 최 감독은 입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한국에서 가족을 만나 함께 살게 되는 입양아 여성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준비 중이다.
4일 국내 개봉하는 프랑스 영화 <리턴 투 서울> 역시 한국에서 입양된 프랑스 입양아 출신 여성을 통해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한국인 입양아 친구를 둔 캄보디아계 프랑스인 데이비드 추 감독이 한국에서 친구의 생부를 함께 만났던 강렬한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았고 프랑스에서는 대중적인 성공도 거뒀다.
영화에서 주인공 프레디를 연기한 배우 박지민(35)는 여덟살 때 부모님을 따라 프랑스로 이민 간 비주얼 아티스트다. 26일 서울 동작구 극장 아트나인에서 만난 박씨는 입양아 친구들도 많고 “사춘기 때 정체성 문제에 심하게 흔들리고 고민하면서 입양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회화와 조소, 설치를 넘나들며 해온 작업의 주제도 ‘정체성’이다. 데이비드 추 감독의 시나리오 초고를 본 친구가 고집스럽고 모순된 인물인 프레디가 자신을 똑 닮았다고 추천해 처음으로 배우를 하게 됐다. 영화에 합류하며 감독과 토론하고 “때로 서로 소리지르고 울고 싸우면서 프레디라는 인물을 함께” 다듬어갔다.
<리턴 투 서울>에서 프레디는 일본에 가려다가 기상상태 때문에 한국에 체류하게 된다. 불어를 할 줄 아는 숙소 친구들의 생부모를 찾아보라는 권유에 망설이던 프레디는 갈수록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만난다. 하지만 환대하는 아버지와 다른 식구들과 지내면서 오히려 이전에는 몰랐던 혼란과 분노에 빠지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 끝에 한국을 찾는 게 아니라 한국에 온 다음 혼란과 좌절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게 된다는 점에서 <리턴 투 서울>이 입양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새롭다.
영화는 7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프레디의 한국 여정을 담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여정을 떠나는 프레디를 마지막 장면에 담는다. 박지민은 “십대 때부터 정체성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해답을 찾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산다. 뿌리가 없는 느낌은 꼭 입양아나 이민자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 친구들과도 자주 이야기하는 주제다. 중요한건 서툴지만 나를 찾는 여정을 포기하기 않고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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