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도 징벌적” 다시 헌재 심판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현행 대체복무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은 100여 건에 달한다. 2021년 첫 헌법소원 접수 이후 약 2년 동안 제기된 숫자가 이렇다. 대체복무요원은 육군의 2배인 36개월 동안 교정시설(교도소·구치소)에서 합숙 형태로 복무한다. 이런 방식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게 헌법소원의 청구 취지다.
대체복무제도는 2020년 1월 도입됐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대체복무 도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헌재의 결정으로 탄생한 제도가 불과 1년 만에 다시 헌재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헌법소원 청구인 측은 헌재에 공개변론도 신청한 상태다.
현재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또다시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정부와 국회가 뚜렷한 의지나 움직임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병무청은 헌재의 헌법소원 결과와 함께 국민 여론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재 결정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여론조사 결과가 담긴,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도 나왔지만 정부가 상황을 관망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체역 편입 여부를 심사하는 병무청 산하 ‘대체역심사위원회’가 개편안을 병무청에 제안하기 위해 막바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심사위의 제안만으로 제도가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 국회에서 제도 개편을 공론화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울림은 크지 않았다. 사법부의 판단이 나온 이후 정부와 국회가 마지못해 따라가기보다는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대체복무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2021년 1월 현행 대체복무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처음 제기했다. 복무기간을 36개월, 복무형태는 합숙 등으로 규정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대체역법)의 조항들이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취지다. 이후 복무 분야를 교정시설로 한정한 대체역법 조항도 포함된 헌법소원도 잇따라 헌재에 접수됐다. 청구인은 대부분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이들이다. 대체역 편입이 승인돼 소집을 기다리는 이들도 헌법소원을 냈다. 모두 100건이 조금 넘는다.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리·변호해온 오두진 변호사의 설명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서 병역기피자로 처벌받지 않게 됐다. 이 때문에 제도 시행 초기에는 수긍하는 마음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복무생활을 해보니 너무나 징벌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통제되는 데다 교도소는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기 때문에 긴장도도 매우 높다. 이런 곳에서 3년을 합숙 복무하라는 건 상당한 인권침해다. 이들은 헌재와 대법원에서 양심의 자유를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처벌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현행 제도가 자신들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헌법소원 청구인 측은 올해 1월 헌재에 공개변론 개최를 신청했다. 헌재는 보통 자체 심리를 통해 결론을 내리지만, 사회적 관심사가 높아 여러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으면 공개변론을 열기도 한다. 헌법소원 사건의 청구인 측 대리인인 이창화 변호사는 “헌재가 당초 2018년 대체복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우려를 나타낸 부분이 있었다. 현행 대체복무제도는 헌재가 우려한 내용이 현실화된 것”이라며 “이와 관련된 주요 쟁점들을 공개변론 때 직접 설명해 헌재가 이 사건을 심리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공개변론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언급한 ‘헌재의 우려’는 이렇다. 헌재는 2018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을 규정하지 않은 당시 병역법 조항을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헌재는 대체복무의 기간 등이 과도해 징벌적 성격을 가진다면 기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정문에 있는 해당 내용이다.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사이 복무 난이도나 기간의 형평성을 확보해 현역복무를 회피할 요인을 제거한다면 심사의 곤란성과 병역기피자의 증가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 다만 대체복무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도 도저히 이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다.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소방·보건·의료·방재·구호나 노인·장애인·중증환자 등의 보호·치료·요양 분야에 복무한다면 공익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 헌재는 해당 결정을 내리기 전 공개변론을 개최한 바 있다.
대체복무 방식이 가혹해 헌재의 판단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체복무조차 거부한 사례도 나왔다. 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징벌적인 대체복무제를 거부하는 것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재판 과정에서 다른 대체복무자들이 증인으로 나와 복무실태를 진술하기도 했다. 대체역심사위원회의 심사 과정에서도 편입 신청자가 현행 제도가 징벌적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적도 있다고 한다.
정부와 국회는 제도 개편과 관련해 검토하거나 추진 중인 사안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대체복무제도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진정 40여 건이 제기된 상태다. 인권위의 결정은 여론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 효력은 권고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제도개선을 위해 당장 기댈 수 있는 건 헌재의 결정밖에 없다는 얘기다.
병무청 “헌법소원 결과와 국민 정서 고려”
실제 병무청은 제도 개편의 검토 여부를 묻는 질문에 “관련 사안이 헌법소원 청구로 헌재가 심리 중이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 방향과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병무청은 “대체역 제도는 2020년 도입 시 병역의무의 형평성, 현역병 사기, 국민 공감대 등을 고려해 복무기간·분야·형태가 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이기식 병무청장도 지난 4월 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헌법소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최근 국회에서 대체복무제도의 개편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긴 했다.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대체복무와 관련한 질의를 했다. 대체복무요원은 교정시설에서 복무하기 때문에 법무부도 관리책임이 있다. 김 의원은 대체복무요원의 숫자와 실태조사 등을 물었지만, 한 장관은 사전에 받은 질문 요지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라 답하기 어렵다고 맞섰다.
김 의원은 이튿날 개최된 국회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다시 대체복무 얘기를 꺼냈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제도를 재평가해 그간 악용된 사례가 없다면 대체복무의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유균혜 국방부 기획관리관도 “대체복무 당사자들은 신념을 가지고 대체역을 신청했다. 복무환경이 굉장히 가혹하기 때문에 신념이 없으면 대체역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라며 “업무환경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실 복무만족도가 그리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반면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가 큰 혜택을 주는 것인데 그것조차 (복무기간을) 또 내린다? 지금 종교적 신념 등을 국가가 인정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지금 더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대체역심사위원회가 대체복무의 개편방안을 병무청에 제안하는 방법도 있다. 심사위는 2020년 6월 출범 이후 자체적인 개편안을 도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를 진행해 왔다. 다만 심사위원 29명의 성향과 입장이 다양한 만큼 접점을 찾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 전직 심사위원은 “심사위원 가운데 복무기간 단축, 분야 확대, 출퇴근 가능 등을 제안하자는 의견이 있는 반면, 복무기간을 손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일이기 때문에 기간 조정만 하자는 견해도 있다. 개인마다 생각의 폭이 다르고 개성이 강해 의견 조율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심사위가 단일안을 정리해 병무청에 제안한다고 해서 그대로 반영되는 건 아니다. 병무청은 “심사위가 제안을 할 수는 있지만 제도개선은 심사위 제안만을 전제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라며 “국민 여론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이뤄진다”고 밝혔다. 다만 심사위의 개편방안이 공개된다면 대체복무제도를 둘러싼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마중물이 될 수는 있다.
이 외에도 대체복무요원들은 여러 제도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 병역판정검사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가 가능한 4급을 받더라도 대체역에 편입되면 무조건 교정시설에서 합숙 형태로 복무해야 한다. 현역과 보충역 등에게 적용되는 복무부적합제도도 대체역은 예외다. 현역은 전상·공상·질병이나 심신장애를 갖게 되면 복무 중에 신체검사나 심사 등을 거쳐 전역할 수 있다. 사회복무요원도 질병 등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어려우면 소집을 해제할 수 있다. 병무청은 대체역에도 복무부적합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지만 구체화된 구상이 나온 건 아니다. 병무청은 “대체복무요원의 권익 보호, 다른 병역의무자와의 형평성 등 다양한 관점에서 도입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현재 구체적인 검토 단계는 아니지만 소집해제 기준은 현역, 사회복무요원 등 다른 역종의 기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체역 제도 개편을 주제로 한 연구용역 보고서도 완성된 상태다. 대체역심사위원회가 2022년 발주한 ‘대체역 제도 발전 방안’ 연구용역이 그해 12월 마무리됐다. 보고서는 대체역을 시행하는 해외 사례와 국내 여론조사, 전문가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개편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보고서는 해외 사례와 전문가 인터뷰 결과를 종합 분석한 결과, 대체복무기간은 육군(18개월)의 1.5배(27개월)가 적합하다고 결론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답변한 평균 적정 복무기간은 1.70~1.88배로 측정됐다고 밝혔다. 여론조사는 일반 시민 1000명, 현역군인 208명, 입대예정자 264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에 따라 1~3년 이내에 1.8배(약 32개월) 수준으로 단축하고 이후 제도점검 및 여론조사 등을 통해 1.5배로 순차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연구용역 “복무기간 1.5배로 단축해야”
교정시설뿐인 복무 분야와 합숙인 복무형태도 다각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외국 사례 대부분이 다양한 복무 분야를 활용하고 있다”며 “또 대부분이 출퇴근을 채택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국제적 분위기와 국민 여론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도 “대체역 제도의 지속적 개선과 징벌성 문제의 해결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국민의 우호적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2000년 대체복무를 도입한 대만의 사례를 제시하며, 복무 분야 확대가 대체복무와 관련한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썼다. 또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신념 존중, 신안보에 대한 중요성과 대체역의 기여 가능성 등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용역을 발주하기 전부터 대체역심사위원회 내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론조사가 포함된 연구용역을 동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보편적인 인권 관련 정책은 정부와 국회가 의지를 갖고 반대 여론을 설득해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사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도 보호해야 할 가치라고 인정한 터다. 헌재는 2018년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는 사회공동체의 법질서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어 “비록 이들의 병역거부가 국가공동체의 다수의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해도,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헌법 질서 아래에서는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형벌권을 곧바로 발동해야 할 정도의 반사회적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현행 대체복무제도를 형벌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대체복무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지적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체복무에 대한 여론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인권을 존중하는 정부라면 외려 국민을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로 연구용역 결과가 활용될 수 있다. 인권적인 요청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나마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놓으니까 행정부가 마지못해 좇아가는 형식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소수자 등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사법부의 결정에 따라 조금씩 보장돼 가는 게 한국 인권의 현실이다. 헌법에 맞춰 인권을 보장하는 취지로 법을 제정한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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