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건그룹, 오너 2세 길 터주려 모태회사 희생시켰나
박승준 사장 등이 법인 손해만큼 시세차익 거둬 논란 예상
(시사저널=이석 기자)
이건그룹이 최근 2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지주회사인 이건홀딩스는 3월29일 주주총회에서 오너 2세인 박승준 사장을 사내이사로 새롭게 선임했다. 3월6일 창업주인 박영주 회장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201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분 승계 또한 사실상 마친 상태다. 이건그룹은 당시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던 이건창호를 투자회사인 이건홀딩스와 사업회사인 이건창호로 분할했다. 이건홀딩스가 이건창호와 이건산업, 이건그린텍 등을 거느리는 수직적 지배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당시 박승준 사장은 지주회사의 지분 20.2%를 확보했다. 이후 유상증자를 거치면서 박 사장의 지분은 29.7%까지 늘어나게 된다. 작고한 박 창업주(13.42%)와 딸인 박은정(7.94%)씨 등의 지분까지 포함할 경우 우호지분은 53.14%에 이른다.
1년 만에 이건홀딩스 주가 반 토막, 왜?
별세한 박 창업주의 지분을 유족들이 어떻게 승계할지에 대한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박승준 사장이 이 지분을 모두 상속받을지, 가족들이 나눠서 상속받게 될지는 미지수다. 회사 측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지분 승계가 상당 부분 이뤄져 있는 만큼 경영권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박 사장의 경영 능력 또한 어느 정도 검증된 상태다. 박 전 회장은 2010년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이후 박 사장은 주력 계열사인 이건산업과 이건창호, 이건에너지 등에서 대표이사를 지냈다. 사실상 아버지를 대신해 그룹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적표도 나쁘지 않다. 지주사인 이건홀딩스의 전사 연결 기준 매출은 2010년 3595억원에서 지난해 5076억원으로, 영업이익은 63억원에서 221억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경영 환경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이건홀딩스의 매출은 4749억원에서 5076억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87억원에서 221억원으로 사실상 반 토막이 났다. 영업이익률 역시 8.1%에서 4.4%로 하락했다. 분기별로 보면 이런 기조가 더욱 뚜렷해진다. 지난해 1분기부터 영업이익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시간이 갈수록 감소 폭이 가팔라지고 있다. 코로나19 특수로 호황을 누리던 목재 사업이 지난해부터 부진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주목되는 것이 부채 비율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이건홀딩스의 부채 비율은 128.70%에 이른다. 2021년(134%)과 비교하면 소폭 하락했지만, 경쟁사인 성창기업지주(37.7%)는 물론이고 한솔홈데코(103.3%)보다 높게 유지되고 있다. 기업의 대금 지급 여력을 보여주는 유동비율도 86.4%를 기록했다. 통상 재계는 유동비율 150% 이상을 안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주가가 요동을 치고 있다. 정확히 1년 전 장 중 5900원으로 최고점을 찍었던 주가는 4월25일 3020원으로 48.8%나 감소했다. '경영 홀로서기'에 나선 박승준 사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우선 주목된다.
승계 과정에서 나온 잡음도 박 사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이건그룹의 모태회사는 1972년 박영주 창업주가 설립한 이건산업이다. 이후 신사업 진출과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사세를 확장했지만 그룹 지배구조의 꼭대기에는 항상 이건산업이 자리를 지켰다. 최대주주 역시 박영주 회장이었다. 30여 년간 이어온 이 지배구조가 2005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이건산업은 이건그린텍과 이건환경 등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리했다. 이건산업의 영업이익은 한동안 적자에 머물러야 했다.
박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이건창호는 반대였다. 이건환경과 이건그린텍, 이건인테리어 등 이건산업에서 물적분할되거나 계열 제외된 자회사들을 잇달아 인수해 덩치를 키웠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주가 기존 지분만큼 신설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인적분할과 달리 물적분할은 분할 주체가 신설 회사의 지분 100%를 가진다. 또 법인의 합병 및 분할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세제 지원도 하고 있다"면서 "이런 회사를 사실상 2세 회사에 넘기는 것은 편법 승계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건인테리어의 경우 이건산업의 매수청구권을 가진 알짜 회사다. 이 회사를 인수하게 되면 매수청구권을 승계받아 그룹 지배구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된다. 이건창호는 2008년 7월 이건산업 자회사였던 이건인테리어마저 흡수 합병했고,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오른다. 그룹 차원의 오너 2세 밀어주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소액주주들의 집단소송 가능성도
이건산업은 2008년 7월 이건환경도 연결 대상에서 제외했다. '1년 이내 처분 예정 주식'이라는 게 이유였다. 이듬해 이건창호가 이건환경을 자회사에 포함시켰다. 이때까지는 이건창호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1년 이건환경에 대한 이건창호 지분이 100%에서 40%로 줄어들게 된다. 나머지 60% 지분은 박 창업주의 부인 박인자씨(21%)와 딸 박은정씨(39%)에게 넘어간다. 2010년 기준으로 매출 364억원, 영업이익 23억원의 알짜 회사를 2세 회사에 넘긴 후, 다시 오너 일가에게 지분을 넘겼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그룹 차원의 밀어주기를 통해 이건창호(현재 이건홀딩스)는 지난 20여 년간 고속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해 이건홀딩스는 연결 기준으로 매출 5076억원, 영업이익 221억원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감사보고서 검색이 가능한 1999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1086%, 영업이익은 391% 각각 증가했다. 박승준 사장은 지분 가치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뿐 아니라 매년 10억~15억원의 배당금도 지급받고 있다. 같은 기간 매출이 1172억원→3293억원, 영업이익이 140억원→193억원으로 증가한 이건산업과 비교되고 있다.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검증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건산업과 이건홀딩스가 상장사라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이건산업의 경우 1998년 코스피에 상장했다. 이건홀딩스는 2005년 코스피에 상장했다는 점에서 향후 주주들의 반발도 우려된다. 시사저널은 이건그룹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하고, 메시지도 남겼다. 하지만 회사 측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입장만 시사저널에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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