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9일 만에 1위 오른 롯데, 부산 갈매기의 화려한 부활?
롯데는 지난 30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키움히어로즈와 경기에서 5-3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13년 만에 8연승을 달린 롯데는 14승 8패 승률 .636를 기록했다. 같은 날 두산베어스에 패한 SSG랜더스(15승 9패 승률 .625)를 승차 없이 2위로 밀어내고 순위표 꼭대기를 점령했다. 롯데가 8연승을 거둔 것은 2010년 6월 3일 사직 LG전∼6월 11일 사직 한화전 이후 4706일 만이다. 10경기 이상 기준으로 리그 1위로 올라선 것은 2012년 7월 7일 이후 3949일 만이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롯데를 우승후보로 꼽은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5강 후보로도 거론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롯데 전력을 하위권으로 평가했다,
이유가 있었다. 롯데가 최근 10년 가운데 가을 야구를 경험한 것은 2017년 딱 한 번뿐이었다. 그나마도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낙동강 라이벌’ NC다이노스에 패해 일찍 탈락했다.
최근 5년 성적은 참담했다. ‘7-10-7-8-8’이었다. 가을 야구 경쟁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승률 5할을 넘긴 적도 없었다. 이번 시즌은 다르다. 4월 첫 달을 1위로 마감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심지어 롯데 선수나 팬조차 그랬다.
롯데 돌풍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나균안’이다. 나균안은 4월에만 5경기에 선발 등판해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34를 기록했다. 외국인 투수와 토종 에이스 박세웅을 제치고 당당히 팀의 1선발로 자리매김했다.
원래 포수로 입단해 1군 경기에 216경기나 출전했던 나균안은 2021년 뒤늦게 투수로 전향했다. 모두가 실패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오산이었다. ‘투수’ 나균안은 대성공이었다. 투수 변신 첫해 23경기에 나와 가능성을 보였다. 지난해는 39경기나 등판해 117⅔이닝을 책임졌다. 이번 시즌에는 아직 초반이지만 KBO를 대표하는 최고 투수로 발돋움했다.
나균안의 빠른 공 구속은 140km대 초반에 불과하다. 대신 안정적인 제구력이 일품이다. 33⅔이닝을 던져 삼진 29개를 잡는 동안 볼넷은 단 8개만 허용했다.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포크볼로 타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닝당 출루 허용(WHIP)이 0.89에 불과할 정도로 투구 내용이 압도적이다. 나균안이 마운드의 중심을 확실히 잡아준 덕분에 롯데는 연패 걱정을 덜었다. 선수들은 ‘나균안이 나오면 확실히 이긴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적극적인 전력 보강도 롯데의 초반 상승세를 이끈 원동력이다. 롯데는 지난 시즌 후 돈보따리를 과감하게 풀었다. FA 시장에서 포수 유강남(4년 총액 80억원), 유격수 노진혁(4년 총액 50억원), 투수 한현희(3+1년 총액 40억원)를 영입했다. 선발투수 박세웅과 맺은 5년 최대 90억원 장기 계약까지 포함해 스토브리그에서 290억원을 쏟아부었다. 다른 팀에서 방출된 투수 김상수·신정락·윤명준, 외야수 안권수 등을 데려와 뎁스를 보강했다.
이들의 가세는 롯데에 큰 힘이 됐다. 큰돈을 주고 데려온 FA 3인방은 물론 헐값에 데려왔던 방출 선수들까지 부활쇼를 펼쳤다. 이들 모두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외부 자원들의 가세는 기존 선수들의 경쟁의식을 자극했다. 내부적으로 건강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다.
투수력은 불안 요소로 꼽힌다. 롯데의 팀 평균자책점은 4.75로 10개 구단 중 9위다. 선발투수 평균자책점은 5.03으로 꼴찌다. 외국인 투수 댄 스트레일리와 찰리 반즈의 부진이 결정적이다. 스트레일리는 5경기 2패 평균자책점 5.82, 반즈는 4경기 1승 1패 평균자책점 7.58로 부진하다. 외국인 투수가 시즌 내내 제 몫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치명적이다. 롯데도 이를 모르는게 아니다. 외국인 투수 두 명 중 한 명은 교체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이번주 시험대에 오른다. 주중에 KIA타이거즈와 대결한 뒤 주말에는 삼성라이온즈와 맞붙는다. KIA와 삼성 모두 나란히 최근 5연승을 달리고 있다. KIA는 주말 잠실구장에서 LG트윈스를 상대로 5년 10개월 만에 3연전을 싹쓸이했다. 집중력이 살아난 삼성은 최근 5경기 연속 한 점 차 승리라는 진기록을 썼다.
롯데는 과거에도 봄에 좋은 성적을 냈다가 시즌 중반 이후 내려앉은 적이 많았다. 봄에만 반짝한다고 해서 ‘봄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작년에도 롯데는 시즌 초반 잘했다. 4월 성적 14승1무9패로 2위였다. 승수는 올해 4월과 같았다. 5월부터 성적이 추락했고 결국 8위로 시즌을 마쳤다. 지금 롯데 성적에 기뻐할 수는 있어도 흥분하고 설레발은 아직 이르다는게 공통 의견이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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