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으로 물든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초록'을 찾아 떠났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했다.
싱가포르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언제나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심이 먼저 떠올랐다. 회색빛 감도는 서울처럼 말이다. 이번 싱가포르 여행에선 도심 속 초록을 찾아 헤맸다. 거리 곳곳에 심어진 꽃과 나무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시원하게 트인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게 되었다. 무성한 건물 숲 사이로 얼굴을 내민 싱가포르의 초록에 대하여.
●Gardens by the Bay
판도라 행성, 가든스 바이 더 베이
2022년 개봉작,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떠올랐다. 3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에 펼쳐졌던 판도라 행성은 가끔 꿈에서도 등장하곤 했다. 꿈으로 꾸던 그 장소를 현실의 싱가포르에서 여행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6월30일까지열리는 <아바타: 더 익스피리언스> 전시회를 찾았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초현실적인 친환경 공원이다. 이곳에는 2개의 유료 실내정원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인 '클라우드 포레스트'에서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정원 내부는 영화 속 판도라 행성 그대로다. 판도라를 날아다니던 '이크란(영화 속 등장하는 거대 비행 생물체인 조류)'이 실제 존재하는 듯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와 낯선 식물들 사이로 나비족(아바타 시리즈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비족이 되어 보는 체험과 직접 이크란이 되어 암석 지대를 날아 보는 액티비티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누군가 꿈꾸며 만들어 낸 장소를 싱가포르가 구현해 냈다. 판도라 행성이 싱가포르에 있다.
●Sungei Buloh Wetland Reserve
도시 옆 야생, 숭게이 부로 습지 보호지구
싱가포르는 열대우림 기후다. 한낮에 초록을 찾으려면 더위를 감수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해가 빼꼼 뜨기 시작한 이른 아침, 일찍 습지로 향했다. 카야잼에 들어가는 '판단(Pandan)'과 동물들에게 열매를 제공하는 공작야자(fishtail palms), 탄소 저장고 맹그로브, 하늘을 뱅뱅 나는 독수리가 있는 습지다. 이름하여 숭게이 부로 습지. 싱가포르 북서부에 위치한 자연공원으로 1993년 공식 개장했고, 2002년에 130만 평방미터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추위를 피해 호주로 날아드는 철새들이 쉬다 가는 중요 쉼터이기도 하다.
숭게이 부로 습지의 맹그로브 군락지를 지나 깊숙이 탐험했다. 앞서 걷던 일행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사는 악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악어가 살 만한 환경이 도심에 있다는 게 놀라운 일 아닌가.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쉬고 있는 악어의 모습은 평화 그 자체였다. 바위에서 쉬고 있는 도마뱀과 천장에 매달려 잠을 자는 과일박쥐까지 보고 나니 자연이 한 뼘 더 가깝게 느껴졌다. 도시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은 야생인데, 참 깊고 진하다.
●Sentosa Island
해변에 숨은 거인 이야기, 센토사섬
싱가포르는 사면이 바다지만, 수심이 너무 깊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부족하다. 시원한 바다에 풍덩 몸을 담그고 싶을 땐 센토사섬이 제격이다. 센토사섬은 인공섬이다. 동서 길이 4km, 남북 길이 1.6km로, 여의도 2배 면적에 달한다. 과거 해적의 근거지였는데 정부의 개발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센토사는 말레이어로 '평화와 평온'을 의미한다. 이름 따라간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되새긴다.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비치발리볼을 하거나 패들 보트의 노를 유유히 저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를 느낀다. 센토사섬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센토사'가 넘치는 곳이다.
센토사섬에 위치한 팔라완 해변에는 특별한 작품이 있다.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토마스 담보(Thomas Dambo)가 4명의 거인들을 해변 곳곳에 숨겨 놨다. '거인들의 대장(Reef the Chief)'과 '궁금함이 많은 수(Curious Sue)', '작은 린(Little Lyn)' 그리고 '꿈꾸는 디(Dreamer Dee)'까지. 해변을 거닐며 4명의 거인 탐험가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2024년까지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센토사 탐험가들(Explorers of Sentosa)'은 무게만 5.5톤에 달한다고 한다. 전부 버려진 폐목재와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작품들이다.
●Fort Canning Park
도심 속 힐링, 포트 캐닝 공원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일까. 모두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유유히 공원으로 향할 때가 아닐까. 싱가포르의 아침, 누군가의 출근 시간에 맞춰 가벼운 옷차림으로 포트 캐닝 공원으로 향했다. 지금만큼은 나보다 여유로운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포트 캐닝 공원에는 9개의 정원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지하 군사 시설로 사용되었던 '배틀 박스' 등 역사적인 유물들이 가득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포토 스폿은 역시 '트리 터널(Tree Tunnel)'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나선형의 정원, '스파이스 가든(Spice garden)'에서 인생숏도 건지고 우거진 나무와 드넓은 잔디를 보고 있으니 그 어떤 걱정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Green Dining in Singapore
싱가포르에서 지속 가능한 한 끼를 찾았다.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강한 초록색 한 상을 소개한다.
논 비건도 반한 맛,
러브 핸들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안샹로드(Ann Siang Rd)에 자리한 러브 핸들은 2022년 2월에 오픈한 신상 비건 식당이다. 오로지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한 플랜트 베이스드(Plant Based) 메뉴를 선보인다. 단 1g의 동물성 재료도 사용하지 않았다. 대표 메뉴인 햄버거의 패티는 콩으로 대체했고, 체다 치즈의 풍부함은 코코넛 오일로 대체했다. 1층에서는 대체육 식재료를 팔고 있고, 2층은 식당으로 러브 핸들의 메뉴를 맛볼 수 있다. 라구 파스타, 사테, 비프 웰링턴 등 '대체육'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고기 요리보다 맛있다.
로컬 음식의 정수,
스케일드 바이 아 후아 케롱
스케일드 바이 아 후아 케롱은 싱가포르의 북쪽과 동쪽 해안에 2곳의 양식장(Kelong)을 운영하는 '아 후아 케롱'에서 만든 해산물 전문점으로 싱가포르 내에 있는 양식장에서 식당을 처음 연 곳이다. 치어부터 정성스럽게 키워 식당에 공급하는 만큼 재료의 신선함이 살아 있다. 추천 메뉴는 오징어 강정과 씨푸드 리조또. 오징어 강정은 한국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만큼 매콤한 맛이 일품이고, 씨푸드 리조또는 보리의 고소함과 톡톡 터지는 식감이 입 안을 즐겁게 만든다.
지속가능한 한 끼,
커스모
싱가포르는 경작지가 거의 없어 식료품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식재료를 수입해 오는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과 모양이 안 예뻐서, 또는 과잉 공급으로 버려지는 식재료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커스모가 나섰다. 커스모의 공동 창업주인 리사(Lisa Tang)와 추(Kuah Chew Shian)는 미국 요리 학교를 졸업 후 제로웨이스트 식당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과잉 재고, 이상한 모양과 크기의 식재료를 활용한 코스요리를 선보인다. 그날의 식재료에 따라 만들어진 근사한 요리들이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내 준다.
하루의 마무리,
아날로그
여행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할 때 알코올이 빠지면 섭섭하다. 고딕 양식의 수녀원에서 복합 몰로 변신한 차임스(Chijmes)에는 채식주의자도 육식주의자도 만족할 비건 바(bar) 아날로그가 있다.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3D 프린팅바와 버섯균사체로 만든 테이블은 비건을 지향하는 아날로그의 콘셉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식물성 너겟과 비건 치즈와 일본식 된장 소스가 얹어진 푸틴(감자튀김)을 안주 삼아 상큼한 칵테일로 하루를 마무리해 보자.
글 김다미 기자 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싱가포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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