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헌, 후배의 "공 진짜 더럽던데요"가 최고의 칭찬이었다
[이종훈 스포츠평론가]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다니던 회사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는다면? 눈앞이 캄캄해질 것이다. 25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며 16년을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도 많고, 예전에 아파서 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았다"는 이유로 다들 기피하고 외면한다면? 당장 먹고살 길조차 막막해진,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분일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또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재취업을 위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보내고 답이 오길 기다린다. 하지만 연락은 감감무소식. 4개월이나 지났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 '다 끝났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다시 채용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첫 출근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의 투수 정찬헌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겪은 일이다. 정찬헌은 지난해 11월, 생애 첫 FA(Free Agent)를 선언했다. 자신이 얻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었지만, 시장은 그를 외면했다. 그렇게 정찬헌은 4개월간 소위 'FA 미아'로 지내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2023년 시즌 개막을 닷새 앞둔 지난 3월 27일. 정찬헌은 원 소속팀 키움과 극적인 FA 계약을 맺고 다시 마운드에 섰다.
벚꽃이 한창이던 지난 4월 17일 서울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그를 만나 궁금했던 질문을 모두 쏟아냈다.
- 3일 전(4월 14일) 두산 베어스 2군과의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올 시즌 첫 등판을 신고했다. 첫 등판은 어땠나요?
"만족스러웠어요. 3이닝 동안 던지면서 안타를 3개 맞긴 했지만, 잘 맞은 타구는 하나였어요. 결과도 크게 나쁘지 않았고, 또 구속도 뒤로 갈수록 조금씩 더 올라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어요. 다만 겨울 동안 혼자 연습하면서 생각해 온 방향이 있는데, 막상 시합을 들어가니까 연습 때와는 달리 예전의 버릇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게 좀 불만이긴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이 보였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또 작년을 기준점으로 봤을 때, 구속이나 몸 상태는 지금 오히려 더 좋아지고 있는 케이스라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어요."
- '예전의 버릇'이라고 하면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영업 비밀이라 그건 말씀드릴 순 없어요.(웃음)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타자와의 승부를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하는 겁니다. 뭐랄까? 구속이 좋지도 않은 애가 자꾸 옛날 생각만 하고 공격적으로 던져 타자와 빠르게 승부를 하려고만 한다고 할까? 그러니까 제가 자꾸 타자들에게 맞아 나가는 거죠.(웃음)
아무래도 공이 빨랐던 적이 있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마운드 위에서 가끔 강하게 던지려고 할 때가 있어요. 스피드가 예전처럼 안 나오는 걸 아는데도 말이죠. 제 나름대로는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강하게 공을 뿌려보지만 스피드가 안 나오니까 밋밋하게 공이 들어가요. 타자들에겐 딱 치기 좋은 공이죠.
이걸 좀 바꾸고 싶었어요. 타자와의 수 싸움을 좀 더 하고, 공을 최대한 지저분하게 던져서 타구의 질을 나쁘게 만드는 그런 투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습을 많이 했고, 또 스스로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시합에서 마운드 위에 올라가 타자를 상대하려고 하니까 연습 때처럼 잘 안 나오더군요.(웃음)"
- 마운드 위에 섰을 때 기분이 궁금해요. 어땠어요?
"감사했어요. 마운드 위에 서 있다는 게. 3월에 신경식 감독님이 이끄는 독립구단 성남 맥파이스에서 선수 등록을 하고 뛰었어요. 처음엔 적응이 잘 안됐어요. 프로에서 뛸 때랑은 야구장 환경이 하늘과 땅 차이였거든요. 별도의 불펜 투구장이 없기 때문에 맨바닥에서 몸 풀고 그냥 마운드 위로 올라가야 했어요. 또 그렇게 마운드 위에 올라가면, 마운드 주변의 땅은 또 이만큼씩 파여 있지…. 그래서 처음엔 투구 밸런스랑 영점 잡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참 좋은 환경에서 많은 걸 누리며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해왔고, 또 얼마나 소중한 기회들을 잡고 살아왔는지 느낀 거죠.
그래서 초구부터 직구로! 강하게! 던졌어요. 결과는 빵! 이날 경기에서 유일하게 잘 맞은 깨끗한 안타가 됐지만요. 하하하!"
- 광주일고와 LG 트윈스에서 뛰던 시절, 빠른 볼로 타자를 윽박지르던 정찬헌을 기억하는 입장에선 '공격적으로 투구하던 예전 습관'이란 말이 조금은 슬프게 들리는군요. 저는 첫 등판에서 140km/h가 나왔다는 뉴스 보고, '와아~ 정찬헌~ 공 빨라졌네!' 했거든요.(웃음)
"그날 경기에서 한 번! 딱 한 번 140km/h 찍었어요.(웃음) 우리 프로야구를 오랫동안 봐오셨거나, 위원님처럼 저의 그간 사정과 스토리를 알고 계시는 분들은 '이 친구가 원래는 공이 빨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느려졌고,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 이쪽 방향을 선택하게 됐다. 그러니까 140km/h면 괜찮다'고 이야기하세요.
하지만, 요즘 야구에 입문하신 분들이나 아님 느린 공을 던지는 제 모습부터 보신 분들 중에는 '정찬헌, 저거 저 구속 가지고 되겠어? 쟤는 안 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또 요즘은 160km/h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실제로 어린 친구들 중에는 160km/h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저 같은 유형의 투수는 많이 부족하고 불만족스럽게 보일 수 있죠."
- 그런 이야기 들으면 속상하지 않아요?(원래 정찬헌은 150km/h 초중반의 빠른 공을 던지던 우완 정통파 투수였다. 포심 패스트볼이 주 무기라고 불릴 만큼 빠른 공을 공격적으로 포수 미트에 꽂아 넣던 투수였지만, 6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지금은 빠른 공이 아닌 다양한 변화구와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다.)
"(웃으며) 전혀 개의치 않아요. 솔직히 지금 저한테는 '공이 빠르다'는 말보다 '공이 더럽다'는 말이 더 큰 칭찬이에요. 3일 전에 경기 끝나고 두산 베어스의 몇몇 후배들에게 제 공을 본 소감을 솔직히 말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대뜸 첫 마디가 "선배, 공 진짜 더럽던데요"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최고의 칭찬이다!" 그랬죠.(웃음)
공이 빨랐던 예전에는 삼진을 많이 잡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울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타자의 타이밍을 어긋나게 해서 빗맞게 할 수 있을까, 또 타자에게 어떤 공을 던져서 이미지를 심어주고, 그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해서 타자의 중심을 무너뜨리게 할까 같은 투구 디자인에 더 많은 고민을 해요. 고민의 지점과 원하는 방향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거죠."
- 앞에서 독립구단에서 야구하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고 했는데, 독립구단은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처음엔 실내에서 훈련하며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었어요. LG 트윈스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님께 조언도 구하고, 김광수 선배 등이 운영하는 레슨장에서 공도 던지고…. 그런데 2월이 되고 선수들이 해외로 전지훈련 간다는 이야길 들으니까 '현타'가 오더라구요.
그래서 '환경을 바꿔야겠다, 햇빛을 보면서 공을 던져야겠다' 생각해서 홍익대 야구부 캠프가 있는 순천으로 내려가 같이 운동했어요. 순천에서 라이브 피칭까지 다 소화했죠. 순천 캠프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좀 막막했어요.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하는데, 방법이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고민 끝에 독립구단이 성남 맥파이스에 이희성 투수 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제가 해온 훈련 스케줄을 다 이야기하고, 신경식 감독님께 강릉 캠프를 따라갈 수 있게 부탁 좀 드려달라고 말했어요. 감사하게도 감독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신 덕분에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준비를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강릉 캠프가 끝났을 때까지도 여전히 'FA 미아'였어요. 혹시 불안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나?' 이런 생각에 매일 매일 현타가 왔어요. 운동하다가 '왜 하고 있어?!', 공을 던지다가도 '왜 던지는 거야? 차라리 쉬지. 왜 던지는 거야?' 이런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어요.
근데 신기한 건 그래도 몸은 하고 있더라고요. 머리로는 '왜 하냐?' 이러면서 몸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반복됐어요. 즐거운 기억은 아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 보는구나. 내가 정말 야구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작년까지 제가 군대를 갔다 온 것까지 포함해 프로 유니폼을 15년 동안 입었는데요. 이번 겨울은 제가 프로에 입단한 이후 처음으로 팀의 도움 없이 혼자서 몸을 만든 겨울인데요. 코치님들이 안 계시니까 '이걸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또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혼자서 다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또 소속이 있는 상태에서 운동하는 것과 소속이 없이 운동하는 건 심리적으로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는 것도 느꼈구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프로 유니폼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또 그 유니폼을 입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 2019년 두 번째 허리 수술을 받으며 모두가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했을 때, '7번 넘어져도 일어나라'는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 노래를 매일 들으며 재활했고, 결국 다시 일어선 '오뚜기' 같은 정찬헌이니까 가능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찬헌 선수가 부상을 딛고 LG트윈스의 5선발로 돌아온 2020년은 한편의 감동 스토리였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세요.
"사실 선수로서는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수술했던 부상이 재발해서 2번째 수술이었고, 그때는 수술 이후에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지 없을지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어요.(정찬헌은 2016년 4월에 황색 인대 석회화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2019년 6월에 또다시 황색 인대 골화증 및 요추부 협착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받고 1주일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때 아내와 제가 기도했던 내용도 '다시 야구할 수 있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제발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게만 해 주세요'였어요. 그래서인지 아내도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말해요.
그때 저의 아이가 3살이었어요. 아이에게 아빠가 이렇게 누워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어요. 아이에게 '7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개구리 왕눈이' 같은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에게 도전하는 모습,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아빠의 마음, 부모의 마음이잖아요. 가족이 저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었고 버티게 해준 에너지였어요. 저 혼자였다면 절대 못 해냈을 겁니다.(웃음)
또 당시 저를 위해 해외 논문들을 샅샅이 뒤지느라 며칠 밤을 새우고, "야~ 너 때문에 내가 반(半) 척추 박사 됐다"고 말하던 이권엽 코치를 비롯한 LG트윈스 트레이닝 파트의 도움과 체계적인 관리가 없었더라면 저는 결코 다시 마운드 위로 돌아가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도움을 주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준 이권엽 코치를 비롯한 LG트윈스의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정찬헌의 야구 선수 인생은 2019년이라는 숫자와 함께 막을 내렸을 겁니다."
-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인데, 이때의 재기가 남긴 인상과 감동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이후 정찬헌 하면 '허리 통증'과 '10일 간격 선발 등판'이란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혔습니다. 하지만 연봉을 지불해야 하는 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이미지는 오히려 계약을 주저하게 만드는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요. 하물며 보상선수까지 내줘야 하는 FA라면 영입을 더 주저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FA 신청을 한 이유는 뭔가요?
"사실 FA 신청을 두고 고민 많았어요. 고심 끝에 FA 신청을 한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 조금이라도 더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FA 하면 돈을 먼저 생각하시는데요. 저는 오히려 FA신청을 하면 연봉이 예전보다 더 많이 깎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2022년 성적도 안 좋았고, 또 제가 10년 15년 공을 던질 수 있는 어린 선수도 아니고, 그래서 FA 신청을 하기 전날, 아내에게도 "돈 때문에 FA 시장에 나가는 것 아니지 않냐. 내가 뭐 대단한 선수도 아니고, 그냥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다면 주시는 대로 받자"고 말했어요."
- 하지만 반대로 'FA 미아' 기간이 길었다는 건 정찬헌 선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없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래서 좀 많이 불안하고 힘들었습니다.(웃음) 'FA 미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불명예스럽기도 하고, 이제껏 해왔던 15년이라는 시간이 물거품이 될 것 같은 그런 마음도 들었죠.
FA 신청을 한 두 번째 이유는 정찬헌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허리 통증'과 '10일 간격 선발 등판'이란 편견을 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10일 간격 선발 등판은 2020시즌에서 끝났고요. 2021시즌에선 주 1회 등판을 목표로 해서 뛰었고, 키움으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키움 구단에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규칙적인 선발 등판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부터 3년간 데이터를 뽑아보니까, 2021년에 23경기에 선발 등판한 걸 비롯해 평균적으로 한 시즌에 100이닝 이상, 20경기를 던질 수 있더라고요. 제 보직이 5선발인데, 보통 한 팀의 5선발은 한 시즌에 보통 20경기에서 많으면 25경기를 던져요. 만약 허리를 비롯한 제 몸 상태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겠죠.
하지만 바깥에서 저를 보는 시선이나 여론은 아직도 2020년도의 정찬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정찬헌은 10일 간격으로 등판하는 선발 투수로 보이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선수로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괜찮은데 제 입으로 이걸 어떻게 말로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FA라는 기회를 통해서 제가 괜찮다는 걸, 아직 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팀마다 투수 운영에 대한 계획들이 있으니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속상했죠."
- 독립구단에서 뛰면서 매일매일 현타가 오고, 많이 속상하고 불안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야구공을 놓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야구가 좋아서?
"'진짜 야구 지긋지긋하게 했다. 해볼 만큼 해봤다. 이제 더 안 해도 된다'는 마음이 안 들어서요. 어떻게 보면 자기만족이고, 자기 위로일 수도 있지만, '난 그래도 끝까지 해봤어! 근데 구단들이 계약 안 하겠다는데 어떡해?! 난 최선을 다했어!'라는 변명이나 핑계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대로 그만두면 후회가 남을 거 같았어요. 후회를 남기기 싫었어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끝내지는 않을 거야!' 하면서 말 그대로 발악을 한 거죠.(웃음)
하지만 3월로 딱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달라지더라고요. '괜한 내 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끙끙거리며 속앓이 한 시간이 많았어요. 운동장에 나가서 운동을 한다고는 하는데, 직장에서 갑자기 잘리고 가족들에게 말을 못 해서 한동안 정장 입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그런 심정이었어요. 야구 선수로서가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속앓이를 많이 했죠."
- 그러다 2023년 시즌 개막을 단 5일 앞두고 다시 키움 히어로즈와 FA 계약을 체결했다. 그것도 정찬헌 선수 측이 제시했던 금액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금액으로. 키움 히어로즈로부터 FA 계약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합니다.(애초 정찬헌 선수 측은 키움 구단에 2년 계약과 계약금 1억5000만 원, 연봉 1억 원, 옵션 최대 1억 원, 2년 총액 4억5000만 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키움 구단은 선수 측이 제시한 금액보다 더 큰 규모인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 옵션 최대 2억6000만 원으로 2년 총액 8억6000만 원을 역제안해 계약했다.)
"에이전트에게 처음 그 이야길 들었을 땐, 믿기지가 않았어요. "정말이냐?"고 몇 번을 되물었죠. 그저 감사했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FA 신청을 할 때 돈을 보고 신청한 게 아니에요. 그저 야구를 좀 더 하고 싶었고,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저를 필요로 하는 팀이 생긴다면 어떻게든 헌신하고 싶었어요. 베테랑으로서 어린 투수들에게 전수해주고 싶은 부분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는 선수, 롱릴리프면 롱릴리프, 선발이면 선발, 심지어 패전처리까지 보직에 관계없이 팀이 원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소화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이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또 키움으로 트레이드된 뒤에 저는 외부에서 들어온 선수였고, 또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는데도 늘 감싸주시고, 아껴주신 팬들이 많아서 정말 감사했어요. 지난 겨울 한 인터뷰에서 "FA로 팀을 떠나게 되더라도 키움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잊지 말고 계속 야구를 하겠다"는 말을 했어요. 키움 팬들을 위해, 또 키움 히어로즈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가장 감사해요."
(키움의 고형욱 단장은 계약 금액을 올려 계약한 이유에 대해서 "정찬헌의 야구에 대한 진정성과 간절함을 느꼈고, 정찬헌 선수 측이 제시한 금액은 정찬헌이라는 선수의 가치에 걸맞지 않은 금액, 즉 정찬헌은 그런 수준의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끝으로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네요.(정찬헌 선수는 이 질문에 진심으로 당황해했고, 답변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명한 건 야구 잘했던 선수로 기억되진 않을 것 같아요. 굳이 말한다면,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공을 던졌던 선수? 하하하! 잘 모르겠어요. 진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반대로 이런 생각은 늘 해요. 키움 히어로즈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자. 또 지금은 팀을 떠났지만, 프로에 입단한 이후 14년간 잘하는 선수도 아닌 저에게 큰 사랑을 보여주시고 느끼게 해주신 LG트윈스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간직하자."
정찬헌과의 인터뷰는 어느덧 처음 약속했던 2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을 향했다. 이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한다며 일어서는 그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정찬헌과의 인터뷰 내내 나는 7번 넘어져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에 관해 물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에게서 '열정'과 '강한 의지' 같은 단어들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헌신'과 '감사함'을 이야기했다. 그는 가족 덕분에, 주변 사람들 덕분에, 팬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감사해했고, 가족과 팀과 팬들에게 헌신하겠다고 대답했다. 오늘 나는 그동안 가끔 들려온 정찬헌의 재기 뉴스가 내 마음에 작은 울림을 준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됐다.
[이종훈 스포츠평론가]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