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니워커 원하면 진·데킬라도 사라”...디아지오코리아 유흥점에 ‘끼워팔기’
“조니워커 원하면 상위 7개 제품군서 모두 매출 발생할 것”
“3개월간 매달 7개 제품군 꼬박 구매해야”
공정위 “독점 지위 이용했다면 불공정 소지”
세계 최대 주류 전문기업 디아지오의 한국법인 디아지오코리아가 댄 해밀턴 대표이사 명의로 끼워팔기를 강요해 논란을 빚고 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은 명백히 끼워팔기를 금지하고 있다.
2일 조선비즈가 입수한 공문에 따르면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 14일 바(bar)와 클럽, 단란주점 등 주요 유흥채널에 댄 해밀턴 대표 명의로 새 가격 정책을 공식 통보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달 19일부터 오는 7월 31일까지 조니워커 등 주요 제품에 새 가격 정책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위스키, 맥주 등 53개 제품 가격을 최대 40% 인상한 바 있다.
먼저 디아지오는 국내에 독점 공급하는 조니워커 골드·블루·블랙 등 인기 위스키 제품군 외에 싱글톤 12년·15년, 탈리스커 10년, 텐커레이 넘버텐, 돈 훌리오 같은 제품을 모두 사야 한다고 명시했다.
공문에 ‘차기 가격 정책 대상이 되려면 상위 7개 제품군에서 모두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조항을 넣었다.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 따르면 각 위스키와 진, 데킬라 등은 서로 별개 상품으로, 주문에 따라 필요한 품목만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인기 위스키 제품을 공급하면서, 그 조건으로 주문할 필요가 없는 나머지 주류도 구입하도록 강요했다.
이처럼 조니워커 같은 유명 위스키 제품을 판매하면서 진이나 데킬라 같은 다른 주류(酒類)까지 사라고 강권하는 행위를 ‘강제 끼워팔기’라고 한다. 공정거래법은 소비자 권익을 해치고 시장 질서도 왜곡한다며 강제 끼워팔기를 금지하고 있다.
국세청 역시 ‘주류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제 2조 1항에서 “거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주문하지 않은 주류나 주문량 이상의 물량을 공급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5월부터 7월까지 이들 일곱가지 제품군을 매달 꼬박꼬박 사야 한다는 조항도 달았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 또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3항 항목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에 저촉된다고 해석했다.
매달 일정 물량을 구입해야만 거래를 이어갈 수 있도록 강요하는 행위가 이 조항을 거스르는 구체적 유형이라는 의미다.
디아지오코리아가 수입·유통하는 조니워커(Johnnie Walker) 시리즈는 경쟁사 페르노리카코리아의 발렌타인(Ballantine’s)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대표적인 블렌디드 위스키다. 특히 최근 국내 위스키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수입량 또한 급증했다.
올해 1분기 관세청 무역통계를 보면 스카치와 버번 등 위스키류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8.2%가 늘어난 8443톤에 달했다. 이 수치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역대 1분기 기준 최고치다.
반면 텐커레이 같은 진(gin)과 돈 훌리오를 포함한 데킬라는 아직 위스키만큼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소위 ‘비인기상품’에 속한다.
그동안 수입 주류사들은 공공연하게 이런 비인기상품을 인기상품과 묶어 파는 방식으로 처분했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위스키로 꼽히는 맥캘란(The Macallan)을 수입하는 디엔피스피리츠(DnP Spirits)는 올초 맥캘란 스무병에 인지도가 떨어지는 미국산 위스키 48병을 끼워팔아 비난을 받았다.
최근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일본산 위스키 산토리 야마자키(山崎)와 하쿠슈(白州) 등을 유통하는 빔산토리코리아 역시 이들 위스키를 사는 조건으로 스카치 싱글몰트 위스키 오켄토션(Auchentoshan)을 같이 사야만 한다는 조건을 붙여 거센 반발을 샀다.
그러나 끼워팔기라는 악습(惡習)을 이어오던 수입사 가운데 대표 명의로 공문을 보내 문서화 하는 경우는 없었다. 대신 적발될 경우 ‘일부 영업사원들의 의욕이 과다해 벌어진 일탈 행위’ 정도로 치부했다. 끼워팔기 같은 불공정 거래행위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끼워팔기를 포함한 불공정 거래행위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주요 일선 주류업장에 강요한 끼워팔기는 곧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으로 전가된다. 특히 디아지오코리아 같은 1위 업체가 주도한 불공정 거래행위는 소비자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이렇게 끼워팔기가 주류업계 전반에 걸쳐 굳어지면 계단식으로 2위와 그 다음 순위 수입업체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공정위가 끼워팔기 불법성을 판단할 때는 보통 경쟁제한성 여부를 따진다”며 “간단히 말해 위스키 끼워팔기가 업장이나 소비자 선택권을 강제적으로 침해했거나, 주류업계 공정한 경쟁에 방해가 됐을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선비즈는 디아지오코리아 측에 이와 관련 입장을 문의했지만 회사 측은 “따로 할 말이 없다”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공정위 시장감시국 관계자는 “사업자가 독점 공급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상대방이 구입할 의사가 없는 상품을 사라고 강제했다면 불공정 소지가 분명히 있다”며 “시장 조사를 통해 끼워팔기와 지위 남용 여부를 알아볼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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