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된 정준호 “묻힌 보석 찾게 돈 끌어 모으겠다”

라제기 2023. 5. 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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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연고가 없다.

"전폭적으로 밀어드릴 테니까 전주영화제가 시민을 위해 도약할 수 있도록 일을 해달라"는 우 시장의 말에 흔들렸다.

전주영화제는 국내외 독립영화들을 소개하는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전주영화제의 단점을 굳이 짚자면 (독립영화라는) 담이 너무 높다는 거예요. 정체성과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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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거쳐 수장으로 영화제 첫 개막 맞아
"위촉 반대에 포기 생각하다 오기 생겨
장기로 후원할 분 모으고 있고 일부 성과"
정준호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위원장 일과 연기 중 하나만 택하라면 당연히 연기”라며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고 말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지역 연고가 없다. 독립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제에서 활발히 활동한 이력이 없기도 하다. 주된 직업은 배우. 정준호가 지난해 12월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에 위촉됐을 때 영화계가 놀랐던 이유다. “영화제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전주영화제 영화인 이사 3명은 사퇴했다. 논란을 거쳐 국내 주요 영화제 수장이 된 정준호 위원장을 지난달 29일 전북 전주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제24회 전주영화제가 개막(27일)하고 이틀 뒤다. 그는 “업무량이 너무 많다”며 “한 시간 단위로 옮겨 다니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우범기 전주시장이 위원장직을 제안했다. 우 시장과 정 위원장은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우 시장지인들이 새 위원장으로 그를 추천했다. 정 위원장은 “시민들이 더 좋아하고 관광객 유입 등 지역경제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영화제를 생각하고 적임자를 찾으셨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처음엔 “의욕적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 “다른 일로 바쁘기도 한 데다 독립영화를 많이 하지 않고 달콤한 길만 걸어왔기 때문”이다. "전폭적으로 밀어드릴 테니까 전주영화제가 시민을 위해 도약할 수 있도록 일을 해달라"는 우 시장의 말에 흔들렸다. "30년 가까이 영화계에 있으면서 생긴 마음의 빚이 있으니 무엇이든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다.

위원장 내정 소식이 알려지자 영화계 일부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비판 기사가 여럿 나오기도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전주영화제는 국내외 독립영화들을 소개하는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1995년 데뷔 이후 드라마와 상업영화에 집중해 온 그가 전주영화제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보기는 힘들었다.

정 위원장은 “바쁜 사람이 시끄럽게 꼭 그걸 해야 하냐며 만류하는 동료 배우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아내와 몇 번을 상의하고 포기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오기가 생겼다”고 밝혔다. “가만히 있다 상처만 생기고 빠지면 뭐가 되냐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정 위원장은 “‘인생 제2의 도전이라 여기고 한번 해보자, 못할 게 뭐 있나’ 마음을 다시 먹게 됐다”며 “부족한 부분은 지금까지 해왔던 분들에게 잘 채워달라 부탁하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부위원장이었던 민성욱 위원장과 영화제를 함께 지휘하고 있다.

“좋은 손님을 더 모시고 창작자들에게 기회를 더 주며 우수 인력을 영입하기 위해선 ”예산 확보가 우선이었다. 100명을 목표로 개인 후원자 모집에 나섰다. 정 위원장은 “500만 원이든, 1,000만 원이든 매년 꾸준히 후원해줄 분들을 찾았다”고 했다. 현재까지 모은 후원자는 39명. 대기업 대표와 벤처회사 대표, 골프장 운영자 등 다양한 기업인이 참여했다. 후원금은 3억 원가량이다. 올해 영화제 예산은 55억 원이다. 정 위원장은 “독립영화 만드는 이에게 1,000만 원은 1억 원 같은 돈이니 제2의 봉준호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참여해달라 설득했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전주영화제 최고 장점으로 “사회가 관심을 주지 않는 창작자들을 존중하고 보석을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독립영화의 친구들을 많이 확보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장점을 극대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전주영화제의 단점을 굳이 짚자면 (독립영화라는) 담이 너무 높다는 거예요. 정체성과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습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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