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다간 죽어요"... 무주 진안 장수엔 투석병원이 없다

오세운 2023. 5. 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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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캐슬 '3058': ②투석 환자는 고향에 못 사나요]
진안군 vs 수도권 '극과 극' 병원 가는 길
편집자주
한국은 의료 가성비가 좋다고 하죠. 아프면 예약 없이 3,000~4,000원에 전문의를 보는 나라, 흔치 않으니까요. 그러나 건보 흑자, 일부 의료인의 희생 덕에 양질의 의료를 누렸던 시대도 끝나 갑니다. 지방 병원은 사라지고 목숨 살리는 과엔 지원자가 없는데, 의대 정원은 18년째 3,058명입니다. 의사 위상은 높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 효능감은 낮아지는 모순. 문제가 뭘까요? 붕괴 직전에 이른 의료 현장을 살펴보고, 의사도 환자도 살 공존의 길을 찾아봅니다.
전북 진안군에 사는 박경택씨가 지난달 4일 혈액 투석을 받기 위해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나서고 있다(왼쪽 사진). 차로 약 1시간을 이동해 전주의 한 의원에 도착한 박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병원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오른쪽 사진). 진안=홍인기 기자

“아버지, 저 왔어요.”

오전 6시 30분, 박정일(49)씨가 어김없이 아버지 박경택(76)씨 집을 찾았다. 정일씨는 이틀에 한 번 전북 진안군에 사는 투석환자 아버지를 모시러 꼭두새벽에 전주에서 차 시동을 건다. 경택씨는 말기신부전 환자. 투석(혈액을 몸밖으로 빼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진안엔 투석 환자를 위한 인공신장실이 없다. 인근 무주·장수군에도 없다.

아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진안 본가에서 전주의 병원까지 1시간을 차로 이동한다. 한국일보 기자들과 만난 지난달 4일, 경택씨 부자는 오전 6시 37분 집을 나서 7시 39분 병원에 도착했다. 해당 병원장은 “저희 병원이 그나마 무주·진안·장수에서 가까워 그 쪽에서 오시는 환자들이 몇 분 있다”고 말했다.


투석 아버지 모시러 매번 200㎞ 운전

박경택씨가 전주의 한 내과에서 투석치료를 받는 모습. 한 번 투석을 시작하면 4시간이 소요된다. 박정일씨 제공

경택씨 집에서 병원까지 거리는 47㎞. 투석환자가 대중교통으로 2시간도 더 걸려 시군 경계를 넘나들기엔 너무 버겁다. 아들 차로 이동할 때도 다리가 굳어 한참이나 다리를 주물러 줘야 할 정도니, 직접 운전도 어렵다.

2020년 12월 7일. 경택씨가 처음 투석을 받은 그날 이후 가족의 삶엔 큰 변화가 찾아왔다. 투석을 받고 오면 기력이 쇠해 그날은 휴식 외에 다른 일을 하기 힘들다. 생업(양돈업)은 당연히 접었고, 아내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병시중을 시작한다.

박정일씨의 아버지 투석 병간호 일과. 그래픽=송정근 기자

장남 정일씨 인생도 극적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다니는 전주 병원 근처로 집을 옮겼고, 아버지를 모시는 날은 오후 늦게서야 일을 시작한다. 투석이 끝나고 아버지를 진안으로 데려갔다가 다시 전주로 돌아오면 어느새 오후 3시다. 전주와 진안을 2번 왕복하느라 매번 200㎞를 운전한다.

경택씨는 하루 빨리 진안에 인공신장실이 생기길 기대한다. 아내와 아들의 고생이 안쓰럽다. 그러나 군청에 민원도 넣어봤지만 소식은 없다. “대전에 사는 진안 사람을 만났어요. 그 분 말씀이 진안엔 투석실이 없어 고향에 돌아오질 못 한다는 거예요. 그 분이 울더라고요." 경택씨는 안타까워했다.


병원을 골라 가는 수도권 투석환자

9년간 신장투석을 받는 김순례씨가 지난달 10일 수원 영통구 자택에서 혈액 투석을 위해 병원으로 출발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김씨는 자택에서 출발한 지 14분 만에 병원 입구에 들어섰다(오른쪽 사진). 수원=홍인기 기자

수도권의 투석 환경은 어떨까?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사는 김순례(48)씨는 주 3회 투석을 받으러 다닌다. 투석 9년차인 김씨는 아침마다 차로 10분 거리의 병원까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한다. 투석이 끝난 점심 무렵, 콜택시 대기 시간이 길면 쉬엄쉬엄 걸어 올 때도 있다.

수원엔 인공신장실이 많아 병원을 골라 갈 수 있다. 김씨는 “지저분하거나 서비스가 별로면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금보다 더 가까운 병원도 있지만, 김씨는 이곳 간호사에 만족해 계속 다니는 중이다. 인근엔 의원뿐 아니라 종합병원인 아주대병원과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모두 집에서 차로 10분 내외 거리에 있다.

집 근처 투석 환경은 나무랄 데 없이 좋지만, 그런 김씨도 병원 걱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바로 고향에 갈 때다. 그의 고향 전북 부안군에서 투석 가능한 병원은 한 곳뿐이란다. 명절 때 고향에 가려 해도 투석실 예약이 꽉 차면 귀향을 포기해야 한다. 김씨는 "투석환자는 고향에선 못 산다"며 "(고향에 살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석병원은 모두 도시에만

전북 도내 인공신장실 분포도. 대부분의 인공신장실이 시에 몰려있고 고창군, 부안군을 제외한 나머지 6개 군에는 신장실이 한 곳도 없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박경택씨와 김순례씨는 모두 중증 신장 장애 환자다.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투석 치료를 받으면 중증, 신장이식을 받으면 경증 장애다. 고령화와 당뇨·고혈압 유병률 상승 탓에 투석 환자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증 신장장애인은 2016년 5만9,745명에서 2021년 7만6,799명으로 5년 새 29% 늘었다.

의료인력과 병원도 늘고는 있다. 투석전문의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 매년 20~50명씩 배출되다 2014년을 기점으로 연간 70~100명으로 늘었다. 2020년 10월 기준 혈액투석기를 보유한 의원급 이상 요양기관도 총 954곳으로,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투석 병원이 도시에만 모여 있다는 점. 박경택씨가 사는 전북에는 현재 인공신장실을 운영 중인 병원(요양병원 제외)이 31곳이다. 그 중 23곳(74%)이 익산 전주 군산 등 인구 20만 이상 도시에 있다. 전북 8개 군 중 진안을 포함한 6개 군에는 신장실이 없다.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지방의료원도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 진안군엔 2015년 개원한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진안군의료원이 있지만, 의료원 측은 적자 탓에 인공신장실을 만들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의료원 관계자는 “진안군에 35명의 투석환자가 있는데 이 인원으로는 투석실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설사 적자를 보고 운영하더라도 의료 인력을 데려오기 어렵다. 진안군은 작년 복지부가 주관하는 ‘의료취약지 인공신장실 지원사업’ 대상 지자체 후보 14곳 중 하나였다. 3곳을 선정해 하나당 2억 원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사업이었지만 진안군은 포기했다. 의사를 구하기 어려워서다. 진안군청 관계자는 “지원금으로는 의사 인건비의 절반도 안 돼 지원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투석 담당 의사를 구하려고 꾸준히 대학병원에 얘기했는데도 의사들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역으론 안 가려는 의사들

지난달 21일 기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중 휴진중인 진료과. 그래픽=송정근 기자

병원이 없어서, 의사가 없어서, 집 근처 진료를 포기하는 '지방의료 붕괴' 현상은 투석환자들만 겪는 일이 아니다. 민간병원이 없다면 공공병원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하지만, 공공의료원도 인력난 탓에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본보가 전국 지방의료원 35곳의 휴진 과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달 21일 기준 23곳(65.7%)이 일부 진료과의 진료를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주의료원은 70세를 넘긴 전문의가 순환기내과에서 홀로 근무 중이어서 24시간 심혈관 응급환자를 볼 수 없다. 윤창규 충주의료원장은 “내시경 담당 의사도 부족해 건강검진 예약을 다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방의료원과 함께 공공의료의 한 축인 보건소에도 의사가 부족하다. 충남 청양군에는 민간 안과의원이 없어 보건의료원이 그 역할을 대신해 왔다. 그러나 작년 4월 안과 공중보건의가 전역하면서 6개월 동안 안과 진료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봉직의(페이닥터) 1명을 채용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3개월 만에 그만둬 현재 안과는 다시 문을 닫았다. 청양군 보건의료원 관계자는 “워낙 시골이다 보니 의사들이 이곳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의료원 측은 3월 안과 의사 연봉을 인상(3억→3억 3,000만 원)해 재공고했지만, 현재까지 지원자는 없다.

지방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자 지방 환자들은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경북 김천시에 사는 박영숙(가명·76)씨는 지난달 심장에 물이 찬 것 같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 서울아산병원에 진료를 예약했다. 그는 "과거 아산병원에서 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적이 있어, 이번에 예약을 잡고 나선 병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방에서 치료해도 충분한 환자까지 서울로 몰려든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 중인 A씨는 “경증인 환자분들도 전국 각지에서 이곳으로 몰려든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서울에서 발생한 전체 진료비 26조1,035억원 중 타지역에서 유입된 환자의 진료비는 9조6,372억원으로 36.9%에 이르렀다.


연봉 4억에도 지방엔 안가는 진짜 이유

강원도 속초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 의료진 공백으로 응급실이 단축 운영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속초의료원은 2월부터 4월 말까지 응급의학과 전문의 공백으로 월, 화, 수요일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다. 의료원은 전문의 연봉을 4억원대로 올리고 전공의 4년 수료자까지 응시 자격을 확대한 끝에 의사 채용을 완료했다. 뉴스1

의사들은 왜 지방 근무를 꺼리는 걸까. 수험생들이 의대로만 가려는 게 개인 입장에선 합리적 선택이듯, 알고보면 여기서도 의사들의 '합리적 선택'이 작용하고 있다. 개인병원을 세우려는 입장에서 보면, 인구소멸이 예상되는 ①환자 감소 지역에서 병원 수익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 부산에서 10년째 투석실을 운영하는 내과 전문의는 “인구가 줄어드는 곳에 마트, 아파트도 안 들어서는데 민간병원이 들어가겠냐"고 반문했다.

민간병원이 안 생기는 건 그렇다쳐도 3억, 4억원의 고액 연봉을 준다는데도 왜 공공병원으로도 가지 않으려는 걸까. 현직 지방의료원 의사들은 “급여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②취약한 정주 여건을 지방 기피의 원인으로 봤다. 2008년도부터 홍성의료원에서 근무 중인 최정훈 산부인과장은 “지방의 열악한 교육·문화 인프라가 자녀 양육에 큰 걸림돌”이라며 “이곳에서 2, 3년 근무하다 실망해 도시로 돌아간 경우를 많이 봤다”고 밝혔다.

당장의 돈보다 ③경력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도 있다. 서산의료원 박동원 영상의학과장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지방에선 커리어를 쌓지 못한다”며 “많은 환자 케이스를 진료하는 게 곧 경력인데, 지방 환자들도 수도권으로 몰리니 경력을 위해선 당연히 수도권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④책임 문제 때문에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지방 공공병원은 의사 한 명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구조라 의료소송 등 위험도가 높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의사 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사회 전체적으로 의사 인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며 “의사 수가 확대된다면 지방에서도 일할 의사는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수가 인상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김영완 서산의료원장은 “지방 병원에서 돈을 많이 부르는 이유도 의사들이 지방에서는 수익이 안 돼 떠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붙잡는 것”이라며 “의료취약지만이라도 지역 수가제를 도입하는 등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연재기사 제4회 '정원이냐 수가냐, 누구 말이 맞나'(5월 4일 예정)에서 의대 정원과 수가 인상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봅니다.

글 싣는 순서
<의사 캐슬 '3058'_시한부 한국 의료>

①'슬의생 99즈'는 없다
②투석 환자는 고향에 못 사나요
③의사 빈자리 채우는 PA 유령
④정원이냐 수가냐, 누구 말이 맞나
⑤벼랑 끝 한국 의료 되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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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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