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노동자 집회는 왜 이리 엄숙한가
처음 사회운동을 접한 건 고향 울산에 있을 때였다. 울산만 해도 매일 크고 작은 집회가 열린다. 집회는 아침 점심 저녁 곳곳에서 열리는데, 지역 특성인지 주로 노동자들의 집회가 많았다. 지역의 많은 집회를 다니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팔뚝질도 익숙해지고 민중가요도 제법 따라 부르게 됐다. 지역의 온갖 집회를 놓치지 않고 참석한 것도 있지만, 집회의 의례들이 그만큼 단순하고 어렵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집회는 대중적으로 정형화된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붉은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지 않더라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팔뚝질을 하며 “투쟁”을 외치는 의례는 어느 집회나 마찬가지였다.
2008년 스무 살의 여름. ‘명박산성’에 맞서 광화문 일대를 뒤덮은 거대한 촛불시위를 목도한 뒤, 나는 노동자들의 집회가 영 못마땅했다. 조직되지 않은 (서울)사람들이 만든 집회의 ‘발랄함’을 보면서 지역 노동자들의 집회는 왜 이렇게 재미없고 엄숙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성의 운동권들을 낡았다고 치부하며 그들과 나 사이에 ‘세대 차이’가 있다고, 그 시절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노동자들의 집회를 재미없고 낡았다고 비판하는 내게 한 아저씨 활동가가 했던 얘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는 내게, 그렇게 엄숙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당시엔 납득이 가지 않아 그 말을 쉽게 넘겨버렸지만, 우습게도 지금은 내가 그 역사를 공부하고 강조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안전 이슈가 매일 신문 지면에 등장한다. 하루가 멀다고 안전사고가 반복된다. 한국사회는 이를 주변적인 일로 취급하며 금방 잊어버리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매일 죽고 다친다는 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실들을 주변적인 일이 아닌 ‘나의 일’로 받아들이면 집회의 엄숙함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더구나 집회문화는 오랜 노동운동의 역사를 통해 이어지고 만들어 온 것이다. 노동자들의 집회에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 노동자들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되는 집회의 엄숙함은 그 역사에 대한 기억투쟁을 의례화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는 전태일의 분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로도 수많은 탄압과 그에 죽음으로 항거한 노동열사들이 즐비하다. 애도되지 못한 슬픔과 죽음들의 역사를 통과해 온 집회를, 즐겁고 발랄하지 않으므로 낡았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엄숙함이야말로 ‘현실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우리가 살아내는 노동의 현실이 비루하고 너절하며 때론 비참한 것이므로, 그 아픔을 애도하거나 고발하는 운동의 언어나 의례 역시 진지하거나 엄숙해져 버리는 것이다. 집회의 엄숙함이란 그런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비루하기에 보지 않으려 하며, 주변적인 일로 취급해 온 우리의 현실 말이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숙함 속에도 발랄함이 있다. 위험천만한 점거 파업을 벌이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종종 ‘고스톱’을 치며 시간을 때운다. 익숙한 대중가요를 개사해 흥겨운 투쟁가를 만드는 일도 낯설지 않다. 요즘의 노조 문화는 더 나아가고 있다. 한 IT 기업 노조는 청년 조합원에게 소구하고자 발랄하고 새로운 노조 문화를 만들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민주노총 총연맹 역시 2021년 청년사업실을 설치해 비판과 논란을 거치면서 새롭고 대중적인 문화를 실험해 가고 있다. 이런 운동의 모습들 역시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작고 소소한 발랄함과 기쁨으로 견뎌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일 테다.
5월1일은 노동자의날이다. 삶의 비극을 견디는 와중에도 희극을 써 내려간 사람들의 기나긴 사연들이 지금껏 이어져 노동절은 올해로 133주년을 맞았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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