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용기를 모아서
꺅! 해냈다! 아이와 껴안고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알약을 삼켰기 때문이다. 아이가 더 기뻐했다.
아이는 4학년인데도 아직 알약을 못 먹는다. 알약 대신 아기들이 먹는 감기 시럽을 먹는다. 알약 형태의 비타민은 절구로 깨서 가루로 만들어서 꿀에 섞어서 먹였다. 알약을 한번 먹어보자고 해도 싫다고 도리도리다. 알약을 먹이려고 구슬리기도 하고 화도 내보고 별별 수를 다 썼는데 다 소용없었다. 물만 여러 컵 마시고 알약은 입에서 녹아서 결국 버리기도 하고 쓴 약이 녹아버려 울기도 여러 번 했다.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의외의 답이 나왔다. 자기는 삼키는 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한다. 학교 급식을 먹을 때 시금치를 한 줄기 먹다가 목에 걸려서 토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너무 괴로웠다고 한다. 그 이후로 건더기를 삼키는 건 절대 싫다고 한다. 알약은 삼키다가 목에 걸릴 것 같아서 두렵다고 했다.
알약을 삼키는 날은 정말 어느 날 우연히 찾아왔다.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도 안 되던 일이 어느 날 어느 한순간 일어났다. 환절기라 콧물이 줄줄 나왔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알레르기 약을 처방받았다. 이번 알약은 새끼손톱의 반의반만 했다. 생각보다 알약이 아주 작아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한다. 그동안 아무리 어른이 우겨도 끄떡도 안 했는데, 자기 안에 결심이 선 순간 마법이 일어났다. 안 끝날 것 같은 일도 기다려주면 어느 날 아이는 스스로 마음먹고 자기도 모르게 뛰어오른다.
삶에 그렇게 아찔한 순간이 있다. 도저히 못 할 것 같고 하면 죽을 것 같은 순간.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순간이 온다. 그때 도망치지 않고 마주 서서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그 아찔함은 내 경험이고 자산이 된다. 어느 날 영어를 잘하는 동료에게 비결을 물었다. 그는 영어 실력은 완곡하게 늘지 않는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했다. 열심히 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계단처럼 실력이 쑥 올라간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일단 해보라고. 도움닫기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의 용기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용기가 모이고 모여서 어느 날 약을 쑥 삼키는 날이 왔다. 용기를 낸 아이가 더 기뻐했다. 포기 반 기다림 반이었던 엄마도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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