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52> 만덕사지 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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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도 경주 황룡사지 금당과 버금가는 규모의 고려 시대 절터 만덕사지가 있다.
그리고 기와·도자기·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황룡사 치미와 비슷한 크기의 치미가 확인되어 만덕사지의 위상과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만덕사지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치미는 부산박물관 동래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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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도 경주 황룡사지 금당과 버금가는 규모의 고려 시대 절터 만덕사지가 있다. 만덕사지는 동래구 온천동에서 북구 구포동으로 넘어가는 만덕고개의 서쪽 산중턱에 위치하며, 부산박물관이 3차례에 걸쳐 발굴했다. 발굴조사 결과 만덕사지는 고려 초기부터 고려 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금당지·회랑지·계단지·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기와·도자기·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황룡사 치미와 비슷한 크기의 치미가 확인되어 만덕사지의 위상과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치미는 기와지붕의 용마루 양 끝에 높게 부착하는 장식기와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됐다. 치미의 밑부분은 용마루에 부착할 수 있도록 홈이 있으며, 측면은 계단 형태로 새의 날개깃을 표현했다. 치미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길상과 벽사의 상징인 봉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덕사지 치미는 치미의 하단부만 출토된 것을 추정·복원한 것이며, 굵은 돌대로 몸통과 날개 부분을 구획하였다. 몸통 중심부는 7엽의 연화문을 장식했고, 가장자리와 날개에도 연화문이 시문되어 있다. 이 치미는 형태와 몸통 및 날개에 장식된 연화문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으며, 아마 만덕사 창건 당시 금당 지붕에 장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황룡사지 치미의 크기는 182㎝, 만덕사지 치미는 약 140㎝(복원 크기)이다. 만덕사지의 금당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만덕사지에서는 치미뿐만 아니라 건물의 위계를 보여 주는 용두·조형잡상·귀면문장식기와·연목기와·수막새·암막새 등 다양한 종류의 장식기와가 출토돼 만덕사지가 고려 왕실 사찰에 버금가는 사격(寺格)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만덕사지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치미는 부산박물관 동래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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