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약김밥? 언어 자유보다 청소년 보호가 우선이다
몇년 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극한직업>에 마약이 등장한다. 마약 조직이 한 통닭집의 체인점을 내고 그 체인점을 기반으로 마약을 전국에 유통시킨다는 이야기다.
그 영화를 본 대다수 사람들은 통닭에 마약을 담아 배달한다는 이야기를 그저 영화 속 설정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머리가 맑아져 집중력이 강화된다는 음료를 홍보하는 척하면서 마약이 든 음료를 청소년들에게 나눠준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1병당 3회 투약 분량의 필로폰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대낮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마약이 든 음료를 청소년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검찰에 따르면 청소년 마약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지난해 481명으로 4년 새 304%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마약사범 증가율이 30%였던 것과 비교하면 청소년 마약사범 증가율은 10배나 된다. 청소년들이 마약을 접하는 장벽도 낮다. 다크웹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검색하면 손쉽게 마약을 거래할 수 있고, 투약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검찰은 필로폰 1회분 가격이 ‘피자 한 판’ 값까지 낮아진 것도 청소년 마약사범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청소년들이 마약을 이렇게 쉽게 접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우리 사회는 붕괴된다고 해도 결코 심한 말이 아니다. 청소년 마약사범이 크게 늘자 검찰은 청소년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범죄자에게 최고 사형까지 구형하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다.
이처럼 온 나라가 마약 때문에 난리인데도 한쪽에서는 먹는 음식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붙여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마약옥수수, 마약육전, 마약국밥, 마약보쌈이라고 부른다. ‘누가 진짜로 음식에 마약을 넣었을 거라고 생각하겠느냐’는 게 이런 음식을 파는 사람들의 항변이다.
음식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만큼 ‘중독성 있게 맛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말하는 ‘중독’은 마약의 ‘중독’과 그 의미가 하늘과 땅 차이다. 음식에서 나오는 맛있음의 중독은 행복한 중독을 비유하지만 마약의 중독은 삶을 무너뜨리고 생명을 잡아먹는다.
일상에서 마약이라는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마약에 대한 경각심과 두려움을 무의식중에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지적이 언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언어의 자유보다 마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게 더 우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거리 곳곳에 마약음식점, 조폭체육관, 물뽕떡볶이 같은 간판들이 즐비하다면 이것이 언어의 자유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약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청소년들이 길거리에 넘쳐난다면 그때에도 음식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를 고집할 것인가.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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