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의 풀뿌리] 정말 쌀이 문제인가
지난주에 언제까지 밥심으로 살 거냐고 묻는 다른 신문의 칼럼을 읽었다. 그 칼럼은 논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고 그 양이 항공산업에 맞먹으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쌀 생산을 줄이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쌀 소비량이 줄어드니 생산량도 줄어야 하는데 그 조절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수매해서 쌀 생산이 줄지 않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쌀은 언제나 넉넉할 거라는 착각
기후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걱정하는 듯한 느낌을 그 칼럼에서 받았지만 일단 쌀에 집중해 보자. 마치 쌀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처럼 얘기되지만 2021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농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1%이고, 농업 부문 중 벼농사 비중이 30% 정도이다. 그러니 벼농사가 전체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로 볼 수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 부문은 에너지로 전체의 86.9%를 차지한다. 정말 기후변화가 걱정되었다면 에너지 부문의 감축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쌀과 농민이 만만했나보다.
사실 기후변화도 심각한 위기이지만 한국은 식량도 위기이다. 2021년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9%로 매년 하락하고 있고, 쌀 자급률도 84.6%로 하락세이다. 더구나 쌀을 제외하면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11.4%로 떨어진다. 자급률이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말 쌀에서 멀어질 결심을 해야 할까?
물론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고, 주된 이유는 식습관의 변화이다. 지금의 육류와 가공품 중심의 식습관이 쌀의 소비를 줄이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식습관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유지될 수 있고 그렇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육류 소비가 어려워지고 가공품에 사용되는 외국산 농산물 가격이 올라도 쌀의 소비량이 계속 줄어들까? 다가오는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그렇기 때문에 쌀생산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 양곡관리법을 봐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목적은 양곡부족으로 인한 수급불안과 천재지변 등의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한 해 노동의 결과물인 쌀의 수매가 마치 농민에 대한 특혜처럼 다뤄지는 현실은 불편하다.
2023년 2월16일에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엥겔지수 국제비교 및 시사점’을 보면, 한국의 경우 주요 농산물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서 식량안보 수준이 낮고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식품물가가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식품가격이 폭등해 엥겔지수가 높아지면 저소득층의 생계가 특히 어려워질 것이라 전망했다. 보수적인 민간연구소조차도 농산물의 부족과 그것이 저소득층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하는데도 농산물의 수급을 시장에 맡겨야 할까?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의 시선이 현실의 얼개를 제대로 읽지 못할 뿐 아니라 근시안이다.
멀리 생각하지 말고 십년 뒤라도 예상해 보자. 지난달 발표된 ‘2022년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가인구는 216만6000명으로, 전년과 비교할 때 2.3% 감소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농가의 경우 49.8%로, 십년 뒤를 예상해 50세 이상 인구를 포함시키면 80%를 넘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농업으로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농축산물 판매금액이 1억원 이상인 농가는 전체 농가의 3.8%에 불과하고, 1000만원 미만 농가가 전체 농가의 65.1%이다. 나이 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농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지도 없이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
지난해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번역했던 <심층적응>에서 영국의 멸종반란운동을 주도해온 저자들은 기후위기 시대에는 지도 없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기상이변에 무기력하듯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들은 크게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야 하니 기존의 지도에 의지하지 말고 산업자본주의에서 잊혀졌던 생활·생산 방식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공동체의 지혜를 모으며 미래에 대해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자고 주장한다. 진짜 문제는 쌀이 아니라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접근은 그만하자.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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