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의 에볼루션] 사이비 종교단체로부터 벗어나는 길

기자 2023. 5.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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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유가 필요한 동물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현상에 대해
이해하기를 갈망한다
과학은
이런 인간에게
존재의 이유와 현상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과학은
이유가 필요한
동물을 위한
일종의 최종 대본이다
거짓으로 점철된
사이비 종교단체로부터
벗어날 힘도 과학에 있다

“자기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는 줄 알아요?” “무려 500명!”

10년 전 즈음, 저명한 종교학자에게 들은 이 숫자를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이 자칭 예수들이 만든 이상한 왕국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는 우리가 피해자나 그 가족이 아닌 이상 그동안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실체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사이비 종교에 대한 일반인의 경각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우리 주변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다수의 사람들은 이 엽기적 왕국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의아해한다. 누가 봐도 변태적인 이 상황을 왜 피해자들은 처음에 거부하지 못했을까? 요즘 용어로 가스라이팅으로 보면 될까?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기본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개인적 심리 작용에만 초점을 맞춘 해석이기 때문에, 사이비 ‘집단’에 빠지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문제는 기본적으로 집단적이다.

특정 집단에 휘둘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인간의 심리는 심리학의 오래된 연구 주제이다. 가령 왼편에 직선 하나가 그려져 있고, 오른편에는 그 직선과 똑같은 길이의 직선(B), 그보다는 훨씬 짧은 직선(A), 훨씬 긴 직선(C)이 있다고 해보자. 왼편의 직선과 같은 길이의 직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B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시지각 기능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런 판단에 이견이나 의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망막에 맺히는 상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같은 공간에 있는 일곱 명 중에서 당신을 제외한 여섯 명이 정답이 A라고 말한다고 해보자. 자, 이제 당신 차례. 뭐라고 답하겠는가? ‘얘들이 눈이 삐었나? 이게 A라고?’ 생각하며 정답은 B라고 당당히 말할까, 아니면 주저하며 약간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A같아요’라고 답할까?

이미 70여년 전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사람들이 타인들의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알아보기 위해 위와 같은 실험을 실제로 수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앞선 질문을 받은 응답자 중 약 76%가 여러 번의 실험에서 적어도 한 번은 A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실과 상관없이 다른 이들이 우기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결정을 바꾸는 행위를 심리학자들은 ‘동조’라고 부른다. 애시의 실험을 시작으로 인간의 동조 심리에 대한 후속 연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에는 “미국인의 대다수가 하루에 여섯 끼를 먹고 네댓 시간만 잔다”라든지, “남자 아이의 기대수명은 25년이다”와 같이 명백한 거짓 명제들에 휘둘리는 사례도 여럿 보고되었다.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피해자의 생존 신호 외면 말아야

애시의 실험이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선분의 길이와 같이 주관이 개입되기 힘든 인지작용에 대해서도 타인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물며 주관과 의견이 개입될 수 있는 불확실한 명제들의 수용에 있어서 타인은 거대한 확성기나 다름없다. 실험 후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참가자들이 A가 오답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정답이 아닌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남들의 대답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대체 왜 이런 식의 동조 현상이 발생할까?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동조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집단의 주류로부터 배척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기작이다. 다른 구성원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신념이나 의견을 숨기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유의 동조는 배척당하는 고통이 창피함이나 비굴함보다 큰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동조도 영원하지는 않다. 만일 나와 타인들 간 판단의 간극이 너무 크고 지속되어, 회의감이 밀려오고 비굴함이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단계에 다다르면 타인과의 깊은 매듭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너무 떨어지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온갖 고통과 다가올 악몽을 무릅쓰고 다큐멘터리 화면에 나와 당당히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용기는 바로 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우리가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가 아니라고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동조 실험이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듯이, 우리는 누구나 명백한 거짓에도 동조할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그 동조로 인해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피해자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비굴함을 넘어 (죽기보다 싫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생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들도 번듯하고 상식적이며 아름다운 공동체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느끼며 멋지게 쓸모있는 인생을 살고자 그 공동체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이었다. 흑화된 악한들에게 운 나쁘게 포섭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동조의 또 다른 이유는 집단 내 다수의 의사결정이 자신의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직관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다수가 주장하는 바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다수가 가진 지식의 가치를 자신의 것보다 더 높게 평가했을 때 타인에게서 더 유용한 지식을 배울 개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수렵 채집기에는 잘 통하지만 오늘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오류를 만들어내기 쉽다. 우리는 늘 나도 틀릴 수 있지만 다수의 일치된 견해도 크게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틀린 줄 알았다”라는 표현이 <나는 신이다>의 여러 편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터뷰 내용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비판적 사고 배양이 ‘구원의 길’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적 측면의 동조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시 애시 실험으로 돌아가보자. 만약 모두가 오답인 A라고 답하지 않고 서너 명이 또 다른 C라는 오답을 말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흥미롭게도 답변자가 정답을 맞힐 확률이 상승한다. 이것은 주변에서 자신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타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어떤 다양한(또는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가도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즉 오픈 마인드(비판적 사고)를 배양해야 사이비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이유가 필요한 동물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현상에 대해 이해하기를 갈망한다. 때때로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저 우연일 수밖에 없는 룰렛 게임에서 돈을 잃거나 딸 때조차도 우리는, 똥 꿈을 꾸어서 돈을 딸 것이 확실하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댄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종교라는 내러티브를 창조해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신화와 종교라는 거대 내러티브를 넘어 또 하나의 특별한 내러티브를 발명했다.

그것은 바로 과학이다. 입증된 사실들에 근거해 설계된 내러티브! 과학은 이유가 필요한 동물인 인간에게 존재의 이유와 현상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교적 정확한 설명을 제공한다. 과학은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진화, 인간의 발전 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탐구하며,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과학은 이유가 필요한 동물을 위한 최종 대본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으로 점철된 사이비 종교단체로부터 벗어날 힘도 과학에 있다.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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