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한국형 확장억제 사실상 정점 찍은 ‘워싱턴 선언’...남은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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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강화를 골자로 하는 ‘워싱턴 선언’를 발표한 데 대해 여야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 기존 한미 확장억제협의체에선 미 핵사용 세부계획 공유 안돼
우선 워싱턴 선언의 핵심 내용에 대해 살펴보지요. 무엇보다 한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의 창설이 눈에 띄는데요, 핵우산 등 확장억제 관련 상설 협의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확장억제는 보통 한국이 북한 등의 핵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 핵으로 보복하는 핵우산 만을 연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미사일 방어(MD), 재래식 정밀타격 무기 등 3개 요소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미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해 9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 11월 한·미 국방장관간 안보협의회의(SCM) 등을 거치면서 정보공유, 위기시 협의, 공동기획, 공동실행 등 4가지 확장억제 정책 범주에 대한 공조 방안을 진전시켜 왔지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는 북한의 증대되는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 대북 핵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 2016년 신설된 한미 외교·국방 고위급(차관보급) 협의체인데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중단됐다가 지난해 9월 5년만에 재개됐었지요. 하지만 부정기적으로 가뭄에 콩나듯이 열린데다 미측이 확장억제 관련 핵전력 운용 세부계획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한계가 있었습니다.
◇ 나토엔 전술핵 배치돼 있어 전술핵 없는 우리와 근본적 차이
반면 NCG는 앞으로 분기별로 1회, 1년에 4차례 개최될 예정이라는데요, 그동안 레토릭(수사)에 머물렀던 확장억제를 실체화하고 구체화했다는 데 상징적인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앞으로 NCG 협의를 내실 있게 진행해야 할 과제는 남겨두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NCG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핵기획그룹(NPG)과 비교하며 한계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NPG와는 근본적인 차이도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나토엔 5개국 공군기지에 B61 전술핵무기(전술핵폭탄)들이 150기 이상 배치돼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번 워싱턴 선언에도 전술핵 한반도 배치계획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나토엔 전술핵이 배치돼 있기 때문에 최종 결정권은 미 대통령만이 갖지만 ‘핵공유’란 말이 어느정도 성립될 수 있겠습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우리 땅에 미 전술핵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명확하게 ‘핵공유’라는 표현을 쓰기 어렵고 그런 맥락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사실상의 핵공유라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 냉전 이후 유례 찾기 힘든 미 전략 핵잠수함 한국 기항 계획
워싱턴 선언에 ‘미 전략 핵잠수함(SSBN)의 한국 기항’이 명시된 것도 상징적 의미가 큰 사안입니다. 미 전략 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은 1980년대 이후 40여년 만에 처음이라는데요, 핵탄두 장착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탑재한 미 전략 핵잠수함이 외국 기지에 기항하는 것 자체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입니다.
현재 전략 핵잠수함을 운용 중인 국가는 미국을 비롯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인도(배치중) 등 6개국에 불과합니다. 전략 핵잠수함은 핵탄두 장착 SLBM 을 탑재하고 생존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유사시 상대방의 기습공격에 대해 반격(제2격)을 가하는 핵심 전략무기로 꼽힙니다. 은밀성을 생명으로 하는 무기여서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움직이는지는 항상 극비사항이었습니다.
미 전략 핵잠수함은 가장 중요하고 비싼 전략무기여서 보통 적 가까이 가지 않고 먼거리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형태로 임무를 수행하는데요, 오하이오급에 탑재된 트라이던트Ⅱ (D-5) SLBM은 최대 사거리가 1만2000㎞에 달하기 때문에 굳이 동해까지 출동하지 않아도 북한이나 중국을 충분히 타격할 수 있습니다. 동해나 부산기지 등 우리나라 항구 가까이 출동하면 오히려 북한이나 중·러 잠수함 등의 추적·공격을 받을 수 있고, 이들 국가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겠지요.
◇ 윤대통령 “(워싱턴 선언은) 핵 포함된 한미 상호방위개념으로 업그레이드”
또 한반도 근해에서 북한을 향해 SLBM을 쏘려면 비행거리를 정상궤도보다 크게 줄여야 하기 때문에 기형적인 ‘고각발사’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미 전략 핵잠수함이 한반도로 출동해 항구에 기항까지 하겠다는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은 물론 한국 국민들에게도 강력한 확장억제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게 극명하게 드러난 상징적인 조치라고 평가합니다. 때문에 이번 워싱턴 선언이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 핵무장 등이 배제된 ‘한국형 확장억제’로선 사실상 정점을 찍은 것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과 워싱턴 선언에 대해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대체로 “70주년이 된 한미 동맹을 미래와 글로벌로 확장하고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연 후 청중과의 대담에서 워싱턴 선언과 관련, “북핵 위험이 지금 눈앞에 와 있는 상황”이라며 “과거 1953년 재래식 무기를 기반으로 한 상호방위조약에서 이제 핵이 포함된 한미상호방위 개념으로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현지 브리핑에서 “워싱턴 선언은 제2의 한미 상호방위 조약”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국회 국방위 국민의힘 간사인 신원식 의원도 워싱턴 선언에 대해 “미국이 특정 국가와 자신들의 핵 자산에 관한 정보·기획, 실행을 공유하고 논의하기로 구체화한 최초의 문서”라며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사실상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재처리 기술 확보 등 핵무장 잠재력 확보 노력 계속돼야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존중하고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한다고 밝힌 데 대해 자체 핵무장을 완전히 포기한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는데요, 현실적으로 독자 핵무장은 대외 경제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잃을 게 많은 리스크가 큰 옵션일 수밖에 없습니다.
NPT 규정상으로도 자위권적 차원의 탈퇴 권한(핵무장 권한)이 보장돼 있다는 전문가 시각도 있는 만큼 앞으로도 핵무장 잠재력 확보를 위한 노력은 계속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계 상황에 다다르고 있는 원전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재처리 기술 확보, 원자력잠수함용 핵연료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노력 등은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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