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몰락하는 도시를 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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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룩하는 일은 문명의 가장 큰 동력이다.
높은 인구 밀도는 전염병의 잦은 유행을 가져오고, 이를 못 이긴 도시는 몰락한다.
지나치게 비싼 주거비,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폭력과 갈등, 심해지는 불평등, 사회 약자에 대한 차별, 주력 산업과 일자리 소멸 등은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파괴해서 도시의 미래를 취약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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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해소·시민권 증진 등 ‘공동의 힘’ 필요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룩하는 일은 문명의 가장 큰 동력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이 밀도가 높아질수록 우리는 풍부한 일자리, 다양한 문화생활 등 문명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인간이 타인 없이 살지 못함을 깨닫게 함으로써 도시는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사랑, 우정, 도덕 등 좋은 삶의 기술은 모두 모여 살기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수많은 도시가 위기에 처해 있다. 지방 소도시는 특히 심각하다. ‘도시의 생존’(한국경제신문사 펴냄)에서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데이비드 커틀러는 도시 역시 수명을 다하면 죽는다고 말한다. 지진 등 자연재해, 각종 전염병, 기후 변화, 산업 쇠퇴, 빈부격차 등의 갈등, 외적의 침략 등 도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원인은 무척 다양하다.
‘밀집성이 낳은 악마’인 전염병은 그중 가장 끔찍하다. 높은 인구 밀도는 전염병의 잦은 유행을 가져오고, 이를 못 이긴 도시는 몰락한다. 약 1400년 전 모세가 히브리로 탈출해 돌아갈 때 이집트인들을 덮친 10가지 전염병은 나일강 청동기 문명을 무너뜨렸다.
전염병은 도시와 문명의 흥망에 큰 영향을 끼쳤다. 6세기 콘스탄티노플을 습격한 흑사병은 로마와 페르시아를 몰락시키고 고대 지중해 세계의 종말을 가져오면서 이후 아랍 이슬람 문명이 등장할 길을 열었다. 중세 말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기독교 문명의 종말과 자본주의 발흥의 원인이 되었다. 1940년에야 도시 기대수명이 시골을 따라잡았고, 2020년에야 도시민이 더 오래 살게 되었다. 예방접종, 상하수도 시설, 항생제 등 덕분이었다.
전염병을 극복하려면 내부를 갈가리 찢어놓는 다른 악마들을 무찔러야 한다. 지나치게 비싼 주거비,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폭력과 갈등, 심해지는 불평등, 사회 약자에 대한 차별, 주력 산업과 일자리 소멸 등은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파괴해서 도시의 미래를 취약하게 만든다.
위기에 빠진 도시를 구하려면 세 가지 힘이 필수다. 무엇보다 ‘도시에 봉사하는 공동의 힘’이 필요하다. 도시 정부가 공중보건을 향상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며 차별행위를 멈춤으로써 시민권을 증진하는 등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강화하고, 인간 상호 의존성을 높이는 책임 있고 효율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다음으로 불평등과 기회 부족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해야 한다. 이는 빈곤층 면세 혜택을 강화하고, 의무교육과 직업 교육을 개선하며, 창업을 북돋우는 등 계층 상승을 촉진하고, 주택 공급을 늘림으로써 임대료를 낮추는 등 도시를 다시 젊어지게 할 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도시를 시민들 사이의 상호 학습이 활발한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자기 앎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넘쳐날 때 우리는 몰락하는 도시를 되살릴 수 있다. 지방 소멸을 극복하려면 깊게 귀 기울일 만한 이야기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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