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갤러리는 또다른 형태의 `유사 N번방`…"강력하게 처벌해야"
10대 여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 해당 학생과 최후 동행했던 20대 남성이 자살방조와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 게시판에서 활동하던 이른바 '신대방팸'에 대한 경찰 수사도 본격화하면서 게시판 폐쇄를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 찾은 커뮤니티에서 이들이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특히 취약층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범죄 대상자를 노리는 '유사 N번방'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울증갤러리 이용자들도 "다양한 자살 방조, 성범죄가 게시판 내에서 일어났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당장 폐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당국의 안이한 대응=현실 속의 이러한 다급한 목소리와는 달리 행정 당국이나 사법 당국의 판단과 대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우울증갤러리 이용자 대상 성범죄자들 대부분이 3~4년 징역형이 선고에 그치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우울증갤러리 미성년 이용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A씨의 경우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는 데도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 피고인이 초범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행정 당국의 대응도 미숙하긴 마찬가지다. '10대 여학생 투신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우울증갤러리 게시판 차단을 요청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법률 자문과 불법 게시물에 대한 추가 파악이 필요하다"며 의결을 보류했다. 게시판 운영사인 디시인사이드에도 갤러리 폐쇄를 요청했지만, 문제 게시글을 삭제하고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경찰의 요청을 거부했다.
디시인사이드는 익명성을 무기로 국내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사이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익명성이 수많은 디지털 범죄가 잉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에는 하루 평균 80만 건이 넘는 글이 올라오고, 220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다. '갤러리'라는 이름의 여러 사이트 중에서도 우울증갤러리는 방문객 상위 1% 내의 인기 갤러리다.
우울증갤러리의 익명성으로 인해 모욕죄나 성범죄가 발생, 고소·고발이 되더라도 경찰이 수사를 중도에 중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은 비회원의 경우 IP추적이 쉽지 않다. 개인정보 보안 기능을 강화한 해외 브라우저로 접속한 경우엔 피의자를 찾는 게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수사 기관도 디시인사이드 수사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높아지는 청소년 자살률= 청소년 자살률 증가세가 심각하다. 거기에는 온라인에 폭증한 자살 유해 정보는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사실상의 자살 방조가 청소년을 자극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기도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층이 이런 환경에 쉽게 휩쓸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10대 학생의 소셜미디어(SNS) 자살 생중계 사건을 계기로 유사한 청소년 모방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간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아동·청소년(만 0∼17세)의 자살률은 2021년 10만명당 2.7명으로 증가, 2000년대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만명당 1.2명이었던 2000년의 갑절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중학생에 해당하는 12∼14세는 2000년 10만명당 1.1명에서 2021년 5.0명으로 급증했다. 고교생 나이인 15∼17세는 같은 기간 10만명당 5.6명에서 9.5명이 됐다.
청소년의 자살률 증가는 전체 인구의 자살률이 줄어드는 점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2011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31.7명으로 최고치였다가 2017년 24.3명까지 떨어졌다. 2021년에는 26명 수준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자살 방조·유도 = 우울증갤러리에선 향후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징후들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 일부 남성 회원이 주축이 된 '신대방팸'이 사망한 10대 여학생을 성착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경찰이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울증갤러리 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유사한 범죄가 일어난 개연성이 있다.
이러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방조'나 '유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심리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거나, 호기심 등의 이유로 자살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았다가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는 분위기에 휩쓸려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두게 된다는 것이다.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 등에선 상담을 요청하는 청소년을 상대로 농담과 조롱, 비방을 일삼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프라인상에서 열린 커뮤니티 모임에선 일부 회원이 다른 회원에게 자살 방법을 공유하거나, 청소년 회원을 상대로 성추행까지 벌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을 되레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2019년 서울대 의대가 발표한 '2018 자살 실태조사'에서 자살 시도자 134명 중 23명(17.2%)이 '인터넷 사이트가 자살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변했을 정도로 온라인의 영향이 커졌음을 볼 수 있다.
온라인상에 유포되는 자살 유해 정보는 2018년 이후 7배로 급증했다. 디지털 세대인 청소년이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김재원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부정확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청소년 상담자를 이용·착취하는 사람들 탓에 오히려 우울증 등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벼운 처벌도 범죄 키워=온라인상에 자살 유해 정보가 횡행하는 데에는 자살 방조에 대한 가벼운 처벌도 이유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발생한 자살 방조 137건 중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63건(46%)다. 절반 이상이 기소유예나 무혐의로 기소를 피했다.
재판에서도 선처가 이어졌다. 2013년 유죄가 선고된 자살 방조 사건 52건 중 30건(57.7%)이 집행유예로 선처됐다. 법무법인 주한의 송득범 변호사는 1일 "자살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함께 자살 방조 행위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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