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에 보내진 우크라 아동 일부 “돌아가면 나치에 살해돼”…‘세뇌교육’ 의혹
사라진 아동 1만6000~1만9000명 추산
러式 교육 통해 러人으로 키우려던 정황
우크라 구출 아동은 총 100명도 채 안돼
“푸틴 책임”…ICC, 전범 체포영장 발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일부 점령지역에서 ‘전쟁 때문에 위험하다’며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반강제적으로 전투 지역 밖의 러시아 지역으로 보냈다. 아이들을 찾기 위해 우크라이나 측은 구호단체를 조직했고 일부 아이들이 우크라이나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머물던 일부 아이들은 우크라이나 귀환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여 일각에서는 러시아 측이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이들을 세뇌교육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일본 산케이(産經)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러시아가 당시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름반도를 강제병합할 당시 조직된 비영리기구(NPO) ‘세이브 우크라이나’는 올해 들어 전쟁 2년째를 맞으면서 그 역할을 확대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모국의 부모로부터 떨어뜨리려는 러시아의 의도가 확연해지자 구조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달 8일 세이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 보내졌던 어린이 31명을 우크라이나 가족에게 되돌려보냈다. 당시 인원을 포함해 총 95명의 어린이가 세이브 우크라이나를 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제는 약 100명에 이르는 귀환 어린이들의 규모가 사라진 어린이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침공 후 사라진 아이들의 규모를 약 1만6000~1만90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러시아군이 ‘전쟁 위험이 없는 곳으로 피하자’며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의 옛 영토 크름 반도에 있는 어린이 캠프로, 이후에는 러시아의 양부모에게로 보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러시아로 보내진 우크라이나 아동들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세뇌’ 의혹이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당시 러시아군이 밀고 들어온 우크라이나 남부 드니프로강 인근 마을에 살고 있던 소녀 마르하리타는 지난해 러시아군이 드니프로강을 너머 후퇴하자 사라졌다.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던 같은 마을의 이웃사람이 마르하리타를 함께 데리고 러시아군의 후퇴를 따라 떠났다는 것이었다. 이후 마르하리타의 모친은 세이브 우크라이나를 통해 크름 반도의 한 휴양지 마을에 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2월 직접 현장을 찾아 갔다. 크름 반도 지역의 러시아 당국은 마르하리타를 돌려보내지 않으려 했지만, 딸을 데려가겠다는 어머니의 주장에 결국 마르하리타를 놓아줬다. 그러나 마르하리타의 모친은 러시아 측이 딸을 데려간 것이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세뇌교육해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광범위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세뇌를 겪은 것으로 보이는 아동의 사례도 거론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세이브 우크라이나의 구출 사례를 인용해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아동들을 ‘레크레이션 캠프’로 불리는 집단시설에 입소시킨 뒤 모국어를 쓰지 못하게 한 채 러시아 국가를 하루에 수 시간 동안 교육하거나 러시아 교과서를 공부하도록 하게 했다고 전했다. 시설 측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는 나치이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며 침략을 정당화하는 세뇌교육도 실시했다는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 거주 중 크름 반도의 한 시설에 입소했다 구출된 한 우크라이나 소년은 “(입소 반년 후) 가시 철책이 있는 시설로 옮겨졌다”며 “(시설 직원이) 러시아에서 양자가 돼 장래에 군에 입대해 러시아를 위해 싸우자고 타일렀다”고 말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아동에 대해 시민권 부여를 추진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고 산케이신문은 덧붙였다.
일부 아동은 이미 이런 교육에 따른 실제 행동을 보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으로 친어머니를 잃고 러시아군의 양자가 됐던 한 14세 소년은 계모의 학대 속에서 “우크라이나인을 죽인 러시아군에 감사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고 세이브 우크라이나 설립자 미콜라 쿨레바가 전했다. 이 소년은 할머니의 구조 요청에 따라 세이브 우크라이나가 데려왔다. 또 다른 어린이는 세이브 우크라이나가 구조를 위해 양부모와 접촉하자 “돌아가면 나치에게 살해 당한다”고 거부해 친누나가 장시간에 걸처 귀환을 설득해야 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아동을 데려간 행위를 사실상 ‘유괴’로 판단하고 지난 3월 책임자인 푸틴 대통령 등 관련자들에 대해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한 조치’라고 반박하는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과 함께 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마리야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 담당 위원은 지난 4월 체포영장 발부에 관해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전장에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인도주의적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박준희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군대마저 “저출산으로 해산합니다”…육군 8군단, 3군단에 통합
-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을 다큐로?…‘문재인입니다’가 빚은 ‘문화의 정치화’
- 1.5억짜리 작품 속 바나나 먹은 서울대 미학과 학생...“관종 짓” vs “현대미술의 미학적 행위”
- 바그너 수장 “포탄 10~15%밖에 없다…탄약 안주면 바흐무트서 철수할 것” 푸틴 협박
- “내가 번 돈 쟤 다 줘”…임창정, 투자자 행사 또 참석 ‘논란’
- 회사 ‘52조’ 빚더미 앉았는데 전임 사장 성과금 6100만원 타간 이곳
- 검찰, ‘천화동인6호 실소유주 의혹’ 조우형 구속영장
- ‘꿈의 원전’ SMR로 글로벌 600조 시장 선점 나선다
- [속보] 국민의힘 윤리위, ‘설화’ 김재원·태영호 징계절차 개시
- “바이든, 尹과 듀엣하려 했다” 박지원 비난에 대통령실 “반국가적 작태” 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