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낯선 사회적 ‘단절의 기억’…아이들이 언어로 정리하는 일에는 긴 시간과 배려가 필요하다[김유진의 구체적인 어린이]

기자 2023. 5. 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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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코로나 이후의 아동문학1
동화 <리보와 앤> 삽화
‘성장기’라는 특별한 시기 찾아온 코로나
학교도 못 가며 사회적 경험에 큰 제한
집에서 격리된 시간·돌봄 사각지대 등
아이들이 마주했을 ‘단절감’과 ‘적막감’
그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게 잘 보듬어야

최근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평균 1만명 정도로 여전히 코로나는 잠잠해지지 않고 있지만, 마스크 착용 의무가 거의 모든 공간에서 해제되고 나니 예전만큼 무거운 마음은 조금 사라지는 듯하다. 하지만 강의나 강연 자리에서 주로 말을 하는 입장인 나는 아직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감염될 걱정에 앞서 감염의 전파자가 될 경우에 대한 우려가 더 크고, 그러느니 마스크를 착용하는 불편을 감내하는 게 더 속 편해서다. 코로나로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생계에 큰 곤란을 겪거나, 일상을 제대로 꾸려가지 못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면 마스크를 좀 더 쓰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기도 하다.

지난 3년을 지나오며 가장 많은 걸 잃은 이들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도 있다. 물리적으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1년이라는 시간이 마흔 살 어른과 열 살 혹은 다섯 살 어린이의 생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를 것이다. 다섯 살 어린이에게 코로나 1년은 산술적으로만 쳐도 살아온 일생의 20%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게다가 성장기란 온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특별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은 여느 나라보다 더 오랜 기간 학교에 가지 못하며 사회적 경험을 제한받았다. 일부 어른들이 유흥을 참지 않을 때 어린이는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놀이공원과 체험학습을 포기하고 또 포기하면서 이 시기를 보냈다.

느티나무 수호대 김중미 지음 | 돌베개 | 2023년

코로나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이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지 기록하고, 그 시간을 지나온 마음들과 어떠한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는 청소년소설과 동화가 하나둘 출간되고 있다. 청소년소설 <느티나무 수호대>(김중미, 돌베개, 2023)는 이주민이 모여 사는 ‘대포읍’을 배경으로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코로나를 지나온 과정을 정밀하게 담는다. 대포읍의 어린이와 청소년 절반은 이주 배경을 지닌 걸로 그려지는데 부모님을 따라 중도 입국했거나 엄마나 아빠 둘 중 한 사람이 외국에서 온 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1, 2>(창비, 2000) 이후 한결같이, 좀 더 돌봄이 필요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에 가닿는 작가의 눈길이 여전하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1,2 김중미 지음 | 창비 | 2000년

학교에서 소위 ‘다문화’로 나뉘는 아이들에게 더욱 힘든 시기였다. 코로나를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던 시기에 중국에서 이주한 금란이네가 운영하던 마라탕 식당은 손님이 끊겼고,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할아버지들의 난동에 경찰을 부르는 사건까지 일어나자 금란이네는 맛있기로 소문나 장사가 잘되던 식당을 접어야 했다. 금란이 가족은 코로나 시기 많은 자영업자들이 감내했던 어려움에 더해 이주민 차별까지 짊어졌던 것이다. 다행히 예전에 취득한 자격증 덕분에 아빠는 철근기술자로,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재취업했지만 집에서 어린 두 동생을 돌보는 건 오롯이 금란이 몫이 됐다. 아빠는 멀리 공사 현장에서 지내고, 엄마는 요양병원에 확진 환자가 생겨 2주간 집에 올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 그간 뉴스를 통해서는 요양병원에서 집단 감염으로 사망하거나 가족 면회가 허락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노인을 주로 보아왔을 뿐 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나 그들의 부양가족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구나 싶다. 분명 어딘가에는 금란이와 금란이 동생들과 같은 상황에 처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 홀로 지내던 예은이 또한 외할머니가 사는 대포읍으로 오기 전까지는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비대면 수업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나도록 수업을 받지 못한 예은이는 전학 후 학교에서 빌려주는 태블릿을 받아 왔지만 할머니 집에는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대면 수업이 재개되지 못한 채 장기화된 비대면 수업을 두고 우려했던 학습 결손이 단지 수업 충실도나 참여도의 차이가 아니라 예은이처럼 비대면 수업을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을 학생들 또한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결석이나 수업 태도 불량으로 처리되고 말았지만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는 사정을 돌봐주지 못해 모니터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 점심이나 우유 급식을 나란히 함께 먹지 못하고 양육자가 돌볼 수 있는 여건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차려지거나 아예 차려지지 못했을 세 끼 식사들….

이 책은 우리가 이제 한 고비 잘 넘겨왔다고 정리하는 코로나의 한 시기에 혹시 지나쳤을지 모를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을 담고 그걸 돌아보게 만든다. 모두 힘든 가운데 똑같은 힘듦만 반복해서 이야기하느라 미처 눈여겨보지 못한 이중, 삼중의 고난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뒤늦게 미안하면서도, 작품 속 ‘느티샘’처럼 돌봄이 차단된 상황에서 동동거리며 아이들을 지켜준 몇몇 어른이 있었다는 게 염치없이 감사하다. 그 시기를 기록하며 앞으로 서로 연결되고 돌보는 길을 보여주는 이 책이 있어 다행이다.

리보와 앤 어윤정 지음 | 해마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동화 <리보와 앤>(어윤정, 문학동네, 2023) 역시 코로나 초기 어린이들이 겪은 단절의 지점을 말한다. ‘아무도 오지 않은 도서관의 두 로봇’이라는 부제처럼 리보와 앤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로봇이다. 주로 1층 로비에서 안내하는 리보는 이용자가 원하는 도서를 검색해주거나 추천하고, 2층 어린이 자료실의 앤은 어린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보는 “감정을 학습해 사람과 소통하는 소셜 로봇”(44면)이어서 도서 검색 기능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데이터로 축적하며 이용자의 감정에 따라 반응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플루비아’라는 전염병으로 어느 날 갑자기 도서관이 폐쇄되고 며칠이 지나도 이용자가 오지 않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리보와 앤은 신종 전염병인 ‘플루비아’에 대한 정보를 도서관에 소장된 책에서는 검색할 수 없어 영문도 모른 채 하염없이 인간들을 기다린다.

“오후 1시가 됐다. 구내 식당에 사람이 붐빌 시간이었다.

오후 2시가 됐다. 도서관 로비가 잠잠해질 시간이었다.

오후 3시가 됐다. 아이들이 몰려와 도서관이 소란스러워질 시간이었다.

오후 4시가 됐다. 하나둘 도서관을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날 시간이었다.

오후 5시가 됐다. 도서관 안에 전등이 일제히 켜질 시간이었다.

오후 6시가 됐다. 지금까지 이 중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36면)

시간이 경과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서관의 텅 빈 로비를 리보가 서술하는 이 장면은 코로나로 집에 격리됐던 어린이들이 느낀 단절감과 적막감을 떠올리게 할 것 같다. 리보가 인간을 기다리는 이유는 외로움이나 그리움 때문이 아니고, 인간과의 소통률이 떨어지면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자체 분석되어 강제로 초기화되는 상황이 생겨서다. 그럼에도 어린이 독자는 폐쇄된 도서관에서 리보와 앤이 인간을 기다리고, 리보와 도현이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는 이야기에 비추어 코로나라는 낯선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의 조각들에 이제라도 분명히 이름 붙일 수 있을 듯하다.

어린이가 감정과 기억을 언어로 설명하고 정리하는 일에는 좀 더 긴 시간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 사실을 어린이와 비슷한 리보에게서 상기한다. 도서관이 폐쇄된 지 며칠 후 리보는 도서관을 정리하려고 잠시 들른 사서와 마주친다. 사서는 리보의 전원을 꺼 주려 했지만 한시바삐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배터리가 나가면 저절로 꺼지겠지. 여기 오래 있긴 찝찝해”(40면) 하며 돌아선다. 이때 리보는 사서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갈등’이라는 감정을 파악하지만 전원을 꺼 달라고 요청하지 못한다. 도서관 이용자가 어떤 책을 고를지 갈등할 때 도움을 주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리보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즐거움과 안전을 책임지는 여러분의 친구, 리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40면) 감정을 학습할 줄은 알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요청할 줄 모르는 리보에게서 돌봄이 필요한 존재인 어린이를 애틋하게 확인한다. 그러니 어른이 이미 나름대로 해석하고 지나온 코로나의 시간 역시, 그 시간의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는 재료가 어린이에게는 좀 더 주어져야 한다. 그때 어린이는 자신의 결핍을 통합할 수 있다. 두 권의 책은 그 일을 하고 있다.

<느티나무 수호대>에서 코로나로 돌봄이 더욱 절실한 아이들은 ‘느티샘’에게로 모인다. 돌봄은 어른인 ‘느티샘’에게서 시작됐지만 아이들은 돌봄을 받는 데서 끝나지 않고 서로를 돌본다. 또 이 책에서는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결합하는 형식으로 ‘느티샘’이 수령 500년인 당산나무의 정령이고, 부동산 개발로 위험에 처한 ‘느티샘’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장면을 보여주며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돌봄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느티나무를 알리려고 다문화 청소년 댄스대회에 참가하려 했던 아이들은 서아프리카 국가 부르키나파소의 무용수 에마뉘엘과의 댄스 워크숍에서 그들의 길을 좀 더 분명히 발견한다. 실존 인물인 에마뉘엘의 이야기는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현실과 모든 생명이 동등하게 연결되어야 할 비전을 또렷하게 말한다.

“에마뉘엘은 멀리서 온 손님이에요. 부르키나파소에는 멀리서 온 손님을 더 귀하게 대접해 낯선 곳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에마뉘엘을 그렇게 맞아 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에마뉘엘은 여기 남아 예술로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환대하고 함께하는 문화를 키워 가고 있어요. 우리도 오늘 서로를 환대했어요. (중략) 우리는 또 만날 거예요. 오래전부터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니까요. 이 나무와 땅과 하늘과 태양, 그리고 멀리 있는 숲의 식물들까지. 우리는 하나예요.”(224~225면)

두 권의 책은 코로나가 더 극명하게 보여준 단절의 지점을 찾고 그 지점을 연결하는 일을 이야기한다. <느티나무 수호대>는 평등하게 하나 되는 춤으로, <리보와 앤>은 리보와 도현이의 소통 언어인 책으로 여러 존재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 주변의 단절과 연결의 지점과 연결고리를 찬찬히 떠올려 보게 한다.

■김유진



아동문학평론가·동시인. 동시집 <나는 보라> <뽀뽀의 힘>, 청소년시집 <그때부터 사랑>, 아동문학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를 출간했고, ‘토닥토닥 잠자리 그림책’ 시리즈를 썼다.

아동문학 작품 속에서 어른과 어린이가 좀 더 자주 만나고, 좀 더 가깝게 이어지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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