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부실대출 줄여 재매각…은행부담 최소화
대형銀 예금·대출 동시인수 꺼려
美정부, 구조조정 후 매각 선회
금융위기같은 충격 없겠지만
중소銀 연쇄 뱅크런 우려 여전
미국 정부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대해 '선(先)구조조정·후(後)매각'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했던 것은 전면 인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본이 풍부한 대형 은행조차 부실 대출 인수를 꺼렸다는 평가다.
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FDIC와 JP모건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소유한 주거·상업 대출에 대한 손실을 공유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인수로 예상되는 손실 일부를 보전하겠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시가총액이 2021년 11월 400억달러(약 53조6400억원)에서 6억5300만달러(약 8756억원)로 98.3% 폭락한 점에 일정 부분 기대를 품었다. 가격이 낮아진 만큼 전면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형 은행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형 은행들이 손사래를 친 까닭은 예금과 대출을 동시에 인수할 경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있는 부유층에게 빌려준 산더미 같은 저금리 대출이 문제가 됐다"고 진단했다. 팬데믹 기간에 뿌린 저금리 모기지 대출은 지난해 금리 인상으로 가치가 급락했고, 은행들의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는 인수자 없는 파산만큼은 막으려고 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2만5000달러 미만에 대해 전면 예금 보장을 해야 하고, 이에 따라 FDIC 기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FDIC는 이번 파산으로 130억달러에 달하는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분석했다. FDIC의 발표 이후 미국 재무당국은 고무적인 태도를 보였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재무부 대변인은 이 소식과 관련해 "FDIC 기금이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 모든 예금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고무적이다"며 "미국 은행 시스템은 여전히 건전하고 회복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숙제는 남았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수준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다만 다른 은행들의 뱅크런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중소 은행 파산으로 예금자들이 대형 은행으로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JP모건이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하면서 미국인들의 대형 은행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미국 정부는 특별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규정은 특정 은행이 전체 예금의 10%를 보유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JP모건이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하면 10%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통화감독청은 앞서 "FDIC가 JP모건의 손을 들어줄 경우 신속히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규정을 고쳐서라도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JP모건에 매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시장은 이번 파산의 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자산 2126억3900만달러의 은행으로 미국 내 14위다. 올해 3월 16위 실리콘밸리은행과 29위 시그니처은행이 잇달아 파산하면서 함께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11개 은행이 300억달러를, 연방준비은행이 1000억달러의 자금을 긴급 대여해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1분기 실적 발표 결과를 열자마자 뱅크런 위기감이 고조됐다. 예금이 1764억달러에서 1044억달러로 1년 새 40%(720억달러) 줄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연쇄 뱅크런이다. 스티븐 켈리 예일대 경영대학원 선임 연구원은 "이번 파산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은행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은행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당국의 긴급 개입에도 시장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이날 개장 직후 미국 S&P 500선물 지수는 전일 대비 0.16% 하락한 4182.00에서 거래됐으며,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일 대비 0.18% 하락한 12204.06에 거래되고 있다.
[실리콘밸리 이상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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