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MZ세대 [만물상]
지난 30일 서울하프마라톤이 열린 광화문광장은 출발 2시간여 전인 오전 6시부터 열기로 들썩였다. 티셔츠를 맞춰 입은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수십 명씩 뭉쳐 기념사진을 찍고 몸을 풀었다. 음악에 맞춰 다 같이 춤추고 함성 지르며 한바탕 축제처럼 대회를 즐겼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다양한 색깔의 대형 깃발이 등장해 응원전이 펼쳐졌다. 20~30대 중심의 달리기 팀 ‘러닝 크루(running crew)’를 상징하는 깃발들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생겨난 ‘러닝 크루’는 현재 서울에만 100여 개로 추산된다. 온라인으로 팀을 결성해 비슷한 또래끼리 함께 뛰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면 수십 명이 집결해 대열을 이뤄 함께 달린다. 코치와 포토그래퍼 같은 전문 인력을 갖춘 곳도 있다. 올해 서울하프마라톤 참가 신청자 중 60%가 20~30대였다. 배우 임시완, 가수 션, 전 축구선수 조원희 등도 ‘언노운(Unknown) 크루’ 영문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뛰었다.
▶MZ세대는 편한 옷차림으로 새벽에 동네 한 바퀴 도는 조깅,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마라톤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달리기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들에게 달리기란 스포츠이면서 ‘멋’이다. 몸매를 드러내는 운동복에 화장까지 하고 배경이 멋진 곳을 골라 달린다. 자신이 달리는 모습을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유행하면서 ‘런스타그램(런+인스타그램)’ ‘런플루언서(런+인플루언서)’ 같은 신조어도 생겨났다. 스포츠 브랜드가 직접 조직한 크루, 친목을 중시하는 크루, 별도 회원 가입 없이도 일정만 맞으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함께 달리고 흩어지는 크루 등 개성도 다양하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팀은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건강 관리도 즐거워야 한다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를 글로벌 트렌드로 분석했다. “밥 한 끼는 걸러도 여덟 가지 영양제는 절대 거르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요즘의 건강은 단지 질환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스스로의 삶과 몸 상태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뜻한다”고 했다.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됐다는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정치·경제적 불안감이 건강에 대한 투자로 표현된다는 분석도 있다. 달리기에 푹 빠진 젊은이들은 건강은 물론이고 성취감과 연대감, 배려와 도전의 가치, 진실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달리기의 참맛을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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