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나役 맡으려 태어나 … 내가 찐 댄싱퀸”

이강은 2023. 5. 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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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맘마미아’ 최장수 주연 최정원
16년간 1030회 넘게 도나로 열연
2008년 ‘세계 최고 도나’ 오르기도
가수인 딸 유하 키우며 ‘엄마 경험’
이젠 모든 장면 물 흐르듯 연기해
“체력 좋아 2000회까지 하고 싶어
도나야 고마워, 넌 소중한 친구야”
엄마가 고된 표정을 지을 때면 여섯 살 소녀는 가수 이미자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성대모사도 했다. 엄마는 그런 딸의 재롱에 환하게 웃으며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그러면 아이는 행복했다. 고등학생이 된 소녀는 어느날 생소한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바로 서점에 가서 책들을 뒤져보다 뮤지컬에 대해 알게 됐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좋았던 소녀가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되는 순간이다.
1989년 데뷔 후 3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많은 무대에 선 최정원은 뮤지컬 ‘맘마미아!’를 인생작으로 꼽으며 훗날 묘비에도 ‘신나게 춤춰봐. 인생은 멋진 거야. 기억해 넌 정말 최고의 댄싱퀸’이란 댄싱퀸 가사를 새길 거라고 했다. 사진은 최정원이 ‘맘마미아!’에서 주인공 ‘도나’를 맡아 열연하고 있는 모습. 신시컴퍼니 제공
노래와 춤, 연기를 연마하며 스무 살이던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했다. 대사 한 마디뿐인 단역이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배우 최정원(54)은 한국 뮤지컬 역사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이름을 써내려갔다. 그동안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렌트’, ‘그리스’, ‘지킬 앤 하이드’, ‘시카고’, ‘마틸다’ 등 수많은 작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한 그가 최고의 인생작으로 뽑는 건 ‘맘마미아!’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최정원은 “배우가 되기로 마음 먹은 건 누군가를 웃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관객이 가장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바로 ‘맘마미아!’다”며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기쁨과 사랑이 넘친다. 배우와 관객 모두 행복하게 하는 작품이라 내 적성에 딱 맞는다”고 말했다.

‘맘마미아!’는 지중해 외딴 섬의 모텔 주인이자 미혼모인 ‘도나’가 결혼을 앞두고 아빠를 찾으려는 스무 살 딸 ‘소피’ 때문에 자신의 옛 연인 3명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히 ‘댄싱퀸’과 ‘맘마미아’, ‘허니허니’ 등 스웨덴 출신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ABBA)’의 대표 히트곡 22곡이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귀에 쏙쏙 꽂혀 큰 인기를 끌었다. 1999년 영국 런던 초연 이래 전 세계 450여개 주요 도시에서 6500만명 이상을 끌어모으며 티켓 판매 수입만 6조4000억원에 달한다.
한국에선 2004년 첫선을 보였고, 최정원은 2007년 1월 도나 역으로 합류해 전 세계 ‘최장수 도나’가 됐다. 16년 동안 1030회 넘게 도나를 맡았다. 출연 횟수는 스페인 배우 니나(2400여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최정원은 2008년 전 세계 171명 도나 중 ‘세계 최고의 도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아바가 초청한 스웨덴 콘서트에서 마지막 무대를 ‘맘마미아!’ 갈라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2007년 첫 공연 직후 쓸개관 담석증으로 수술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진통제 투혼으로 모든 공연을 책임진 그다웠다. “공연을 다 마무리하고 수술받겠다고 병원에 가니 담석들이 다 사라졌더라고요. 의사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죠.(웃음)”

데뷔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오를 만큼 평소 건강과 체력 관리에 철저한 최정원은 “운명처럼 만난 게 ‘맘마미아!’의 도나다”라며 “요즘 체력이 더 좋아져 1500회까지 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하다. 딱 2000회까지 하고 싶다”고 했다. “60살이 두렵지 않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하면서다.

그는 딸인 가수 유하(24)와의 모녀 관계를 전하며 “이제야 정말 도나가 됐다. 모든 장면이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고 했다. 배우는 경험해보지 않은 역할을 할 때 대부분 상상하며 연기하느라 애를 쓰는데, 소피에 대한 도나의 감정은 엄마로서 직접 겪었던 게 많아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정원은 자신이 도나 역을 맡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자부하면서 훗날 묘비에도 ‘댄싱퀸’ 가사를 새기겠다고 했다. “딸(유하)한테 제 묘비에 ‘신나게 춤춰봐. 인생은 멋진 거야. 기억해 넌 정말 최고의 댄싱퀸’을 새겨 달라고 했어요. 묘지에는 ‘댄싱퀸’ 음악을 꼭 틀어 달라고 했죠.(웃음)”

그는 “댄싱퀸은 춤을 잘 추는 게 주인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주인공은 바로 너’라는 의미로 스스로 가장 빛나는 인생을 축복해주는 말”이라며 사람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않고 살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최정원과 도나가 서로에게 한 마디씩 해준다면? “도나는 ‘최정원 네가 찐 댄싱퀸이다. 내가 졌다’라고, 최정원은 ‘도나야, 고맙다. 한 여자로서 뮤지컬 배우로서 고마운 캐릭터였어. 너는 정말 소중한 친구야’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공연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다음달 25일까지.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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