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사태 소송전 조짐] 금융위, 작전설 돌았는데 인지 조차 못했다
"미온적 태도가 피해 더 키웠다"
프랑스계 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로 일주일만에 약 8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하며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주가조작 의혹에 재계인사와 연예인 등 유명인들까지 거론되면서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금융당국의 늑장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개인 투자자들은 당국의 조사 착수까지 시간이 지체되면서 이를 눈치챈 주가 조작 세력들이 물량 처분에 나서 무더기 주가 폭락 사태가 터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달 초 일부 종목에 작전 세력이 개입했다는 정황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사 제보 등을 통해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초부터 시장에선 작전설이 돌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금융위가 인지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태를 인지한 시점은 아주 최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초에 (제보가 들어갔다는) 그런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검찰에서 출국 금지 조치를 했고, 압수수색도 진행 중이라서 지금 시점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도 "수사 결과에 따라 향후 제도 보완 필요성이 있으면 당연히 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가스, 삼천리, 선광, 대성홀딩스, 하림지주, 다올투자증권, 다우데이타, 세방 등 8개 종목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급등했다가 지난 24일 외국계 SG증권을 통해 매물이 쏟아지며 연일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들 종목은 유통물량이 적어 평소 주가 변동성이 크지 않았다. 대성홀딩스와 선광, 다우데이타, 세방 등 4개 종목은 증권사 커버리지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아 관련 보고서가 아예 없다. 곧 이들 종목이 주가 조작에 활용됐다는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보를 받은 금융위가 조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이란 소문에 주가조작 세력들이 대규모로 주식을 처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사 착수까지 시간이 지체되면서 세력에게 주식을 처분할 시간을 준 것이 됐다고 개인 투자자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투자자 단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1일 성명을 내고 금융당국의 늑장 대응 등에 대해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한투연은 "시가총액 8조원 내외를 증발시키고 피해자를 양산한 이번 사태에 대해 금융 당국의 책임 있는 조사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투연은 "이번 사태는 주가작전 세력이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를 악용해 발생한 주식시장의 예고된 참사오서, CFD가 주식양도세 회피, 신분세탁 등에 악용된다"고 지적했다. 한투연은 "CFD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긴 것이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점에 대해 금융위를 비롯한 관계기관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방송에서 "금융위가 주가조작 제보를 받은 게 4월 초순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초기에 금융감독원·남부지검과 공조하지 않고 단독조사를 했다고 한다"며 "제보 후에 조사 본격 착수까지 시간이 지체되면서 당국의 움직임을 눈치 챈 주가조작 세력들이 물량 처분에 나서면서 주가 폭락 사태가 빚어진 게 확실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통상 금융위는 중대한 사안의 경우 금융감독원과 공동 조사를 벌인 뒤 패스트트랙(신속 수사전환)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보 자료들을 쥐고 있다가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금감원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늑장 대응으로 이들 종목은 연일 급락하면서 지난달 24일부터 8조원에 가까운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8개 종목의 지난 28일 기준 시가총액은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지난 21일 대비 7조8492억9000만원 급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일단 사안이 중하니 압수수색 권한이 있는 금융위 자본시장조사총괄과가 먼저 나섰던 것"이라며 "금감원과 남부지검 협력을 받아 실시간으로 자료를 공유해왔다"고 설명했다.현재 검찰과 금융당국이 합동수사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은 지난 달 28일 금융위와 금감원의 수사·조사 인력이 참여하는 합동수사팀을 구성했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심받는 H투자컨설팅업체의 서울 강남구 사무실과 관계자 명의 업체, 주거지 등을 전방위 압수수색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관련자 소환 조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는 매수·매도가를 정해 사고팔며 주가를 띄우는 통정거래가 있었는지를 규명해 내는 게 핵심 과제로 꼽힌다. 주가 조작 혐의 세력이 다수의 투자자를 모집한 것으로 알려진 데다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주가를 끌어올렸기 때문에 혐의 입증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공매도 세력 연루 가능성, 대주주의 사전 인지 여부 등도 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또 금융당국은 현재 주가 폭락 전 일부 종목들에 대한 공매도가 급증한 경위 등을 살펴보고 있다. 선광의 경우 평소 10주 미만이었던 공매도 물량이 폭락 직전인 지난 19일 4만주 이상 나오는 등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하한가를 맞은 8개 종목 대주주 등이 주가 조작 여부 등을 사전 인지하고 있는지도 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폭락 사태 직전 다우데이타 보유 주식을 처분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익래 회장은 지난 20일 시간외매매로 다우데이타 140만주(3.65%)를 주당 4만3245원에 처분해 605억원을 확보했다.
서울가스 김영민 회장도 지난 17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주당 45만6950원에 10만주를 팔았다고 공시했다. 매도 금액은 456억9500만원에 이른다. 이중명 전 아난티 회장도 주가조작 세력에 연루돼 자신도 피해를 보고 다른 투자자도 끌어들인 의혹을 받고 있다.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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