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개발한 藥 자판기… 국내선 10년 반대, 中선 러브콜 [규제 발목 잡힌 스타트업]
약사·소비자, 원격처방 ‘윈윈’에도
대한약사協 반대·정부 규제 암초
철거 압박에 고소전… 갈등 여전
“中·동남아 해외 진출 더 빠를 듯”
쓰리알코리아는 혁신 서비스를 내놓은 뒤 시범사업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을 정부, 대한약사회와 싸워왔다. 그 긴 시간을 거친 박인술(61)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1일 “국민 편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 누구도 우리 서비스를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역단체 반대에 꺾이는 혁신 의지
쓰리알코리아는 법인을 세운 이듬해인 2013년만 경기도 약사회와 화상투약기 사업을 함께하기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경기도 약사회는 대학약사회 4분의 1이 속한 최대 지부다. 그 해 인천시 부평구의 약국 앞에 화상투약기 시제품을 설치했으나 2개월 만에 철거해야 했다. 대한약사회가 강력하게 반대했고, 보건복지부는 국제 약사법 제50조를 근거로 화상투약기가 위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해당 법에는 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가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선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투쟁과 희망 고문으로 점철된 10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약사회는 △의약품 오·투약 위험 △개인정보 유출 △지역 약국 시스템 붕괴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박 대표는 “10년 동안 반대 이유가 매일 바뀌었다”며 “의료 영리화의 단초가 된다, 약품 보관의 문제가 있다 등 여러 이유를 댔는데 일선 약사들을 만나 화상투약기 작동법을 설명하면 ‘약사회에서 왜 이걸 반대하지’라는 반응”이라고 했다.
2016년 6월 화상투약기 합법화 내용을 담은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정부안으로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의원들이 8만 약사회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회에서 진전이 없자 쓰리알코리아는 2019년 5월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지난한 논의 끝에 지난해 6월20일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가 열려 실증특례(시범 운영) 결정을 내렸다. 신청부터 승인까지 무려 3년이 걸렸다.
지난해 9월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이 연구해 발표한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누적 투자액 기준 글로벌 100대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중 55개가 국내에서 온전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다 금지법’, 비대면 진료 규제 등 영향이다.
더 문제는 5년 전 같은 조사를 했을 때와 상황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7년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가 같은 조사를 했을 때 56곳이 한국에서 사업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기업이 규제 샌드박스에 들어갈 때 소요 기간과 평가 기준이 불확실한 맹점이 있다고 짚었다. 동시에 부가 조건이 지나치게 많다는 분석도 내놨다.
올해 3월30일부터 수도권에서 시범 사범을 시작한 쓰리알코리아도 같은 애로를 겪고 있다. 화상투약기로 판매 가능한 일반의약품 범위가 해열·진통·소염제 등 11개 약효군으로 한정됐다. 박 대표는 “보건복지부가 정한 11개 약효군의 근거를 알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상처소독약, 소화제, 청심환 등은 팔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규제 샌드박스 원칙이 사업의 부가 조건을 제시할 때는 규제의 타당성을 담당 공무원이 입증해야 하는 ‘규제입증책임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시범사업에 돌입한 뒤에도 약사회와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 관악구의 약국 앞에 설치된 화상투약기에 대해 약사회 임원이 해당 약국을 방문해 철거 압박을 했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이 임원을 지난달 13일 관악구 경찰서에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박 대표는 “해외에서 사업이 더 빨리 진전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최근 중국 쪽에서 관련 사업자들이 사무실로 방문해 3차례 미팅을 하며 중국 시장 진출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는 “중국이나 동남아 쪽은 의료 환경이 열악하고 도농 격차도 심한데 화상투약기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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