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너지는 경제, 보고만 있을 텐가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수출 부진에 무역수지는 작년 3월 이후 14개월째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달러화 가치는 추세적 약세를 보이는데 원화 가치는 더 심한 약세(고환율)를 보인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역성장(-0.4%)에서 올해 1분기에 겨우 0.3%(전 분기 대비)를 기록했다. 올해 1%대 성장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1990년대 말에 닥쳤던 IMF 한란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이 아니었다. 당시 모든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있었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다가 당한 것이었다. 그때 우리 국민은 위대했다.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듯이 환란을 극복하자고 국민은 단결했고, 금융·노동·기업 등의 구조 조정을 통해 살길을 찾았다.
지금 우리의 경제 상황은 환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민은 단결은커녕 네 편과 내 편으로 크게 갈라져 있다. 경제가 서서히 나빠지고 있으니 긴장감도 덜해서 그런가.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고 조금씩 데우면 개구리는 죽는 줄도 모르고 죽어간다. 우리의 경우가 그렇다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정치판을 보라. 거대 야당의 폭주와 여당의 무능이 얽혀 국회는 '방탄 국회'로 전락하는가 하면, 국민의 삶과 무관한 허접한 정쟁과 포퓰리즘 경쟁의 현장이 돼 있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성과를 두고 여야의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정파적 이해가 어떻든 외교 성과를 국익 증대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국익 증대에 여야가 힘을 합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우리 경제는 단순히 경기가 나쁜 게 아니라 장기 저성장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노사는 물론 정부와 국민 모두 고통을 조금씩 나눠야 할 때다. 거대 노조의 불법과 일탈 행태를 방치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경제 위기는 바로 정치 위기에서 비롯된다. 만나면 싸움질만 하는 여야가 비용이 20조 원에 이른다는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광주 군(軍)공항 이전 특별법을 합의 처리했다. 돈 뿌리는 일에 손을 맞잡은 것이다. 예비타당성(예타)조사도 면제했다.
기존 공항도 이용 승객이 적어 문을 닫을 판인데 이런 일을 하겠다니 할 말을 잊는다. 멀쩡한 김해공항을 두고 큰 돈이 들어가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도 씁쓸하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1067조7000억 원, 나랏빚은 빛의 속도로 늘어난다. 마구잡이식 재정을 제어할 수 있는 안전판이 재정준칙이다. OECD 38개국 중 이 법안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 뿐이다.
국회는 재정준칙 법안은 외면하면서 국가재정이 들어가는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총사업비 기준(현행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을 올리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경제재정소위에서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비판이 쏟아지자 국회 통과를 연기하기로 했지만, 연기가 통과로 바뀌는 날이 언제 올지 모른다.
지금 서민을 울리는 전세 사기 피해도 2020년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과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결과다. 시장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법을 만들고 밀어붙이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민주당이 5월 임시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노란봉투법'도 노조의 불법 파업을 부추기고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 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국민은 먹고살기 힘든데 허접한 정치적 다툼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미 예상한 바이지만 경기 침체와 기업 실적 저조 때문에 세수 펑크가 나고 있다. 나라 살림 씀씀이를 살피는 일이 급하고 더욱 중요하다. 나랏빚 생각하지 않고 표(票)만 노리는 퍼주기 포퓰리즘은 나라 경제 망치고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경제 위기는 바로 정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경제야"가 아닌 "문제는 정치야"다. 여야 모두 경제 살리는 정책으로 경쟁하라. 경제 살리는 일에 여야가 힘을 합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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