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의 시선] 오늘의 앵커멘트
[미디어오늘 이선영 MBC 아나운서]
MBC에는 세 가지 큰 뉴스가 있다. MBC 뉴스의 중심이 되는 <뉴스데스크>, 정치·경제를 모두 아우르며 대담으로 채워지는 2시 <뉴스 외전>, 그리고 아침을 여는 <뉴스투데이>. MBC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3사의 굵직한 뉴스 편성은 이렇게 저녁 메인뉴스, 낮 뉴스, 아침 뉴스가 트로이카로 편성되는데 각 뉴스마다 채워지는 뉴스 색깔과 진행 방식은 공식화해 있다.
모든 리포트는 저녁 메인 뉴스를 중심으로 생산된다. MBC의 경우 오전 10시에 첫 편집회의가 열리는데, 이때 보도국 모든 부서가 전날까지 있었던 뉴스를 리뷰하고 오늘 낼 뉴스거리를 발제한다. 이를 토대로 낮 시간 기자들이 분주히 기사를 만들고, 늦은 오후에 편집회의를 한 번 더 거쳐 저녁 7시 40분 <뉴스데스크> 직전에 그날 보도될 기사들의 목록인 큐시트가 확정된다.
<뉴스데스크>가 방송되기 전에 만들어진 리포트는 2시 <뉴스 외전>이나 오전 9시 30분, 정오, 오후 5시 뉴스 등 작은 낮 뉴스에서 전해지기도 하지만 주 무대는 역시 저녁 메인인 <뉴스데스크>다. 그리고 <뉴스데스크>에 나간 기사들 중 시의적으로 여전히 보도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야간에 새로 나온 뉴스와 더불어 다음날 <뉴스투데이>에서 다시 전해진다.
리포트가 만들어지고, 비로소 <뉴스데스크>에 방영됐다 사라지는 과정을 보면 저녁 메인 뉴스 외에 다른 뉴스들의 매력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리포트라도, 뉴스마다 전달되는 방식이 면면 다르다는 걸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뉴스데스크>는 모든 뉴스 중 가장 '스토리텔링' 위주다. 온종일 힘을 준 기사가 주 무대에 서는 시간인 만큼 그 기사를 소개하는 앵커 멘트도 설명적이다. 왜 이런 기사가 나왔는지, 우리 뉴스는 어떤 어젠다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싶은지 너무 직접적인 방식은 피하되 이야기로서 잘 녹여 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녁 메인 뉴스 앵커에게 우리는 그저 소식을 전하는 역할에 더해 그 존재 자체로 기사 가치를 전하는 아우라를 기대한다.
한편 <2시 외전> 같은 낮 뉴스는, 기자들이 한창 오늘의 리포트를 만들고 있을 시간에 방송되는 뉴스이기 때문에 기사 자체보다는 현안에 대한 토론 위주로 진행된다. 스토리텔링식 앵커 멘트보다 정치인이나 각 분야 내로라하는 전문가 등 걸출한 패널들을 아우르는 깊이와 '진행 능력' 자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아침에 방송되는 <뉴스투데이>는 어떨까. 전날 <뉴스데스크>에서 전해진 리포트가 다시 전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일 만큼의 장황한 설명을 다시 한번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아침 뉴스 시간은 시청자 대부분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할 때다. 이때 앵커 역할은 리포트의 핵심을, 간결하게 전하는 것이다. 세 가지 뉴스 중 앵커의 카리스마가 가장 덜 드러나지만 화면 뒤에서 갖춰야 할 세심함과 정확함은 뒤져선 안 된다.
5월부로 MBC의 아침을 여는 <뉴스투데이> 앵커가 됐다. 나의 일상도, 뉴스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과 함께 숨을 쉬게 됐다. <뉴스투데이>에 나가는 리포트 대부분의 태생이 <뉴스데스크>이기 때문에 내 하루 시작은 저녁 7시 30분이다. <뉴스데스크>를 통해 기사를 이야기로 충분히 음미하며 전해 듣고, 잠깐 잠이 들었다 새벽 3시 출근길에 나선다. 그리고 뉴스가 시작될 시간을 앞둔 2시간여 동안, '오늘'이라고 돼 있는 시제를 '어제'로 바꾸거나 '크림반도'를 '크름반도'로 고치는 것, 네 줄의 앵커 멘트를 두 줄로 소화되기 쉽게 줄이는 세밀한 일부터, 정치 뉴스 밸런스를 가늠해 보는 난도 있는 것까지. <뉴스투데이>를 틀어놓고, 각자 일상을 분주하게 시작할, 때로는 그 시각에 남들과 다르게 하루를 정리할 시청자들을 떠올리며 앵커 멘트를 매만진다.
MBC 뉴스를 움직이는 트로이카 중 하나의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은 나의 아나운서 인생 타임라인에 어떤 방점을 찍는 주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에 들떠 스스로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역할을 언제나 정확히 이해하는 앵커가 되고 싶다. 오늘의 앵커멘트는 언제나, 이곳에 새긴 진정성으로 적어 나가겠다. 지금까지 MBC 뉴스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내가 만일 지금의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순간 여러분이 따끔히 다시 일러주기 바란다. MBC의 문을 여는 뉴스를 전하기로 하며 방금 한 약속을 말이다.
*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이선영의 시선>은 2년 3개월 여의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당분간은 저의 시선을 글로써 드러내는 일은 접어두고, 뉴스를 전하는 앵커 역할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이선영의 시선>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지면을 내 준 <미디어오늘>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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