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베토벤 교향곡’이 종교편향이 되기까지
[세상읽기]
[세상읽기]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전공 교수
최근 대구시립예술단의 베토벤 9번 교향곡 공연이 종교화합 자문위원회에 의해 금지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자문위원 가운데 불교계 인사가 이 곡의 합창 부분인 ‘환희의 송가’에 특정 종교의 신을 찬양하는 가사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각종 배경음악으로도 널리 쓰이며, 유럽연합(EU)의 ‘국가’에 해당하는 ‘유럽찬가’이기도 하다. ‘종교화합 자문위원회’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구에는 왜 다른 지방자치단체 예술단에는 없는 이런 기구가 존재하는가? 이 기구는 어떻게 자문위원 한 사람의 의견만으로 공연을 취소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2021년 12월 개정된 ‘대구광역시 시립예술단 설치 조례’에는 종교와 관련된 조항들이 여럿 추가됐다. 우선 “예술감독 및 단원은 종교에 따른 차별 또는 편향 없이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종교관·정치관·가치관 등의 편향성으로 인하여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는 등 직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단원에서 해촉된다. “종교 관련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자문위원회가 설치된 것도 이 시기였다. 이 기구는 예술단 공연의 “종교 중립성”을 판단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사항”을 심의한다. 일반적인 사안은 종교계, 학계, 법조계,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 가운데 과반수의 동의로 의결하지만, 종교 중립성과 관련된 결정은 “종교계 자문위원 전원 찬성”이 필요하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대구시립예술단에 소속된 교향악단, 합창단, 국악단, 무용단 등 다양한 단체들 가운데 유독 합창단 공연은 종교 중립성과 관련한 위원회의 자문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나머지 단체들은 필요한 경우 자문회의를 하면 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2014년, 불교계에서 대구시립합창단이 지속해서 “찬송가 공연”을 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합창단이 특정 종교의 선교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합창단 정기연주회의 앙코르곡으로 공연된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이 곡은 개신교 교회에서 성가대 합창으로 주로 사용되는 복음성가 계열의 노래다. 당시 초청된 불교계 인사들이 항의하며 퇴장했고, 조계종 차원에서도 대응이 이뤄졌다. 대구시가 종교 편향을 예방하기 위한 자문위원회 설치와 종교적 편향성을 가진 인사의 예술단 위촉 제한, 공연 내용의 사전 검토 등을 약속한 것이 이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 문제가 됐던 공연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이번 베토벤 교향곡 논란에서처럼 고전적 성악곡들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종교 편향적이라는 공격을 받은 곡들은 대개 라틴어나 독일어 가사로 돼 있었고, 스와힐리어로 된 영가도 있었다. 일부 불교계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선교 의도를 정교하게 은폐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은폐’돼 있다면 정말 선교 효과가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기는 하다.
종교화합 자문위가 예술단 공연의 사전 검열 기구로 전락했다는 예술계와 시민사회의 지적이 이어지자,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문위를 폐지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종교편향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종교 ‘편향’이 아닌 ‘차별’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술의 종교적 표현을 금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종묘제례악이 유교적이라서, 영산재의 범패가 불교적이라서, 강릉단오제의 단오굿 무가가 무속적이라서 문화재 지정이나 공적인 공연을 제한받지 않는 이유다. 예술의 종교 중립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필자는 이 사안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기 전에 기독교 쪽의 문화적 영향력 확장 시도에 대한 불교계의 우려에 최대한 공감하며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 불교계의 대응은 명분의 정당성도 불분명하고, 공적 이익에 부합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전략적으로도 참담한 실패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종단의 정치적 영향력을 전투적으로 과시하는 일은 불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포교에도 악영향을 줄 뿐이다. 여론 비판과 종교계 민원에 따라 즉흥적으로 제도를 뒤바꾸는 지자체 태도도 문제다. 헌법이란 이런 쟁점에 기준과 원칙을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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