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불행’ 후유증도 양형 포함해야
[왜냐면] 문윤수 |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지난달 입원했던 ○○ 아이 아빠가 올린 국민청원 보셨어요?”
몇 해 전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여러 차례 수술·치료했던 중학생 아이가 있었다. 아이 엄마도 함께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학원을 다녀오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사고를 당했다. 의식 저하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기저기 골절과 출혈이 있는 아이에게 붙은 진단명은 열 줄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아이 아빠의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밤새 그리고 다음날에도 중환자실에 있는 아이와 아내 걱정에 중환자실 앞을 떠나지 못하는 아빠이자 남편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모녀의 사고 동영상을 본 순간, 두 모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정도로 놀라며 주먹을 꽉 쥐고 분노했다. 음주운전 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차량과 정면 충돌한 것이다. 가해자는 면허 취소 이상의 만취 상태였다. 국민청원에는 ‘행복했던 우리 가족이 음주운전 사고로 한순간에 불행해졌다. 피해자와 가족 모두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가해자는 불구속에 직장을 다니고 있다. 음주운전은 살인이다. 가해자가 집행유예가 아닌 합당한 벌을 받게 해달라’는 애절한 호소가 쓰여 있었다.
아이는 여러 수술과 중환자실 치료를 이겨내고 회복했지만 사고 전처럼 건강한 중학생은 아니었다. 우리 권역외상센터에서 어느 정도 회복한 뒤 보다 전문적인 재활을 위해 재활전문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아이의 열 개 가까이 되는 진단명만큼이나 그에 따른 후유증도 오래갔다. 의학적 후유증에 더해 행복한 가정이 고통으로 바뀌는 불행이란 후유증은 아이 가족 모두에게 평생 남을 것이다. 국민청원에 글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나는 피해자 당사자인 환자와 가족을 만난 순간부터 직접 봤다.
119 구급대원들의 신속한 초기 처치가 있었고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됐기에 모녀 모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지체되고 치료가 늦어졌다면 그 아빠는 아내와 딸을 영영 못 볼 수도 있었다. 법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에 법 기준과 집행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환자들의 처절하고 긴박한 상황들과 피해자 가족의 슬픔과 눈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것까지 양형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민청원에 쓰인 대로 실제 가해자가 불구속에 사망사고가 아닌 경우 집행유예 정도 처벌을 받는다면 나와 같은 일반인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 음주운전 사고를 내 심하게 다친 청년을 치료했다. 심한 간 손상에 출혈, 췌장 손상까지 있어 응급실에 내원 순간부터 쇼크로 위중한 상태였다. 낮은 혈압 숫자로 긴장한 나를 더 자극하는 것은 청년이 아프다고 소리 지를 때마다 마스크를 뚫고 내 코를 자극하는 알코올 냄새였다. 술 마신 뒤 운전대를 잡았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지만 빠른 처치와 치료가 우선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위중하다는 말에 부모가 달려왔다. 처음부터 긴박한 상황이었고, 몸 안에 피가 나서 응급 시술했다는 설명을 듣는 부모는 오로지 “우리 아들 무사하게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상태 설명 마지막에 청년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났다고 하자, 부모는 펄쩍 뛰며 “우리 아들은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청년은 회복해 퇴원했다.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청년 어머니 혼자 외래로 찾아왔다. 청년이 또다시 음주운전으로 입건됐는데 내가 치료했을 당시 소견서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자식이 영어의 몸이라 고통스러운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말도 안 되는 거짓 소견서를, 그것도 수차례 음주운전을 반복하는 잠재적 살인자에게 절대 내줄 수 없었다.
십여 년 권역외상센터에서 많은 음주운전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가족들을 만났다.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뀌었을 뿐, 매번 선량한 우리네 이웃이 피해자였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안타까운 피해자가 나올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며 그 피해자 이름의 법을 만들기를 반복한다. 과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에 누더기처럼 개정한 문구들만으로 음주운전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21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9명이 음주운전 전과를 갖고 있다는 개탄스러운 현실에 음주운전 관련 처벌 규정이 선진국에 한참 못 따라간다고 합리적 의심을 할 뿐이다.
얼마 전 화창하고 따뜻한 주말, 대전에서 온 국민이 다시 분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항상 반복하는 음주운전 사고, 이번에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어린 학생들이 대낮에 피해자가 됐다. 어린 학생뿐 아니라 그 가족 모두, 더 나아가 국민 모두가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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