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로이어 | 상속세 부과 취소 판결 받아낸 법무법인 율촌] “국세청이 직접 감정평가해 상속세 부과하는 건 위법”

노자운 조선비즈 기자 2023. 5. 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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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남매는 2019년 세상을 떠난 부친에게 서울 소재 땅과 건물을 공동 상속받았다. 10억원에 육박하는 상속세를 모두 납부한 남매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통보가 날아왔다. 세법이 바뀌었으니 상속세 26억원을 더 내라는 것이었다. 결국 남매는 추가 상속세를 완납한 후 세무서를 상대로 상속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며, 3월 10일 행정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세무 당국이 26억원의 상속세 부과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졸지에 수십억원을 더 내게 생겼던 남매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됐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19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 시행령의 개정이다. 국세청은 이를 근거로 앞으론 일부 부동산에 한해 ‘감정가액’을 토대로 상속·증여 재산 가액을 산정하겠다고 밝혔다. A씨 남매가 상속받은 부동산도 그 대상이 됐다. 이미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합법적인 상속세 납부를 끝냈지만, 과세 당국이 뒤늦게 감정가액을 다시 계산해 26억원의 ‘차액’을 추가로 부과했던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은 이번 행정 소송에서 A씨 남매를 대리해 과세 당국을 대리한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에 1승을 거뒀다. 조윤희(사법연수원 25기)·이강민(32기)·곽태훈(40기)·임선민(45기) 변호사가 대리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부동산인데…상속세 10억→26억 급증

우리 상·증세법은 상속 재산 가액을 ‘상속개시일 현재의 시가’에 따라 산정하도록 규정한다. 여기서 ‘시가’란 불특정 다수 간에 자유롭게 거래가 이뤄질 때 성립되는 가액(매매사례가액), 수용·공매가격 및 감정가격 등을 뜻한다. 2019년 2월 12일 시행령이 바뀌면서, 이날부터 상속이 개시되거나 증여받는 재산의 경우 평가 기간(상속 개시일 전후 6개월, 증여일 전 6개월부터 증여일 후 3개월)이 지났더라도 경과 시점부터 법정 결정 기한(상속 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15개월, 증여받은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9개월)까지의 기간 중 매매·감정·수용·경매·공매 중 하나가 발생한다면 해당 가액을 시가로 인정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평가 기간인 ‘상속 개시일 이후 6개월’이 경과했더라도 감정평가가 발생한다면 이를 시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2020년 1월 31일 보도자료에서 “앞으로는 시가와 차이가 크고 고가인 부동산을 중심으로 감정평가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실적인 시가보다 지나치게 낮은 공시가격 대신 감정가격을 적용해야 공정한 과세가액을 계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A씨 남매의 경우 2019년 5월 4일 부동산을 상속받았고, 같은 해 11월 말 상속세 9억8000만원가량을 완납한 상태였다. 부동산 시가는 공시가격 34억여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2020년 6월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감정평가법인을 통해 감정가액을 85억원으로 다시 계산하자 51억원의 차액이 발생했으며, 이에 대한 상속세 26억원이 추가로 부과됐다. 감정평가 기준 시점은 2019년 11월 5일, 즉 ‘상속 개시일 이후 6개월+1일’이었다. 감정이라는 시가 산정 방식은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상·증세법에 명시된 시가 계산 방식(매매·감정·수용·경매·공매)은 대부분 실거래를 전제로 하나, 감정만은 그렇지 않다. 이런 맹점이 있어 국세청이 “우리가 스스로 감정평가를 하면 되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개정 세법 취지, 국세청이 직접 감정가격 만들어도 된다는 게 아냐”

율촌 측은 국세청이 스스로 감정평가를 맡겨 시가를 만들어내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개정 법의 취지는 “상속 개시일 이후 6개월이 경과해 감정가격이 발생한다면, 예외적으로 국세청 평가심의위원회를 거쳐 시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6개월 기간 내에 감정가격이 없으면 국세청이 직접 감정평가를 해도 된다는 게 아니었다. 이 사건은 상속 개시일인 2019년 5월 4일부터 6개월이 되는 날인 2019년 11월 4일까지 ‘시가’로 인정할 만한 매매사례가액이나 감정가격이 없었다. 이에 원고들은 법에 따라 개별공시지가와 공시가격을 토대로 부동산 가치를 평가받고 상속세를 납부했다. 그런데 국세청은 6개월에서 하루 더 경과한 날을 기준으로 감정가액을 직접 만들어 냈다. 변호인단은 이 부분을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국세청이 감정평가 대상을 선별하는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강민 변호사는 “국세청이 기준을 분명하게 공개하지도 않고 자의적 기준으로 원고들의 부동산을 감정평가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이런 식의 과세는 조세공평주의에 반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시가와 차이가 크고 고가인 비주거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감정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했을 뿐, 그 차이가 얼마나 커야 하는지, 혹은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높아야 하는지, 기준을 제시하진 않았다. 변호인단은 현행 세법이 자의적인 세무조사권 발동으로부터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 절차를 법으로 정하게 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국세기본법 제81조의 6이 정한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의 사유’가 없음에도 세무조사 대상으로 삼아 과세 처분을 하는 건 위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국세청의 감정평가 대상 선정이 ‘깜깜이’ 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감정평가 예산이 거의 다 소진되는 연말에 증여해야 감정을 피할 수 있어 이득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한편, 국세청은 감정가액을 토대로 과세가액을 정하면 “향후 부동산을 양도할 시 양도소득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도 주장했는데 원고 측은 이 역시 문제가 된다고 봤다. 양도 대상인 상속 재산의 시가가 높아지면 당연히 취득가액도 올라가니, 양도소득과 이에 대한 세금도 줄어든다는 게 국세청의 논리였다.

이 변호사는 “이 같은 논리가 성립하려면 향후 부동산을 양도하고, 부동산 경기가 좋아 가액이 올라간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정가액 100억원을 토대로 고액의 상속세를 낸 사람이 나중에 해당 부동산을 되판다고 가정해보자. 경기가 좋아 100억원보다 높은 값에 되팔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80억원에 되파는 상황이라면 이 사람은 20억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 감정가액을 기준으로 납부했던 고액의 상속세를 다시 돌려받지도 못한다.

1심 재판부, 원고 손 들어줘…항소한 국세청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시가란 불특정 다수인 사이에 자유롭게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에 통상적으로 성립된다고 인정되는 가액”이라며 “주관적인 요소가 배제된 객관적인 것이어야 하므로,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이 평가한 감정가액이라 해서 당연히 시가로 인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납세 의무자인 원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세청이 일방적으로 의뢰해 나온 이 사건 감정가액은 그 객관성 및 공정성을 뒷받침할 만한 다른 자료가 없는 이상 시가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과세 당국이 일부 부동산을 임의로 선정해 감정평가를 의뢰하고 그에 따라 과세하는 것이 납세자들의 재산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과세 당국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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