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술 빚는 전통주 소믈리에 ‘양조장 히읗’ 조태경 대표] “과실 향 도드라지게 한 달만 숙성해요”
‘술 빚는 전통주 소믈리에’ 조태경 소믈리에가 작년 8월, 서울 혜화동에 소규모 양조장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상업 양조에 나섰다. 이름하여 ‘양조장 ㅎ(히읗)’. 술을 빚는 모든 재료가 흙에서 나온다고 해서, 양조장 이름을 ‘히읗’으로 지었다고 한다.
조 대표는 2016년 정부가 주관하는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받은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다. 조 대표는 한국 최고의 전통주 교육기관인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에서 7년간 전통주를 배웠고, 또 전통주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해왔다. 2년 전부터는 황정아 요리연구가와 함께 전통주와 음식을 페어링해 내놓는 ‘월간요술상’ 식도락 이벤트도 매월 열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것은 양조장 이름만이 아니다. 조태경 대표가 작년 말에 첫 작품으로 내놓은 술 ‘초록섬’ 탁주(12도)와 약주(15도)는 전통주 마니아 사이에서 ‘핫한 신상 술’로 화제를 낳고 있다. 소규모 양조장이라 생산 양이 적은 탓이 크겠지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주점 대표, 술꾼들이 많아, 양조장 술 창고는 늘 바닥이다.
전통주 전문가의 평도 호의적이다. 전통주 홍보 플랫폼인 대동여주도의 이지민 대표는 “초록섬 약주는 적당한 단맛과 신맛, 쌉싸래함에 약간의 알코올감, 은은한 감칠맛이 더해져 전체적인 맛을 이루는데, 알코올 도수 15도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했다.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여운 남는 술 만들고 싶어”
조태경 대표는 자신이 만들고 싶어 하는 술 스타일을 이렇게 말했다. “첫 잔에 맛있는 술도 좋지만, 두 번째가 더 맛있고, 세 번째가 더 맛있는 그런 술을 만들고 싶어요. 뭔가 여운이 남는 술,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그런 술요. 처음부터 맛있지 않아도,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아서 좀 편하게, 그리고 질리지 않는 술을 앞으로도 만들고 싶어요.”
초록섬 탁주와 약주는 밑술에 덧술을 한 번 더한 이양주다. 밑술 재료는 멥쌀, 덧술은 찹쌀이다. 초록섬의 감칠맛은 찹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밑술 재료로 들어가는 멥쌀 비중이 높아 단맛이 과하지는 않다.
밑술은 멥쌀 통쌀죽으로 한다. 누룩은 송학곡자를 구해서 쓴다고 한다. 찹쌀은 고두밥으로 만들어 덧술로 쓴다. 밑술 만들고 나서 여름에는 3~4일, 겨울에는 거의 일주일 뒤에 덧술을 한다. 특이한 점은 연잎 끓인 물을 연잎과 함께 덧술에 넣는다는 사실. 말하자면, 초록섬은 연잎주다. 쌀 100%로 만드는 순곡주가 아니다. 그러나 일반인이 이 술에서 연잎 향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은은한 연잎 향을 각인시키는 것은 오히려 병 라벨이다. 정인숙 사진작가의 연잎 사진을 초록섬 술 라벨로 사용했다. 정인숙 작가는 조태경 대표가 한국전통주연구소에 근무할 당시, 술을 배우러 온 인연이 있다고 한다.
조 대표는 약주 숙성을 한 달 정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 ‘한 달 숙성’은 다른 양조장에 비해 기간이 긴 편이 아니다. 길게는 석 달 이상 숙성에 공을 들이는 양조장도 적지 않다. 숙성이 오랠수록 술의 향과 맛이 깊어지면서 동시에 부드러워진다는 게 통설이다. 그래서 물었다. 왜 한 달밖에 숙성을 하지 않냐고.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7년간 근무하면서 저온 숙성을 1년 이상 하는 경우도 더러 봤는데, 술맛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안정된 맛을 내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처음 그 술이 갖고 있는 본연의 싱그러움, 신선한 맛, 풋풋한 맛은 숙성을 오래 할수록 오히려 줄어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딱 한 달 정도 숙성하면 오랜 숙성에서 오는 깊은 맛이 조금 덜할 수는 있지만, 곡물 발효로 인한 과실 향이 많이 나는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풋풋한 과실 향을 내는 데는 오래 숙성하는 것보다는 한 달 정도 숙성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다소 술 향이 가볍게 느껴지더라도, 상큼함을 살리기 위해 숙성을 오래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오래 숙성하면 견과류 향이 나는데, 저는 견과류 향보다는 과실 향이 더 좋아 한 달 정도만 숙성해요.”
와인 수입으로 술과 첫 인연
양조장 히읗 조태경 대표 이력은 다채롭다. 대학에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술과의 첫 인연은 와인 수입업체에서 시작했다. 와인 수입업체에서 일하다, 전통주 매력에 빠져 숙명여대 대학원(전통식생활문화 석사과정)과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전통주를 배우고, 또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7년 정도 다닌 한국전통주연구소를 2020년에 나와서는 요리연구가인 황정아씨와 ‘월간 요술상’ 행사를 매달 하고 있다. 월간 요술상은 한 달에 한 번 테마를 정해, 전통주 소믈리에인 조태경 대표가 4~5종의 우리 술을 정하고, 또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황정아 요리연구가가 내놓는 식도락 행사다.
조 대표가 양조장을 차린 것은 작년 8월. 서울 혜화동로터리 인근의 작은 건물 한 층을 구했다. 한 층을 다 쓴다고는 하지만, 더 작은 양조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공간은 협소하다. 그런데 왜 이름이 양조장 히읗일까?
“양조장 이름을 지으려고 고민하면서, ‘왜 내가 이 일을 하려고 하지?’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안겨주기를 바라는가’를 생각했어요. 우선 술의 기본 재료를 생각했어요. 쌀, 밀(누룩 원료), 연잎 등. 그 어떤 것도 흙에서 나지 않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 흙에서 나는 것들로 술을 빚는 만큼 서두르지 않겠다, 천천히 가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더불어서 양조장에 오시는 분, 초록섬 술을 즐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하하 호호 기뻤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혜화로터리 부근에 양조장이 있어 혜화동 양조장이기도 하고. 그래서 흙, 하하 호호, 혜화동 이 단어들의 첫 자음이 모두 히읗(ㅎ)이라서 양조장 이름도 히읗이라 지었어요.”
양조장을 차린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양조장 히읗은 벌써 다음 작품을 개발 중이다. 초록섬에 이은 두 번째 술은 송순주. 이른 봄에 새로 자라나는 소나무 새순을 이용하는 송순주는 소나무에서 채취한 부재료로 빚은 술 중에서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초록섬 라벨 사진을 주신 정인숙 작가님과 무주에 함께 가서 송순을 채취하기로 했어요. 작년에 딴 송순으로 지난 2월에 술 한독 만들어 놓기도 했고요. 올여름쯤 내놓을 생각입니다. 여름에 빚은 초록섬 하(여름)와 겨울에 빚은 초록섬 겨울연밭도 그렇지만, 제 술은 모두 섬세한 계절의 맛을 담으려고 합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