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의 마켓잠망경 <39>] 기관 투자자 vs 개인 투자자…에코프로 대전, 누가 이길 것인가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2023. 5. 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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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선비즈 DB

올해 들어 주가가 8배까지 폭등한 에코프로를 놓고 시장이 여전히 시끄럽다. 전반전은 가히 개미, 즉 개인 투자자의 압승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개인 투자자들이 매수세를 이어가는 한편 기관 투자자는 주가가 오른 시점부터 손 놓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모 자산운용의 대표이사는 올해 1분기 성과를 회고하는 고객 레터에 에코프로를 펀드에 담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쓰기까지 할 정도였다.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이제 후반전이 시작됐다. 모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 리포트 낸 것을 필두로 기관 투자자의 공매도 폭격이 이어지며 기관 투자자가 승기를 잡은 형국이다. 물론 아직 결론은 안 났기에 지금 주가가 과연 비싼지 싼지에 대해서, 또는 기관 투자자와 개미 중 누가 옳은지에 대한 판정은 차치하고 그 배경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자.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의 전쟁이 일어났던 주식은 종종 있어왔지만, 유독 이번 에코프로 대전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증권가에서는 주식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1│개미들이 달라졌다

우선 전문가보다 똑똑한 개인 투자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현직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가 전업 투자자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사례가 많아졌고, 소위 개미라고 일컫는 규모가 아닌 조직화한 개인 투자자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푸념하기로는 요즘 사람 뽑아서 일을 가르쳐 놓으면 똑똑한 사람들은 다 개인 투자하러 나가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서 애널리스트는 ‘3D 직종’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과도한 업무 부담에 비해 성과급이 적은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애널리스트 개인이 져야 할 법적인 리스크가 과도하게 크다는 것이다. 각종 증시 이슈가 생길 때마다 본보기로 금융감독원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 목소리를 크게 내기 어렵다.

2│펀드의 성과 체계 미흡

펀드의 보상 시스템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하고 있다. 펀드 투자가 대박이 나면 돈을 많이 버는데, 성과급 체계가 명확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펀드 시장 자체가 더 크지 못하고 고급 인력이 빠져나가는 악순환을 낳게 된다. 라임자산운용 사태 전까지만 해도 공모펀드 운용사에서 상대적으로 성과급이 높은 사모펀드 운용사로 옮기는 펀드매니저들의 ‘이직 붐’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모펀드의 규제가 많아지자, 고객들이 펀드에 투자하기를 꺼리게 되고 사모펀드 시장마저 정체돼 잘나가는 펀드매니저들이 개인 투자자와 유튜버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3│제도권보다 영향력 높은 미디어 출현

주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디어 환경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신문사나 방송사, 증권사 리포트가 아니면 시장 영향력이 없었는데, 이제는 유튜브, 블로그, 팟캐스트 등 운영자도, 소비자도 소통하기 편리한 채널이 많아졌다. 본인이 똑똑하면 얼마든지 사람을 모으고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오히려 자본시장법을 적용받는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보다 표현은 더 자유롭다.

실제로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유튜버로서 크게 성공한 사례도 있다. 증시 전문 유튜브 채널 중에는 상장까지 앞두고 있을 만큼 규모가 큰 곳도 있다. 이러한 유튜브 채널은 인기가 높은 만큼 현 제도권의 인기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이 앞다퉈 출연하며 이제 제도권과 비(非)제도권의 경계까지도 무색해지고 있다.

테슬라를 떠올리는 에코프로

이와 같이 에코프로가 개인 투자자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 배경에는 증권가 출신의 인력이 다양한 채널로 유입되며 개인 투자자들 또한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는 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요즘에는 그 인기가 다소 과열된 측면도 있는데, 재력 있는 강남 아줌마 사이에서는 자신의 주식 포트폴리오에 에코프로가 안 들어있으면 담당 PB(Private Banker·증권사 영업 직원)를 불러서 혼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맹목적인 투자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물론 주식시장에서 쏠림과 되돌림은 언제나 있었으며 과열된 인기는 조정을 거치며 안정화되기 마련일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관 투자자가 에코프로를 매수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차전지 업종 내 적정 주가수익비율(PER)과 비교할 때 고평가된 주식에 펀드가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개인 투자자는 투기만 하고, 기관 투자자는 합리적으로 투자하는 것일까. 아직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선진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미국도 이런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의 힘겨루기 양상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테슬라가 있다. 몇 년 전 테슬라 주가가 한창 상승할 때 짐을 싼 펀드매니저들이 많았다. 당시 테슬라 공매도를 쳤던 펀드매니저들은 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자 엄청난 손실을 봤다. 요즘 에코프로가 꼭 그때 테슬라를 보는 것 같다. 다만 테슬라의 경우 초반전은 개미가 이기다가 후반전은 지지부진했는데 이제 와서 우리는 누가 승자라고 할 수가 있을까. 이미 짐을 싸서 집에 간 펀드매니저가 결국 옳았던 것일까. 이미 높은 가격에 주식을 매도해서 돈을 번 개미일까. 사실 무의미한 판정이다.

에코프로의 주가가 조정기를 거친 후에 재반등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테슬라처럼 주저앉을 것인지는 결국 회사의 성과에 달려있다. 실제로 불과 5년 전만 해도 공매도의 주요 타깃이 되며 기관 투자자는 매수를 꺼리고 애널리스트들도 리포트를 내기를 꺼리던 한 바이오 종목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오 기업이 됐다. 분명한 것은 이차전지 산업의 성장성도 긍정적이며, 개인 투자자들의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것도 확실하다. 이제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실 투자자에게 에코프로는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테마주로 인기를 얻었던 회사가 알고 보니 매출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으로 밝혀지며 투자자에게 피해를 줬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이 지나서 에코프로의 주가가 하락한다고 하더라도 투자자는 적어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코프로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건실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시장에서 주목받는 산업 중 하나인 로봇 산업의 경우 매출 몇십억원 규모의 기업이 시가총액 1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성장주에 투자하더라도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가 없는 기업에 투자해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그런 우(愚)를 범하는 일만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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