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컬래버노믹스 <13>] 협업의 기술, 심리학에 답이 있다
미국 예일대의 피터 샐러베이 총장이 얼마 전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이번 방한에서 샐러베이 총장이 강조한 것은 학문의 통섭이다.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학문을 갖고 접근해야 여러 가지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서로 연결되고 얽혀있으니, 이를 풀기 위해서는 학문의 이종 교배가 필요한 것이다.
예일대는 전통적으로 인문·사회와 예술 분야가 강했는데, 이제 공학과 과학, 특히 컴퓨터 분야를 대폭 확대해서 전통 분야와 융합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공대를 설립해 이제는 인문, 사회과학, 공학·과학 분야 학생 숫자가 같아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종 학문끼리 융합할 때만 효과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고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학과 의학의 통합연구를 추진하는 ‘바이오메디컬 공학’, 공학과 환경을 통합한 ‘환경공학’, 컴퓨터과학과 예술이 합쳐진 ‘컴퓨터과학과 예술’이라는 과정도 만들었다. 이제 문과와 이과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샐러베이 총장이 유명한 심리학자라는 것이다.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예일대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정서지능(EQ·Emotional Intelligence) 개념을 공동 창시했다.
샐러베이 총장의 융합적 사고의 기반에는 심리학 지식이 깔려있다. 협업할 때 심리학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협업 파트너끼리 심리적 공감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협업은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려면 먼저 정서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소통을 해야 한다. 소통을 잘해야 공감대가 이뤄지고 그래야 호감과 신뢰가 형성된다. 그럼 정보 공유도 원활해지고 협력의 강도도 높아진다. 샐러베이 총장이 연구한 EQ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꼭 필요한 지능이다. 아무리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첨단기술이 고도화하고 확산해도 인간이 개입된 일에는 반드시 심리적 현상이 발생한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신뢰하면 성과가 나오지만, 심리적 거부 반응이 나타나면 실패하게 된다. 협업하려면 상대방의 전문 역량 이전에 의도와 정서부터 이해해야 한다.
둘째는 고객의 마음을 읽는 데 심리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고객은 혁신적인 신기술이나 신상품에 대해 무조건 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낯설게 느끼거나 심리적 저항감을 느낄 수 있다.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AI,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로봇 등이 업무나 생활 속으로 다가올 때 심리적 거부 반응을 줄이고 호감을 느끼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 첨단기술 개발자들 옆에 심리학 전문가가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요즘 성공한 협업 사례를 보면 첨단기술끼리의 협업도 많지만, 첨단기술에 호감을 연결한 사례도 많다.
스마트폰 삼성 갤럭시 Z플립에는 명품 브랜드 톰 브라운과 협업한 제품이 있다. 산뜻한 삼색 선이 들어간 톰 브라운 패션을 즐겨 입는 젊은이들을 공략한 제품이다. 톰 브라운 옷을 입고 톰 브라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심리적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가격은 일반 제품의 두 배가량 되지만 인기 만점이다.
미국 신발 업체 크록스는 고객의 취향을 파고드는 협업 제품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신발 앞부분이 오리주둥이처럼 생겨서 ‘편하지만 가장 못생긴 신발’이라는 혹평을 듣던 크록스가 각광받게 된 것은 ‘지비츠(Jibbitz)’를 활용한 협업 덕분이다. 지비츠는 크로스 신발에 뚫려있는 13개의 구멍에 꽂는 장식물이다. 요즘 크록스는 유명 패션디자이너나 팝스타 등과 지비츠 협업을 통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케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 등과 협업해 만든 지비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브랜드나 유명 스타들의 광팬들을 지비츠로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협업이 서로 다른 전문성의 연결이라고 해서 첨단기술이나 복잡한 과학을 접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인간 심리를 활용한 협업이 더 많이 확산하고 있다. 인간은 효율성, 효과성,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호불호다.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아는 것이 협업 성패의 핵심 사항이다. 컬래버노믹스 시대는 심리학 필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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