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 소품의 시선으로 타인과 공감하다···영화 '소녀램프라디오'

박민주 기자 2023. 5. 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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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시면서 램프를 하시겠어요, 라디오를 하시겠어요? 불편하시면 손 들어서 말씀해주세요."

지난 28일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여 중인 전주 완산구의 한 영화관, VR영화 '소녀램프라디오'를 상영하고 있는 공간은 어둡고 고요했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과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 실감 콘텐츠 발굴과 지원을 위해 'VR영화 지원 업무협약'을 맺고 김진아 감독의 '아메리카 타운'과 함께 영화 '소녀램프라디오'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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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VR영화 '소녀램프라디오'
각각의 역할 맡은 2명의 관객
VR기기 쓰고 함께 영화 참여
악플 시달리는 아이돌 '지나'와
소통하는 경험···반응 뜨거워
영화 '소녀램프라디오'.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서울경제]

“영화 보시면서 램프를 하시겠어요, 라디오를 하시겠어요? 불편하시면 손 들어서 말씀해주세요.”

지난 28일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여 중인 전주 완산구의 한 영화관, VR영화 ‘소녀램프라디오’를 상영하고 있는 공간은 어둡고 고요했다. 영화는 2명의 관객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구조다. 이를 위해 ‘램프’나 ‘라디오’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직원의 안내로 라디오를 고른 기자가 의자에 앉아 디스플레이 기기를 쓰자 눈 앞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영화 '소녀램프라디오' 상영관. 사진 제공=소녀램프라디오

최민혁 감독의 신작 ‘소녀램프라디오’는 인기 K-팝 아이돌 ‘지나’가 악플에 시달리면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VR을 통해 25분 간 실감나게 보여준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과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 실감 콘텐츠 발굴과 지원을 위해 ‘VR영화 지원 업무협약’을 맺고 김진아 감독의 ‘아메리카 타운’과 함께 영화 ‘소녀램프라디오’를 선정했다. 김성준 전주국제영화제 콘텐츠미디어사업실장은 “영화제에서 VR영화의 가능성을 담아낼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던 중 콘진원이 제작 지원을 하고 영화제는 완성된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식으로 협력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 '소녀램프라디오'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 사진 제공=소녀램프라디오

사소한 이유로 쏟아지는 악플을 받게 된 지나는 우울 속으로 침잠한다. 홀로 아픔을 견뎌야 하는 지나의 유일한 친구는 관객이 맡은 램프와 라디오다. 램프는 지나에게 빛을, 라디오는 소리를 선사하며 그가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최 감독은 “타인의 시선과 언어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돌의 심리를 VR 매체로 관객들이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며 “사물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관객들이 지나의 여정을 함께 하는 존재로 참여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지나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유명 걸그룹 출신의 선예가 작품의 취지에 깊이 공감했던 것이 출연의 배경이 됐다. 대중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말하고 노래하는 지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다가온다. 지나를 향해 쏟아지는 악플은 화면을 가득 채운 글자와 사람들의 말소리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등장해 사이버 세상을 비춘다. 구현된 가상공간과 영화 내러티브가 합쳐지면서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 '소녀램프라디오' 스틸컷. 사진 제공=소녀램프라디오

VFX(Visual Effects) 기반의 사업을 펼쳐온 기업 브이레인저가 제작을 맡았다. 영화 속에서 램프와 라디오가 지나를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하는 인터랙티브를 담아냈다. 신기술도 사용됐다. 한국 VR영화 최초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인물을 3차원으로 촬영하는 볼류메트릭 기술이 사용돼 몰입감을 높였다.

영화를 향한 현장 관객은 뜨거운 호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소녀램프라디오’의 예매는 전부 매진된 상태다. 영화 관람 후 진행되는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의 관객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나의 아픔을 타인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것이 아닌, 소품이 되어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지나의 말은 사회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우리들에게도 여운을 남긴다. 선망의 존재이자 숨을 쉬고 살아가는 개인이기도 한 지나는 그 어떤 모습으로도 반짝인다.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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