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돌려막기 탈출구 안보여"… 30일 단기연체자 2배 넘게 급증

명지예 기자(bright@mk.co.kr) 2023. 5. 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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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서민' 1분기 개인회생·채무조정 신청 최대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어요. 조금이라도 빨리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계속 대출을 받아 쏟아부었는데 결국 폐업하면서 6600만원 빚만 남았어요. 돌려막기로 몇 년간 버텨봤지만 당장 생활비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개인회생을 택했겠어요."

충북 청주에서 디저트 가게를 운영했던 40대 김 모씨는 지난 2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매출이 급격히 줄었고, 저축은행과 카드사 대출까지 받아 버텼지만 결국 지난해 사업을 접었다. 새 직장을 구했지만 적은 월급으로 원리금을 상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불어난 이자 때문에 현금서비스(단기 카드대출)를 수차례 받던 김씨는 가족, 친구에게 손을 벌리다 못해 개인회생으로 빚을 변제받기로 했다.

프리랜서인 30대 한 모씨는 2021년 아버지의 채무 변제를 돕기 위해 2금융권 대출을 받았다가 함께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 케이스다. 그는 "끼니를 거를 만큼 생활비가 부족했다. 연체와 동시에 추심이 시작돼 괴로웠는데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한 후 큰 부담은 덜었다"면서 "이자율 조정도 받고 매달 빚을 조금씩 갚아 갈 수 있게 돼 재기의 희망이 일단 생겼다"고 말했다.

전체 금융권 대출 연체율이 지난해부터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연체율 후행지표로 불리는 개인회생·채무조정 신청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1일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개인회생 신청자는 올해 1분기 3만182명으로, 전년 동기(2만428명) 대비 48%나 증가했다. 대출 원리금 일부를 변제받고 분할 상환한다는 점에서 개인회생과 비슷한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신규 신청자도 올해 1분기 4만6067명이나 된다. 개인회생 신청자까지 고려하면 1분기에만 7만6249명이 본인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제도적 도움을 요청한 셈이다. 개인회생과 채무조정 모두 올 3월에 신청자가 급격히 증가했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 개인회생·채무조정 신청자가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누적된 대출에 금리 상승 부담까지 더해져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한계 대출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취약차주가 많은 2금융권의 연체율은 이미 치솟고 있다. 올해 1분기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총여신 연체율은 5.1%로, 전년 말(3.4%)에 비해 1.7%포인트 올랐다. 7개 전업카드사(KB국민·신한·삼성·현대·롯데·하나·BC카드)에서 1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도 지난해 말 기준 1조4306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850억원) 대비 21% 늘었다.

대출을 대출로 막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취약차주도 늘었다.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불법 사채라도 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금융 이용자 중 1238명이 불법 채권추심과 최고금리 초과 이자율 부과와 같은 피해를 입고 금융당국에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을 신청했다. 2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벼랑 끝 대출자가 늘면서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을 통해 공급되는 정책대출도 점점 더 취약한 계층에 집중되는 모양새다. 서금원은 '햇살론15'을 받지 못하는 취약차주를 위해 지난해 9월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을 출시했다. 하지만 이 상품도 소득이 있어야 해서 못 받는 사람이 많았다. 금융당국은 소득 증명이 어려운 사람들도 포용하기 위해 지난 3월 서금원이 직접 대출하는 형식의 '소액생계비대출(100만원 한도)'을 출시했다.

취약 대출자들의 자금난에 정책자금 상품 한도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서금원에 따르면 청년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정책대출상품인 '햇살론유스'의 올해 목표 공급액은 당초 1000억원이었지만 이 중 80% 이상이 1분기에 소진됐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햇살론유스 공급 규모를 1000억원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출시돼 '예약 오픈런'을 방불케 했던 소액생계비대출도 개시 한 달 만에 2만3532명에게 143억원이 대출됐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64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더 큰 문제는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자영업자 대출 연체다.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상환을 유예해줬다.

그러나 오는 9월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끝나면 자영업자 대출 연체가 급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양정숙 무소속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은 1019조8000억원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이 중 71%에 달하는 720조원이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이며,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1인당 평균 대출액은 4억2000만원 수준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상승으로 인한 원리금 증가, 고물가 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 자산가격 하락 등 삼중고로 차주들의 부담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며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처를 올 9월에 종료하면 가계 위험은 물론 금융기관들의 위험도 증가될 수 있어 정책적 일정을 다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회생·채무조정

법원의 개인회생과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은 대상, 변제기간, 감면 한도 등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회생은 고정소득이 있지만 상환 불능인 채무자가 대상이다. 변제기간은 3~5년으로 원금 감면비율은 평균 70%다. 채무조정은 연체기간에 따라 신청할 수 있고 변제기간은 10년 이내로 개인회생보다 길다. 연체 90일 이상일 때 신청하는 개인워크아웃의 경우 원금 감면비율 평균은 44%다. 프리워크아웃, 신속채무조정은 연체이자만 감면한다.

[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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