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기요금 현실화로 지속가능성 확보하자
국가 전력 정책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중장기 전력 수요 전망과 이에 따른 전력설비 확충 계획을 담고 있다. 지난 1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맞춰 늘어나는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 등의 발전설비와 전력 수요를 적기에 수용하려면 대규모 전력망 투자가 필수다.
한국전력은 원전 신규 건설과 계속 운전에 따른 발전설비 증가로 변전소 330여 개 등에 대한 전력망을 확충하는 데 최소 5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년 전 수립한 '9차 송변전설비계획'의 29조원 규모 투자 비용과 비교해 2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송변전설비 외에도 배전설비 투자와 재생에너지 간헐성·변동성에 대응해 계통 안정화를 꾀하기 위한 설비 보강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점까지 고려하면 안정적인 전력망 확충에 필요한 투자 비용은 9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최악으로 치달은 한전의 재무 여건상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대규모 전력망 투자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전은 약 33조원의 유례없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벌어들인 수익으로 전력구입비 지급은 물론이고 투자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다 보니 30조원을 훌쩍 웃도는 채권을 발행해 부족한 자금을 충당했다.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까닭이다. 지속되는 원가 이하의 요금 수준에 한전은 올해에만 벌써 8조원이 넘는 채권을 발행해 연명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2분기 전기요금 조정마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한전의 앞길은 더 짙은 안갯속에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적자 경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망 투자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다. 한전은 각종 투자 사업의 규모와 시기 등을 조정해 재무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방향은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전의 투자 여력 축소는 관련 사업을 수익원으로 삼는 발전사업자와 전기공사 및 기자재 업체 등 유관 기업의 '연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긴다면, 당장 전력구입비와 각종 대금 지급이 불가능해진다. 그 파급은 전력 산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당장은 버티고 있으나 빚으로 연명하는 전력 산업 생태계는 분명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전은 지난해부터 14조원 규모의 5개년 재정건전화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당면한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고 전기요금 인상에 앞서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한 고강도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과 국민 눈높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한전의 경영 혁신 노력이 수반돼야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원가회수율이 70% 수준에 불과한 낮은 전기요금이다.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해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전력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한전이라는 한 기업의 정상화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전력 산업의 정상화와 미래 세대에 깨끗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어렵더라도 갈 수밖에 없는 길임을 잊지 말자. 더 이상 실기해서는 안 된다.
[이종수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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