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군번도 제대로 못 달아주는 육군
"자랑스러운 육군을 목표로 하겠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은 지난해 5월 열린 취임식에서 이같이 공언했다. 그로부터 반년 뒤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는 '22년 군번' 4916명에게 '23년 군번'을 부여하는 행정 착오를 저질렀다. 입대일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군번을 실수로 수료일 기준으로 설정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이후 군은 대상 장병들에게 공문을 보내 '군번은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고유 번호'지만 수정하는 절차가 복잡하다며 정정 불가 통보를 내린다.
논산훈련소를 떠나 자대 배치를 받은 병사들은 그곳에서도 수모를 겪는다. 관련 기사가 보도되자, 군이 피해 장병들을 모아놓고선 '굳이 민폐를 끼치면서' 군번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며 윽박질렀다는 제보가 빗발쳤다. 이 과정에서 군은 군번을 바꾸면 국가지원금 미지급 등 '물질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협박도 빼놓지 않았다.
과연 누구에게 자랑스러운 육군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최소한 병사들에게는 유지가 편하다는 핑계로 군번조차 못 바꿔주겠다는 조직이 자랑스러울 리 만무하다. 외부에서 군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도 군 행정의 기본인 군번마저 제대로 부여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다지 자랑스럽게 비치진 않을 것 같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라는 고사가 있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춘추전국시대 예양이라는 협객이 옛 주인을 위한 복수에 실패하고 남긴 최후의 말이다.
군인복무기본법은 장병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편의를 앞세워 병사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군의 태도에서 존중을 느낀 장병은 없을 거다. 구성원들에게 인색한 군을 위해 목숨을 걸라는 강령이 공허한 강요로 들리는 까닭이다.
군이 군번을 잘못 부여한 시점으로부터 5개월이 되어 간다. 여전히 책임 소재와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면서 육군이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제 국민들이 '자랑스러운 육군'의 행보를 지켜볼 차례다.
[김정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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