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죽어가는 한국의 전력산업
한전 최소 기초체력 위한
인상안은 무산·적자는 누적
독립 의사결정기구 만들고
보조금 주는 유럽과 대조적
지난 4월 11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수송, 산업, 건물 부문에서의 주요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전기화가 제시되었다. 전기화란 화석연료를 무탄소·저탄소 발전원으로 생산된 전기로 대체함을 의미한다. 전기화로 2050년의 전력수요는 2018년 수준의 2.3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전력산업은 앞으로 무탄소·저탄소 전기를 안정적으로 확대 공급해야 한다. 이에 미국·유럽 등의 선진국들은 2가지 측면에서 전력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첫째, 전기요금 결정 권한을 독립적인 규제위원회에 맡김으로써 정치적 외압을 막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공익사업위원회, 영국의 가스전력시장위원회, 프랑스의 에너지규제위원회가 그렇다.
둘째, 전력산업의 탄소중립 이행, 일자리 지키기, 부가가치 창출 등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보조급 지급 및 세액공제를 담은 법률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유럽은 넷제로 산업법 및 핵심원자재법을 발의했다. 수소, 풍력, 배터리 등의 분야가 수혜자가 될 것이다.
요컨대 미국과 유럽은 의회 및 물가관리 당국의 개입을 막기 위한 독립적인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전기요금을 결정함으로써 전력산업의 심각한 적자를 방지하고 있다. 아울러 대규모 재정 지원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무탄소·저탄소 발전원으로의 전환, 일자리 창출, 전력공급 안정성 확보를 꾀하면서 전력산업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전력산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국내 전력산업 생태계는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전기를 구매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한전은 작년 32조6000억원의 천문학적 적자를 냈다. 지금까지 누적 적자가 40조원으로 연말이면 50조원에 육박할 것이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약 8.3% 수준이다.
한전의 1년 인건비 2조원을 전액 집행하지 않아도 적자 해소는 요원하다. 작년 37조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한전은 지난달까지 9조원 넘게 하루 평균 1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자만 매일 40억원을 내고 있다. 하지만 적자가 늘더라도 전력산업이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 체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2분기의 전기요금 인상은 여당의 반대로 무산된 상태다.
미국과 유럽처럼 보조금을 지급하기는커녕,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하여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방치하고 있다. 결국 전기를 사 올 돈이 부족한 한전은 전력구입비를 깎거나 외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발전사들도 적자에 시달리면서 부실화되어 회사채 발행 및 은행 차입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다.
게다가 한전이 궁여지책으로 전력망 등 전력공급 설비의 유지·보수를 위한 지출을 줄이면서 6500여 개 협력업체들은 대금 결제를 제대로 못 받고 일감 감소까지 겪고 있다. 무탄소·저탄소 전력에 대한 투자는커녕 망하지 않고 버틸 자금을 구하려 뛰어다니고 있다. 그야말로 발전사, 한전, 협력업체 등 전력산업 생태계 전반이 부실화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 개입인지 의문이다. 국민들은 지금 조금만 더 부담하면 될 것을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키워서 부담해야 한다. 전력산업의 부실화로 올여름 정전이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력산업 생태계가 한번 망가지면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고,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의 몫이다.
한전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전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요금 정상화를 거부하면 안 된다. 전력산업 생태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원가 기반으로 전기요금이 결정되어야 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의융합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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